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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시가
· ISBN : 9788934955146
· 쪽수 : 400쪽
책 소개
목차
제1부 봄 - 눈길마다 붉은 꽃들 발걸음을 붙드는데
이 비 그치면
꽃, 술, 벗
왜 사냐건 웃지요
향기로 꽃을 보네
꽃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봄날은 간다
송화 가루는 날리고
제2부 여름 -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여름밤에는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연잎에 듯는 빗소리
유월의 꿈이 빛나는
먼 산에 소낙비 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여름 꼬리 가을 머리
제3부 가을 - 맑은 햇살 청자빛 하늘 아래서
오동잎 위로 먼저 온 가을
목숨 다해 노래 부르리
말과 소의 눈엔 붉은빛이
내 몸이 그림 속에
집게발 들고 술잔 들며
술잔에 국화잎을 띄우고
잎 진 뒤에 피어난 맑은 향내
제4부 겨울 -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새벽길 홀로 걸어가며
빈산에 저녁 해는 지고
연기 이는 마을을 찾아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먼 데 여인이 옷 벗는 소리
더 높고, 더 검고, 더 파란 날에
세밑에는 누군가 그리워
부록 - 인명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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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눈길마다 붉은 꽃들 발걸음을 붙드는데
막대 짚고 산보하다 시내 저편 이르렀네.
지난 밤 온 한 자락 비, 그 누가 알았으랴?
꽃 필 만큼 적셔주고 땅은 질지 않게 할 줄
觸眼紅芳逕欲迷 杖藜閒步到溪西
夜來一雨誰斟酌 ?足開花不作泥
김매순金邁淳, <시냇가에 나가 한 구를 얻다[出溪上得一句]>
……
창밖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박인수의 <봄비>를 흥얼거려본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그의 노래는 겨울 공화국을 녹이는 자유의 봄비였다. 박인수씨가 열창한 <봄비>는 소울soul이라는 음악 장르이다. 흑인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에서 뻗어 나온 소울 음악은 1960년대 중반, 흑인들의 공민권 쟁취 운동과 맞물려 탄생했다고 한다. 각종 의무만 있고 권리는 거세되어 있던 흑인들의 분노와 슬픔의 노래가 소울이다. 스물세 살 박인수는, 신중현과 만나 ‘봄비’라는 기념비적인 음반을 내놓았다. 그리고 1970년 암흑의 시절, 박인수는 “황색 소울의 귀재”, “영혼을 노래한 전설적인 가수”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군림했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22쪽 <이 비 그치면> 중에서
창문 가득 매화 대가 모습 어려 비친 것은
한밤중에 앞 다락에 달이 솟아 올라서리
이내 몸이 진정 향과 온전히 동화됐나?
매화에 코를 대도 도무지 모르겠네
滿戶影交脩竹枝 夜分南閣月生時
此身定與香全化 嗅逼梅花寂不知
이광려李匡呂, <매화를 읊다[詠梅]>
……
세상이 잠든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깨었다. 하얀 창에 그려진 수묵화 한 폭, 하얀 창호지를 화선지 삼아 매화 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교차시켜 수묵 매죽도梅竹圖. 저걸 누가 그렸지? 솜씨를 부린 화가는 앞 다락 위 하늘에 떠 있는 환한 달이로구나. 기운이 생동하는 저 그림 맑은 경계가 아닐 수 없다.
이상한 일이로다! 진작부터 온 집 안에 가득하던 매화 향기는 어디로 갔을까? 일어나 창을 열고 활짝 피어 있는 매화 가지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맡아본다. 그런데도 도무지 맡을 수가 없다. 아, 바로 내가 매화가 된 것이 아닌가? …… 물아일체, 내가 매화이고 매화가 내가 된 경지이다.
-63쪽 <향기로 꽃을 보네> 중에서
요동 벌판 어느 때나 다 지나갈까?
열흘 동안 산이라곤 볼 수도 없네
새벽별은 말머리를 스쳐 나는데
아침 해가 밭 사이로 솟아오르네
遼野何時盡, 一旬不見山.
曉星飛馬首, 朝日出田間
박지원, <요동 벌판에서 새벽길을 가며[遼野曉行]>
……
갈 길이 멀기에 오늘도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새벽별은 말머리에서 스쳐 지나간다. 별이 지고 나니 여명이 끝났나보다. 아침 해가 밭 사이로 솟아오른다. 광활한 자연과 대비되는 왜소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 솟아오르는 아침 해는 문명의 새아침을 기대했던 연암의 심사였을까? 뒷날 시인 이육사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고 ‘광야’를 노래하였다. ……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 소름 돋는 그 신새벽의 찬 길이 우리의 눈앞에는 늘 펼쳐져 있다. 시대의 새벽길을 홀로 걷는 이들의 발자국이 문득 요절한 가수 김광석의 가슴 저미는 노래로 들려온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281쪽 <새벽길 홀로 걸어가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