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중도사상과 니르바나 (인도의 역사가 탄생시킨)
이상현 | 삼화
13,500원 | 20260226 | 9791193037089
대나무야! 대나무야!
몸은 맺이 곧이 굳셈인데
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구나
아! 그 안에 우주의 영기(靈氣)가 들어있다고?
영기! 그것이 바로 진리가 아니더냐?
진리! 그는 거대한 나뭇등걸. 대지의 깊은 곳에 수많은 뿌리를 박고, 수행과 사색으로 생겨난 전설들을 빨아올려 종교를 통해 만민에게 깨달음과 신앙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그래! 진리는 하나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라는 가지들을 통해 인류의 고통을 위로하고 구원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2025년도 한국 통계청의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인구의 반수를 넘기는 3천9백만 명이 불교 신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중 몇 명이 석가모니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사상, 그가 추구한 목표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여류 피아니스트는 열성적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그는 불교 행사장마다 따라 다니며 피아노 연주를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한 유명 스님의 야외 행사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소낙비를 맞은 것이 계기로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있다.
그녀는 한 스님에게 자신은 피아노를 열심히 치지만,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석가모니가 어떤 분이지,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통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문에, 그 스님은 대답하였다. “보살님 모르셔도 됩니다. 그냥 열심히 믿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다! 이것이 한국 인구의 반수를 넘기고 있는 불교 신자들의 고백이며 현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불교와 석가모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올바르게 알고 믿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불교라는 종교가 인생에 대한 회의로 고민하던 석가모니라는 개인이 개인적으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한 가지! 미국의 세계적 명문대학이라 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한국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 승려가 되어, 한국으로 왔다던 현각(玄覺)스님은 왜 한국을 떠나야 했는가? 혹시 그에게 한국불교의 기복신앙이나, 기업화되고 있는 현상, 아니면, 그를 추천한 숭산(崇山)스님이 했다는 “한국불교가 연예인들의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탄식이 사실임을 목격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각설하고, 그러나 역사를 배운 이라면 인류의 역사상, 그처럼 중대한 사건이 어느 날 갑자기 개인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예수의 출현을 보더라도 그 이전에 구약성서라는 장대한 역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위로 진리를 구하라는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상징하는 관자재보살과, 아래로 중생을 교화시키라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동일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관(觀)’이라는 글자가 같다고 해서 동일 존재로 보는 것은 그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닌가? 대승불교의 성전에 있으니 진실이라고? 그렇다면 ‘관세음’과 ‘관자재’ 중 하나만 쓰지 무엇 때문에 함께 쓰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동일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먼저 관자재보살이 된 후에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 철학의 서문이라 할 수 있어서, 사찰 예불에서 빠짐없이 읊어지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서부터 비롯된다.
그에 대한 한글 해석을 보면, 첫 구절인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라는 구절이 문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글의 주어가 어디까지나 관자재보살이라는 것이다. 해서 그 내용은 관자재보살의 생각이며,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관자재보살이 하는 일은 우선 마하반야바라밀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불자(佛者)들의 읊을 때는 그들도 관자재보살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관자재보살이여!
그대가 마음을 써서
꿀벌이 꿀을 찾듯
성스러운 진리를 찾아보아라!
색-수-상-행-식이 모두 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일체 고액을 건너 벗어 버리게 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반야바라밀다에 대한 해설, 즉 꿀벌과 같은 진리 추구행위를 숨겨버리면, 관자재보살의 기본정신인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의미를 숨겨 버린 것이 되고, 여기서 상구보리의 상징인 관자재보살을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상징인 관세음보살과 혼동하게 하는 결과를 낳아 놓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불교라는 위대한 종교는 7000년 전 인도의 신석기시대로부터 시작된 역사의 종합적 결실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무시하고 불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석가모니를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온 신(神)이 아닌가 하는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자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학의 범위 안에서는 인도의 이와 같은 사상사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의 사상사를 제대로 본 이는 인도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의 역사학자 듀란트(W. Durant)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인도사라 하면, 인도-아리안족에 의해서 전개된 갠지스강의 문명을 시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인더스강 유역에서 비롯된 드라비다족의 역사로부터 그 시작을 찾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인도의 모헨조다(Mohenjo-daro)로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고대의 문화였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자기록으로 전해지는 바가 없어서 유적 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추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24년 이것이 영국인의 발굴작업을 통해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영국인의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니, 결국 이것이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인에 의해서라 할 수 있다.
인도 사상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특히 어려운 점은 유물 유적 그리고 문자기록, 그리고 행사 등으로 나타나는 사건 사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심오한 명상과 수행의 세계, 즉 체험이 쉽지 않은 인간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인도의 지역이 광활하고, 지역적 특색과 인구의 구성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화-문명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느 지역 어느 종족의 것인가 하는 것이 애매모호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도의 문명을 인더스강 유역 드라비다족의 원초적인 시작에서 갠지스강의 인도-아리안족의 문명과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서 인더스문명은 고고학적 유적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으로 그치기 일 수다. 그러나 구전(口傳)이라는 전승(傳承) 방법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글은 독자들이 보듯이 자문자답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35년에 걸친 명상수행 중에서 의문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을 질문으로 만들고, 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고, 자료를 찾고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학자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평생 작업이 학문연구였고, 교수라는 직업인이었기에 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결국 문답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한가지 밝혀둘 것은 이 글을 씀에 있어서 사실확인의 많은 부분은 미국 Edingburgh T. T. Clark사에서 발간한 James Hastimes의 《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에서 많은 것을 확인 참고하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