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현대화 비교: 동아시아 삼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삼국을 중심으로)
김동일 | 박영사
16,200원 | 20230815 | 9791130318134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갓 출판된 〈정치학 개론〉 (??煦 저)을 읽은 뒤, 내가 대학교에서 관심을 가진 분야가 정치학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정치학은 사회학 등 학과와 함께 1952년에 취소된 후 이때까지 중국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그 뒤 나는 석 ·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로 학문의 시야를 넓혀갔다. 박사학위논문으로 동아시아 삼국을 비교해 볼 생각이 있었으나, 여러 한계로 인하여 중국행정개혁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사논문의 주요 내용에 더해 한국의 관련 상황과 비교하고 또한 행정의 시각에서 현대화를 살펴본 것이 내가 지어낸 첫 학술 전문서인 《行政??代化 : 以中????例》 (2004年, 天津人民出版社)이다. 이 책과 정년을 앞둔 현재 출판된 이 책 사이에 거의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동아시아 삼국을 비교하려던 오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본서는 동아시아 삼국의 전통국가, 이행과정, 안정된 후의 국가상태 등을 살펴보면서 기존에는 어떤 상태였고 무슨 원인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연구한다.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실제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국가를 구축했는가’라는 문제이며 또한 ‘국가의 현대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되며, 혁명과 국가와 같은 중요한 이론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에 관한 연구는 국가건설 방향 등에 대한 논의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전통국가를 살펴봄으로써 삼국의 제도적 특징을 분석하였고 이들의 뚜렷한 공통점은 지배세력의 정치영역에 대한 독점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정치영역의 神聖化다. 이는 다양한 상징과 신분계급제 등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권은 관념 영역을 엄격히 통제하거나 공식적으로 승인된 관념만 도입 또는 존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공통점은 동아시아의 전통 국가들이 수세기 동안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이며 이들 국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직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우리는 동아시아 전통국가들이 스스로 현대화의 길로 갈 수 없었던 주요 원인은 결코 공상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체제와 관념체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통국가는 국가체제와 관념적인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조선과 중국은 나라가 멸망하거나 무너진 뒤에 정치세력을 재편성하여 국가재건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고, 일본은 전통적 정치세력의 주도하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이 국가들의 변혁 과정의 실상과 유럽의 이행상황 등을 고찰한 결과, 삼국의 서로 다른 이행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견해를 도출할 수 있었다. 압박의 성격이 해방의 성격을 규정하고 해방으로부터 얻어진 국가상태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이로부터 결정된다.
중국의 정치운동과 한국의 민중운동은 이 두 나라의 현재 국가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메이지유신은 혁명의 기본적인 성격을 띠지 않으며, 일본의 국가이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의 압력에 따른 전후 개혁이었다. 혁명이론과 한국의 민중운동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상향식 방식, 상징의 변경, 합법성의 새로운 기반 구축, 특히 자유를 쟁취하는 것과 국가체제의 이행 측면에서, 혁명이 종종 폭력을 수반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민중운동과 혁명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의 기본이념, 체제와 기제, 자주성과 능력, 問責制 등을 근거로 변혁 후 동아시아 삼국의 기본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이행 발단의 주원인과 당시 세계의 기본구도로 인해 이들은 민족국가의 재건과 自救를 주요 특징으로 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부강을 위해 집권의 길로 갔으며, ‘第一要務’로 상정했던 부강이 현대화와 거의 동일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의 현대화 과정에서 출현한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는 같은 개념이지만, 동아시아 국가의 현대화 과정에서 이 두 ‘국가’는 서로 어긋남을 보인다. 이는 구미국가 이외 나라들의 발전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역사와 현실에서의 국가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국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국가의 여러 측면과 본질이다. 그것인즉 ‘역사적 정치공동체’, ‘가치 중립’ 또는 ‘無영혼’의 ‘도구성’, ‘집단행위자’ 및 ‘제도의 場’ 등 네 가지 상이며, 그 본질은 주권을 가진 정치공동체이다. 이러한 견해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국가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국가가 전통국가와 구별되는 근본적 특징은 국가의 公器 지위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법치다. 국가현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성, 神聖化, 세속성의 기본 함의를 인식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현대화 과정의 실제 상태와 해결해야 할 주요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다.
현대화는 ‘기획’과 ‘진화’가 혼재된 과정이며 결코 경제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관념과 사회 및 정치 영역의 현대화도 의식적으로 추진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국가이행이라는 중대한 변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강제적인 정치운동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이는 오로지 인간에게 자유가 보장되고 이에 상응한 제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실체로서의 국가는 정치활동의 최고 작품이며 인간의 지혜와 힘의 최적의 융합이고 전시다. 이러한 지혜와 힘의 관계에서 제도화의 본질이 구현되며 국가현대화의 논리도 설명될 수 있다. 제도화의 시각에서 본다면 理 또는 제도화가 인류공동체에서 힘을 넘어서는 분수령과 그 정도가 곧 현대화의 실제 상황이다.
유럽의 중세기부터 권위와 권력이 분리된 상황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 둘의 분리된 안정적 상태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는 立國원칙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의 주제 범위 내에서, 권위는 국가라는 공동체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이 공유한 신앙이며 어떤 현실적 권력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立國원칙은 국가의 의미나 존재가치 등에 대한 지식인 엘리트들의 성찰에 의해서만 수립될 수 있다. 또한 張力이 없는 진보는 상상할 수 없으며 현실정치를 초탈한 지식인 엘리트만이 그러한 張力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식인 엘리트에게 전속(專屬)적인 사회공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현대화의 기본적 함의로 인해 현대화를 논할 때 ‘사람’이라는 핵심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사실 ‘사람’은 현대화의 기본 목적일 뿐만 아니라 현대화 실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이 현대화의 第一要務이며 동아시아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상정했던 부강은 이러한 第一要務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국가는 그 범위 내에서 ‘사람’의 현시이고 구현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주로 중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기는 하나 중국에만 편향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