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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51024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12-27
목차
1부
가을 문턱·12
고생이라는 말·13
괜찮다·14
길고양이 놀기 좋은 오후·15
기울어진다는 것·16
꿈틀꿈틀, 꿈을 틀다·18
등짐·20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21
먹심·22
고르는 일이란·24
오후, 푸른 날개 돋다·25
입학다완立鶴茶盌·26
그대가 주인 ― 수처작주隨處作主·28
조혼早婚·29
토굴土窟·30
풀꽃 의미·31
평상심, 건져 올리다·32
한여름 낮의 피서록·34
2부
그리움은 땅을 뚫는다·38
네 잎 클로버·39
나무 화석·40
녹아내린다·42
누운주름꽃·44
대숲의 시간·45
모란이 피고 지는 사이·46
목화꽃 벙그는 밤·47
뭇 꽃보다 그대·48
본색을 드러내다·49
봄볕에 핀 해바라기 두 송이·50
비밀 정원·51
상강 아침·52
새깃유홍초·53
히말라야 오로벨·54
손톱을 자르는 남자·56
여름, 동백꽃 피다·57
화살나무 단풍·58
3부
납월홍매·60
서 있다는 것·61
사랑, 그거 별거 아니더라·62
성스러운 기운·63
노숙 막사발 대접하기·64
먹대·66
살 속에 박힌 씨앗·68
연을 심다·70
세상 속으로 스며들다·71
압해도, 아기 동백꽃아 말문을 열어다오·72
여자만 달·74
열화정 기와지붕 위 동백은 푸르고·76
화사花蛇, 화사華死·77
지척지간咫尺之間·78
팽나무 그림자·80
풍경소리·82
힘든 일·84
4부
소신공양燒身供養·86
너덜범종·87
통通·88
금동여래좌상 앞에 오른 무릎을 꿇고 앉아·90
금와보살 죽비·92
눈물한방울차·94
대자보大慈報·96
능견난사能見難思·98
방생·99
방생 2·100
사사불공事事佛供·101
이름바위·102
자장동천 연리목·104
운주사 와불·106
열반종涅槃鐘·107
향기 보시·108
와온 낙조·109
해설 | 송희복_땅의 상상력과, 스며듦의 몽상·110
저자소개
책속에서
1부
가을 문턱
긴 장마에 웃자란 텃밭의 풀들, 꽃대 올린 부추보다 키를 세웠다. 높아진 하늘 뭉텅뭉텅한 구름, 산 아래 허리 구부려 누운 햇볕, 돌담 아래 서 있는 파초가 거느린 식솔들, 자라나는 움직임의 속도에 눈 밑이 촉촉해진다.
새벽 산책길 무인카페 백열등 불빛이 사람 사는 마을 같아 뭉클하다. 베란다 창 서늘한 공기 틈새로 스멀스멀 기울어지던 오후, 기척 없이 잘 살던 죽마고우가 먼 곳으로 이사 갔다고 카톡이 셀프로 소식 알린다.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하나씩 생겨난다.
버려야 할 물건은 없는지, 미뤄두었던 말 더 늦지 않도록, 몸과 마음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자 하룻볕도 내려와 간짓대를 높이 세워 놓는다. 툭툭 스러지는 쪽으로 한사코 기울어지는 단풍의 시간이면 분주해지는 것이 마음뿐이 아니다.
고생이라는 말
내 안에 물기가 말라 마른 무청처럼 서걱거린다.
그럴 땐 생의 바닥을 견디기 위한 몸짓, 시래깃국을 끓인다.
뭉근하게 끓인 된장 국물 속, 보드라워진 시래기 건더기를
건져 먹고 따뜻한 국물을 훌훌 들이켠다.
드러냄보다 묻어두고 싶었던 침묵의 무게
웅크리던 어깨와 기울어진 무릎의 행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고생이라는 말과 행복이라는 말
뿌리에서부터 혈육이었던 걸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괜찮다
비바람
내 눈에 놀다 간 후
내 얼굴 맑아졌다
눈보라
내 마음 마실 다녀간 후
내 가슴 따뜻해졌다
괜찮다,
작설차 한잔 마주하니
이제는 세상만사 모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