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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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가 외교관과 재혼하여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이주했다. 이때 교육받은 영국 문학작품들은 페소아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 활동도 포르투갈어와 영어로 했다. 1905년 열일곱 살 되던 해 포르투갈로 돌아온 뒤로는 거의 리스본 안에서만 생활한다. 1912년 「사회학적 관점에서 포르투갈의 새로운 시」를 『아기아(Aguia)』지에 실으며 첫 평론을 발표한다. 1914년에 페소아는 자신의 대표적 이명인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 히카르두 헤이스(Ricardo Reis), 알바루 드 캄푸스(Alvaro de Campos)를 고안해낸다.
1915년에는 포르투갈 모더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오르페우(Orpheu)』지를 창간한다. 이해 같은 잡지에 알바루 드 캄푸스가 시를 발표하며 대중들 앞에 처음 선다. ‘오르페우 세대(geracao d’Orpheu)’라 불리는 여러 동시대 모더니스트 문학예술인들과 교류한다. 1919년 무역회사에서 번역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이듬해 출판사 겸 광물 무역회사 ‘올리지푸(Olisipo)’를 차린다. 이 출판사를 통해 당시 포르투갈 사회에서 문제적으로 여겨지던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면서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한다.
1924년 히카르두 헤이스가 『아테나(Athena)』 창간호를 통해 20편의 송시를 발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1925년 『아테나』 4호를 통해 알베르투 카에이루가 대표작 「양 치는 목동」을 발표한다. 1929년 『아 헤비스타(A Revista)』지에 베르나르두 소아레스(Bernanrdo Soares)라는 이름으로 『불안의 책』의 일부를 발표한다. 1934년 페소아가 살아생전 출간한 유일한 포르투갈어 시집 『멘사젱(Mensagem)』이 출간된다. 『멘사젱』은 ‘포르투갈 국가선전부’에서 제정한 ‘안테루 드 켄탈 상’ 2등상을 수상한다. 1935년 11월 페소아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한다. 페소아의 글들은 2019년 포르투갈 국보로 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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