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무술사 (中國武術史) (중국무술의 발달 과정)
김용수·김택호 | 부크크(bookk)
28,000원 | 20250519 | 9791141951139
이 책 쓰면서
중국 문명은 황허강 유역에서부터 퍼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분명한 역사적 자료가 있는 최초의 왕조는 BC 17세기 경의 은(殷:또는 商) 왕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문자체계와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은 왕조의 지배를 받던 주왕조는 11세기 중반에 은 왕조의 지배층을 무너뜨리고 BC 3세기까지 통치했다. 도교와 유교가 이 시대에 확립되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불리는 갈등의 시대가 BC 5세기부터 BC 221년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진(秦) 왕조가 세워졌다. 차이나(China)라는 영어 이름은 진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후 진 왕조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며 중국을 통일했다.
206년에 세워진 한(漢)은 AD 220년까지 중국을 지배했다. 다시 혼란의 시기가 이어진 후에 581년에 수(隋)가 건국되었고 중국의 재통일을 이루었다. 618년에 수에 이어 당(唐)이 들어섰다. 960년에 송(宋)이 설립된 후, 북쪽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야 했다.
1279년 송은 붕괴되었고 몽골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방문했다. 몽골 통치에 이어 세워진 명(明)은 1368년에서 164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명나라는 반외세 감정이 강하여 세계 다른 나라들과 담을 쌓는 쇄국정책을 폈다. 1644년 만주족이 명나라의 중국을 침략했고, 청(淸)을 세웠다. 청은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통상압력과 잦은 침략을 받았다. 이것은 19세기에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 청일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모든 사건들은 청을 기울게 했다. 청은 1911년에 무너졌고, 1912년에 쑨원[孫文]에 의해 공화국 정부가 선포되었다. 하지만 지역 군벌들의 권력 투쟁이 공화국을 약화시켰다.
장제스[蔣介石]는 1920년대에 어느 정도의 전국 통일을 이루었다. 그후 장제스는 공산당 세력과 갈라섰고, 이들 공산당 세력은 자신들의 정부와 군대를 조직했다. 1937년에 일본은 중국의 북부지역을 침략했고,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만주국). 중국공산당은 대장정(1934~35)을 통해 농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대장정 과정에서 마오쩌둥이 그들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이 항복하자,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격렬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49년 이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달아났고,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 후 무정부 상태, 테러, 경제적 마비 상태가 나타났다. 곧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여 온건 노선을 추진했다.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단행했고 서방국가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는 중앙계획경제를 탈피하기 시작했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의 국영기업들이 국가 소유와 민간 소유를 혼합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중국 사회 변화에 진전을 이루었다. 1989년에 발생한 톈안먼 사건[天安門事件]은 1980년대 이후 차츰 안정되는 정치적 변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고, 1999년에는 마카오가 반환되었다.
무술의 기원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활하면서 닥치는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무술은 인간과 역사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일상생활의 움직임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획과 어획, 채집생활, 그리고 전쟁을 위한 것으로써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생활을 유지(維持)하고 동물과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防禦)·보호(保護)하고 나아가 부족의 안위(安危)를 위한 호신술(護身術)에 의해 발생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생존과 전쟁에 의한 호신술(護身術)은 무술 문화와 접하면서 평상시에는 생존과 전쟁에서 해방되어 ‘삶의 여유’가 생겨났고 이 삶의 여유는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무술’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무술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전통 운동으로, 그 기원은 원시 씨족 공동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개인은 숙련된 사냥꾼이며 잠재적인 전사(戰士)였다. 따라서 전체 민족이 통합하게 되면 강력한 군사력으로 변모했다. 야수와 싸우는 것은 적과 대적하는 기교와 서로 통하는 점이 있었으므로 한 번에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냥감을 제사에 바칠 수도 있으며, 군진의 변화를 연습할 수도 있고 또 심신의 오락으로 즐길 수도 있었다.
무술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는 궁술·창술·검술이 있고, 중국에서 시작된 비무장무술은 발과 손으로 치거나 잡는 기술을 강조한다. 가장 다재다능한 기술을 요하는 무술은 둔갑술이다. 이것은 봉건시대 일본에서 군대 밀정들이 익힌 무예로 변장·탈출·잠복·지리학·기상학·의학·폭약 등에 관한 훈련까지 포함되었다. 오늘날에는 무장무술에서 유래한 검도와 궁도 등을 스포츠로 즐긴다. 태권도·유도·스모·가라테와 같은 스포츠는 비무장무술에서 유래했고, 합기도와 쿵후는 방어용 무술이다. 중국식 비무장 무술인 태극권을 단순화한 형태는 무술과 완전히 분리되어 건강운동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비무장무술뿐만 아니라 무장무술도 정신단련 수단으로 많이 이용된다.
동양의 무술은 도교와 선불교의 영향으로 무인의 정신상태를 강조하게 되어 다른 무술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합리적으로 추론하고 판단하는 정신기능을 잠시 중지시켜 주위의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몸과 마음이 하나의 단위로서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동양무술이 추구하는 경지이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주체와 객체의 2원성은 사라진다. 도교와 선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이런 정신상태와 신체상태를 이해하려면 몸소 경험해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철학적 훈련과 정신단련의 일환으로 무술을 익힌다. 무술을 익히는 사람들 상당수도 이런 철학을 실천한다.
2025년 5월
海東 김용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