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골 (빵의 언어로 읽는 소설 요한복음)
오근재 | 서림재
16,200원 | 20190515 | 9791196227937
[내용소개]
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같은 면모를 갖고 있다. 이 책의 주제도 구원을 찾아가는 영혼의 행보이다. 오 집사가 도마를 만나자마자 사실상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 자기구원의 확신에 관한 것이었다. “도마님, 제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제 노력과 분투로 제 자신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바꿀 가능성이 없다면, 말을 바꾸어 토기가 토기장이로부터 자비를 구할 수 없다면, 또 달리 말해서 이 우주 안에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이 편만하다면, 저는 제 삶을 능동적으로 경영해야 할 모든 명분을 잃게 됩니다. 도마님, 저는 창세 전에 선택된 존재일까요, 아니면 유기된 존재일까요? 저는 사도인 도마님으로부터 이에 대한 해답을 듣기 전에는 도마님으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왜 오 집사는 40년 동안 교회를 다니고 그토록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고도 구원의 확신에 이르지 못했을까? 그가 다닌 교회의 목사들이 몽환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경건상태에 있는 것만을 구원이라고 경직화시켰기 때문이다. 목사들이나 동료 신자들은 믿으면서도 의심에 시달리는 자신의 실존적 불안이 구원받지 못한 증좌(證佐)라고 보았다. 은 신앙적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며 냉담과 냉소로 경직화된 오 집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산파술적 성경공부방이다. “성서를 너무 분석적으로 보시고 인간의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일은 집사님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대신 집사님 자신은 항상 비관적인 관점에 서게 되고 스스로 불행감과 낙담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돼요. 그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집사님 자신이 힘드실 거라고 생각돼요. 도마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사실은… 도마님과 제가 이곳에 온 것도 그렇지만, 또 집사님을 이렇게 배다골로 초대한 것은 집사님의 냉소적 믿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어요.”
클라라가 낙담과 냉소에 빠져 교회와 신앙의 변두리를 배회하던 오 집사에게 해 준 충고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땅의 교회 어디든지 이런 오 집사 같은 변두리인, 대극적 이중존재, 냉담과 낙심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영접하는 같은 사랑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문자적인 의미의 요한복음 해설서는 아니다. 이 책에는 음악, 철학, 미학, 그리고 도상학과 그림들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오 집사와 도마가 다루는 주제는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쟁점들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경계를 넘는 인문학적 쟁점들이기도 하다. 이중예설, 삼위일체, 원죄론, 해석학, 사복음서의 저작 역사, 근본주의, 이레니우스, 셉투아진트(70인역), 파라텍스트, 유식(唯識)불교의 무아설, 하르낙, 바르트, 불트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베토벤, 바흐, 루벤스, 렘브란트, 푸가와 쏘나타, 주체성과 자유, 성서무오설 등 숱한 신학적 쟁점들과 예술적인 개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는 평신도들이 한 번 정도 제기할 수 있는 모든 질문들과 쟁점들이 망라되어 있다. 바로 이 사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이 점이 이 책만의 특장(特長)이자 돌부리 같은 각성제이다.
주인공 오 집사처럼 이렇게 철저하게 사유하고 고뇌해도 정신적 자기상승의 힘으로는 구원의 환희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구원은 2015년 5월 5일 늦은 오후의 배다골에서처럼 우리 밖에서 우리를 정밀조준하며 우발적으로 찾아온다. 일찍이 괴테가 말했듯이 살아있는 자에게 방황은 불가피하다. 기독교 신앙은 의심 없는 즉자적(卽自的) 신앙의 직선주로를 내달리는 절대직진 여정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숱한 변곡점과 후퇴와 방황을 수반하는 복합적인 순환운동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메가 포인트로 이끌려가는 절대수동태적 능동이다. 후퇴처럼 보여도 전진인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패배처럼 보여도 승리인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심해의 산호초처럼 매순간 흔들려도 하나님을 향해 흔들리면 길은 있다. 은 약간의 인내를 가지면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클라라가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도마가 되어 주고 싶어진다. 이런 멋진 책이 우리나라 평신도 그리스도인에게서 쓰여졌다.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
- 숭실대 신학교수 김회권 목사 추천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