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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4634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0-04-17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마트료시카 13
MRI 14
돋보기의 공식 16
줌(zoom) 18
재활병원 20
모태 속으로 22
몽유(夢遊) 속으로 23
난 벤다이어그램을 사랑해 24
2018호 26
유령의 식탁 28
쓸쓸한 날엔 파마를 하러 간다30
모닝 톡톡 32
미늘 34
유턴 35
우로보로스 36
눈독 38
꽃을 긁다 40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42
제2부
코마 45
걷는 사람 46
그렇게 꽃은 피었다 지네 48
굴헝 50
초록에 잠들다 52
꽃의 순장 54
용설란 56
러시안룰렛 57
나를 검색하다 58
눈물을 받으러 갔다 60
솟을연꽃살문 62
죽은 발톱 64
풀물이 드는 오후 66
사방무늬 패턴 68
부메랑 70
나는 오른쪽 콤플렉스가 있다 72
밀림의 시간 74
지리멸렬 76
제3부
그것은, 웃음일까 울음일까 79
무한화서(無限花序) 80
실연 82
어머니의 스웨터 84
초유(初乳) 86
꽃에 대한 예의 88
달궁무위도(達宮無爲圖) 89
사랑 90
템페스트 3악장 92
레고의 집 94
잎새뜨기 96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98
철기시대를 추억하다 99
불시착 100
병목 102
데스밸리 모텔 04
고딕의 거리 106
지나가는 노래 108
해설 일상에서철학으로 109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책속에서
문 속에 문
뚜껑을 비틀거나 잡아당겨야 열리는
내 몸에는 문이 몇 개나 될까
나를 작동시키는 문을 바라본다
비밀을 간직한 창
잊어버린 비밀이 잊어버린 비밀을 기억해내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
비밀은 안녕한가
나는 어떤 번호로 해제되어야 속살을 보일까
이 문을 열고 저 문을 닫는 순례들
빈방의 얼굴이 창백하다
비밀이 너를 만진다
너의 표정은 언제나 굳게 잠겨 있다
―「마트료시카」 전문
우리, 뱃머리에 누워 밤하늘이나 볼까 곧 세기의 사랑이 시작되겠지 동그라미 하나가 다른 동그라미 속으로 막 닻을 내리고 있어 초승달이 되어가는 가슴, 나는 한입 베어 문 사과처럼 너에게 먹히고 있어 나는 벤다이어그램을 사랑해 끌어당기듯 내어주는 기쁨 같은 아니 슬픔 같은 놀이, 너이기도 나이기도 한 우리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우리가 점점 부풀었다 꺼지는 그림자놀이 그때, 나는 뒷걸음치듯 너를 들락거리며 저 바닷물이 찰싹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 우리는 식(蝕)의 계절을 지나가고 있었어 섬들이 서로의 발부리를 잡고 있듯이 우리의 운행은 하나일 수 있을까 허공에 두 개의 원을 약속처럼 걸어놓고 사람들은 서커스 불 쇼에 열광하는군 곡예사가 불꽃을 뚝뚝 떨구며 불구덩이를 통과하는 동안 아, 아득한 시공을 스쳐가는 나, 나는 벤다이어그램을 사랑해 지금 너는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니 이제 막 너는 배가 부르고 나는 다시 배가 고파져 월식으로 까맣게 먹혀 들어간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밀월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을까 시계 초침 소리 허공이 듣고 있어 절벽에 부딪히는 밤, 파도 소리를 내며 너는 멀어져 가고…… 저것 봐, 바다에는 만월이 다시 붉게 태어나고 있어 아 쓸쓸한, 나는 벤다이어그램을 사랑해
―「난 벤다이어그램을 사랑해」 전문
일생에 딱 한번 꽃을 피운다
한 저녁이 또 그 가시 잎에 맺혀 있다
사막에서 잎을 틔우는 일은
살아낸 밑동부터 한 잎 한 잎 버리는 것이다
버린 한 잎의 제 살을 발라먹고
버린 한 잎의 제 결로, 제 눈물을 핥아먹고
그 눈물만큼 깊어가는 갈증으로
지구 저편으로 걸어간다
―「용설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