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시적 방랑과 유럽 여행 (예술과 종교의 풍경 속으로)
김재혁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700원 | 20190430 | 9788976419934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쉼 없이 방랑의 인생을 살았다. 그가 거쳐 간 나라는 12개국이고 그가 거처로 삼았던 곳이 100군데가 넘는다. 릴케의 시가 초기의 무해한 달콤함을 벗어나 온갖 고통과 번민의 색깔로 물들고 거기서 새로운 영롱한 빛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방랑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한 장소를 거쳐 갈 때마다 그곳에서는 한 권의 새로운 시집이 탄생했다.
이 책의 저자는 릴케가 머물렀던 여러 고장을 되도록 직접 사진에 담아 보여주려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발품을 많이 팔았다. 이를 위해 그가 사물시의 조형성을 발견했던 프랑스 파리, 세잔과 고흐의 흔적을 느꼈던 엑상프로방스, 아를, 마르세유, 기독교의 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아비뇽, 예술적 영감을 위해 찾아갔던 이탈리아의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태고의 바람을 느꼈던 카프리 섬, 기독교와 이슬람을 다시 생각했던 스페인의 세비야, 코르도바, 창조와 천사의 땅을 보았던 톨레도, 론다, 많은 사랑의 흔적을 남긴 독일의 베를린, 뮌헨, 부르크하우젠, 킴제 호수 같은 많은 장소 외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체코의 프라하를 탐방하였으며, 그리고 의 첫 몇 편의 비가를 얻었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해안가의 두이노 성과 만년을 보내면서 를 완성하고 를 썼던 뮈조 성이 있는 스위스 시에르 지방과 그의 인생의 종착지인 무덤이 있는 라론 지방을 돌아보았다. 또한 릴케에게 조형적 인식과 시적 성취의 획기적 전환을 마련해주었던 북부 독일 브레멘 근교의 예술가촌보릅스베데를 방문하여 그 지역 특유의 광활한 습지풍경과 예술적 분위기를 접하고 많은 사진자료를 만들고 글을 썼다.
저자는 오랫동안 공부해온 릴케를 ‘그와의 대화 형태를 통해 보다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화 형식의 장점은 서술 대상과의 거리와 시공을 초월하고 화제의 범위와 한계를 용이하게 뛰어넘으며 독자들이 궁금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쉽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독자의 호기심의 길을 따라가며 궁금한 테마를 한꺼풀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자료를 가지고 단순하게 대화 형식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릴케를 접해왔던 경험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되도록 릴케의 세계에 깊이 다가갈 수 있도록 그와 교감하고 생동감과 다채로움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시인이면서 수도사 같은 삶을 살았던 릴케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생의 테마와 그가 가졌던 삶의 태도, 여러 예술가들과의 만남,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각 종교에 대해 품었던 생각, 방랑시인으로서 떠돌며 각 도시와 그곳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인 느낌, 독자로서 때로는 번역가로서 다양한 책에서,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받은 영향, 우리 독자들에게 늘 거대한 산으로 다가오는 대작 에 얽힌 이야기 등을 다채롭게 다루어 독자들의 교양식견을 넓히는 데에도 일조한다.
이 책은 총 스무 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스무 편의 글들은 서로 연관성을 갖고 릴케를 조명하지만 각 꼭지는 별개의 독립된 글로 이해하고 읽어도 무방하다. 각 편의 글은 릴케의 방랑과 여행지 그리고 그가 그 속에서 만들어낸 삶의 결과물인 문학작품을 긴밀한 피드백의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다. 독립된 한 개의 글에서 그가 머물렀던 정거장의 분위기와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