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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5293118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22-03-31
책 소개
목차
Prologue. 그녀와 그의 시간
인연과 악연
보람, 미안함의 다른 이름
남의 일, 나의 일
저마다의 사연. 정연의 이야기
저마다의 사연. 그녀들의 이야기
마주, 보다
Epilogue1.
Epilogue2.
마치며
책속에서
‘인연과 악연’ 중에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노동위원회에 해고를 당한 지 90일 안에 접수를 해야 한다. 윤성일이 부당해고를 당한 건 88일 전이다. 노무사 공부를 했다면 어느 정도 노동법 지식이 있을 것이다. 경력 사칭에 따른 즉시 해고와 해고 서면통지 위반, 거기에 부당해고 기간을 최대한 늘리려는 듯이 해고된 지 88일 만에 노무사를 찾아온 것까지, 아무래도 이거······. 정연은 노동법에 존재하는 ‘구멍’을 떠올렸다.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민주 사무장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찝찝하죠?”
“하, 당연히 그렇죠. 이런 상태로 제대로 된 변호를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요.”
‘보람, 미안함의 다른 이름’ 중에서
녹취파일을 다 들은 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은 수갑을 꺼내 덴바를 폭행한 남성의 손목에 채웠다. 남성은 무릎을 꿇으며 빌었지만 선처가 될 리 만무했다. 감독관은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덴바도 데리고 나갔다. 작업장을 나설 때 쯤 그 남성은 정연을 향해 “다 너 때문이야!”라고 소리쳤다. 정연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그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애써 분노를 진정시키며 가운뎃손가락만을 치켜 세웠다.
‘남의 일, 나의 일’ 중에서
찰나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연에게 지금이라는 순간이 그랬다. 이 세상에 소영과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정연의 눈에는 소영만 보였고, 소영이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조차 정연에게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허리를 숙인 정연은 블랙홀에 빨려들기라도 하듯 소영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소영도 다르지 않았다. 정연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그의 모습이, 그의 입술이 선명하게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팠던 이마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지 않았다면 시간이 멈췄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