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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9193474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0-10-11
책 소개
목차
서문 - 김정란
봄 이야기
황매화 - 그 예쁜 발 다시 만져 보고 싶네 (고두현)
히아신스 - 엄마가 남긴 오이지 (김정란)
나팔수선화 - 맨발의 사랑 (문형모)
딸기 - 국수로 만들어진 사람 (김서령)
에델바이스 - 처음으로 매 맞은 날 (백휘정)
감꽃 - 흐르고 흘러간다 (박남준)
개나리 - 양하 장아찌 앞에서 (이지환)
물망초 - 어머니, 아무리 말해도 질리지 않는 (양귀자)
라일락 - 이상한 동거 (김은성)
당아욱 - 자장면 사건 (최춘희)
은방울꽃 - 낡은 밥보자기 한 장 (이병천)
찔레꽃 - 이 세상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 (임영봉)
황새냉이 - 엄마는 글을 모르셨다 (조정육)
자운영 - 수없는 거짓말 (정성갑)
매화 - 식탁 위의 빈대떡 (김현정)
여름 이야기
해오라기 난초 - 아직도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김정산)
제라늄 - 영원한 그리움 (김후란)
달맞이꽃 - 눈보라 속의 어머니 (한승원)
금잔화 - 닭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 (도종환)
생강꽃 - 닳고 낡은 동전 지갑 (윤태호)
산세베리아 - 엄마가 미안해 (양나연)
오미자 - 바늘 하나로 가는 천국 (이하영)
칼라 - 함께 김장하는 날 (조영아)
루드베키아 - 감을 익힌 편지 (문건영)
아도니스 - 어미가 되고 나서 (정두리)
아칸서스 - 우리가 살던 집 (이방헌)
초롱꽃 - 어머니의 값진 희생 (강구정)
스타티스 - 모국, 그리고 어머니 (김원해)
달리아 - 수첩이란 희망의 유산 (박찬순)
가을 이야기
과꽃 - 그날의 도시락 (정영주)
갈대 - 거짓말 십 원어치 (김홍식)
캐모마일 - 불란서 주택 (이기호)
천일홍 - 나를 길들인 음식 (이승하)
수레국화 - 엄마 냄새 (이기인)
거베라 - 거울 같은 우리 (이나미)
수세미외 - 엄니의 새 (이정록)
옥살리스 - 오늘 황홀했지 (손세실리아)
아게라툼 -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박미라)
칸나 - 엄마처럼 살래요 (이은경)
헬리오트로프 - 그리운 건 엄마뿐 (정형근)
목화 - 막내둥이만을 위한 밥상 (신미식)
겨울 이야기
겨울앵초 - 나에게 보내는 엽서 (천운영)
수선화 - 마지막 김치 (구광렬)
적색 동백 - 명약으로 변한 분가루 (전희식)
비파나무 - 나를 키운 8할 (장승수)
선인장 - 선인장 꽃 같은 인생 (박찬순)
팔레놉시스 - 아주 적당한 된장 (윤대녕)
분홍 동백 - 나를 이끈 사람 (김예진)
시네라리아 - 울 엄마 딸인데! (윤세영)
복수초 - 마지막 대화 (도종환)
책속에서






어머니는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손을 잡고 그 위에 손자 손까지 포개 놓고는 흐뭇해하셨다. 그러다가 금세 뜨개질을 한다며 링거 줄을 이리 감고 저리 풀곤 하셨다. 당신의 일생을 필름처럼 되감아 보는 중이었을까. 일흔네 해의 생애가 한 편의 가족 비디오로 재생되는 동안, 병실에서는 몇 번의 웃음꽃이 피고 눈물바다가 이어지고 또 소꿉놀이가 계속됐다.
오후 들어 햇살이 따뜻해지자 어머니는 낮잠에 드셨다. 담요 위에 두 다리를 가지런하게 펴고 잠든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정신 맑은 시절에는 한 번도 제대로 뻗어 보지 못한 두 다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행여 ‘애비 없는 자식’ 소리 듣지 말라고 각별히 당부하셨다. 그러고는 발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객지 공부를 시키면서 어머니의 발톱은 얼마나 많이 닳았을까.
삶의 끝자락에 누우신 뒤 처음으로 편한 잠 주무시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나는 병실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무연히 콧등이 시큰해져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다보니 아, 무슨 꿈을 꾸시는지 어머니가 가만가만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다가 이불 밖으로 빠져 나온 발을 살며시 만져 드렸다. 햇살을 받아 눈부신 두 발이 옛집 마당가의 분꽃보다 더 희고 고왔다. 병실이 다 환해졌다.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오늘 그 예쁜 발을 다시 한 번 만져 보고 싶다.
고두현 <그 예쁜 발 다시 만져 보고 싶네> 중에서
엄마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듯이 비닐봉지에 꼬질꼬질 싸 둔 오이지 옆에는 당신이 몸소 기르신 청양 고추도 있었다. 나는 집에 와서 혼자 그 오이지랑 고추를 다 먹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 아픈 몸으로 딸에게 먹이겠다고 오이지를 무치신 내 엄마. 나는 그 오이지를 혼자 먹어야 했다. 그건 남편과도 아들과도 상관없는 나와 엄마의 배타적인 신성한 소통에 관한 문제였다. 고추는 정말 매웠다. 하지만 나는 엉엉 울면서 악착같이 다 먹었다. 대지에서 솟아올라 엄마의 손을 지나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어떤 영기(靈氣)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신성한, 가장 단순한……. 그러나 그 오이지는 그 자체로 얼마나 절박한 사랑이기도 한가.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김정란 <엄마가 남긴 오이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