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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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태평동에서 전주 이씨 건한과 김해 김씨 성녀 부부의 두 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윤상(李允相), 호는 성해(星海). 이익상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920년 김억·남궁벽·우상순·황석우·변영로·나혜석·염상섭 등이 창간한 동인지 《폐허》에 참여했으며, 1921년 ‘도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 편집부원을 지냈다. 1924년 김기진·박영희·안석영·김복진·연학년·이익상·이상화 등과 그들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파스큘라(PASKYULA)’를 결성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 운동을 표방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1922년 조직된 최승일·송영·김영팔 등의 좌익 문학 단체 ‘염군사’를 통합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결성했다. 그러나 1926년 12월에 개최된 카프 임시 총회에서 자진 탈퇴하는데, 투철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투사를 필요로 하는 조직과 부합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익상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1927년 11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한 뒤에 1930년 2월부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익상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분야인 영화와 연극에까지 폭넓은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1926년에는 김기진·윤심덕 등과 함께 진보적 연극 단체 ‘백조회’를 결성했으며, 1929년에는 김홍진·박승희·김팔봉 등과 동양영화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익상(《매일신보》)은 이서구(《매일신보》), 김기진(《중외일보》), 안석영(《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과 영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찬영회’를 조직했다. 찬영회에서는 출범 기념으로 최승희의 무용과 극단 토월회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했으나, 1931년 1월 나운규가 주도한 ‘찬영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했다.
작가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이상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이익상도 식민지 지식인의 생활고는 비켜 가지 못했다. 이익상은 불안정한 생활과 고혈압, 대동맥경화증 등 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했는데, 특히 투병 중이던 최서해에게 대량 수혈한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낙오자〉(1919), 〈번뇌의 밤〉(1921), 〈연의 서곡〉(1924), 〈흙의 세례〉(1925), 〈쫓기어 가는 이들〉(1926), 〈그믐날〉(1927) 등과 장편소설 《키 잃은 범선》(《조선일보》, 1927. 1. 1.∼7. 19), 《짓밟힌 진주》(《동아일보보》, 1928. 5. 5.∼11. 27), 《그들은 어디로》(《매일신보》, 1931. 10. 3.∼1932. 9. 2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1926년에 발표된 《흙의 세례》(문예운동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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