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덩어리의 전조
신예슬, 오민, 문석민 | 작업실유령
25,200원 | 20251114 | 9791194232209
『음향 덩어리의 전조』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약 300년간 서양 음악사를 관통하며 동시대 음악에서 맞춰지지 않은 조각들을 찾아온 ‘악보들’의 여덟 번째 책이자 마지막 권이다. 악보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을 좇았던 지금까지의 여정과 달리, 『음향 덩어리의 전조』는 그 내부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향 덩어리의 모습’을 살핀다.
지금-여기에서 관찰되는 음악의 동시대성
‘‘악보들’의 출발점은 지금-여기의 음악이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구체적으로 “동시대 음악 실험에서 ‘멜로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선이 사라지고, ‘음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덩어리가 그 자리를 대체한 현상”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이 지속적으로 마주친 두 경향의 운동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소리와 시간을 재료로 하는 음악이 스스로 그 근본조건을 극복”하고 보이려고 하는 운동성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 혹은 사유의 발전에 의해” 도리어 먼 곳으로 향하는 운동성이다. 전자가 신체화, 보편화, 관습화와 관계 있다면, 후자는 반대로 신체와 관습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는 운동과 관련 있다. ‘악보들’은 시간에 따라 얽히고 변화하는 이런 움직임을 ‘접촉, 사물, 신체, 시간’이라는 네 방향에서 바라보고, 그 흔적이 구체적으로 담긴 악보를 통해 긴 여정을 이어왔다.
선의 끝, 덩어리의 시작에서, 그대로가 아닌
그동안 서양 음악의 역사에서 노래와 다른 이질적인 선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포착하고(1권 비정량 프렐류드), 서로 다른 것이 한 음악 안에서 양립하는 모양을 살피고(2권 판타지아), 노래하는 동시에 노래하지 않는 음악의 변주를 관찰하고(3권 리토르넬로),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점들을 따라가거나(4권 멜로디 과잉), 구성의 언어로서 서양음악을 읽고(5권 모티프),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인 음형들의 움직임을 따라(6권 틱, 톡, 촉), 음악의 해석 혹은 확장 가능성을 물었던(7권 소나타-신곡-파우스트-에덴동산-괴테-그레첸-메피스토펠레스-실낙원-알레그로) ‘악보들’이 도착한 곳은 선의 끝이다.
선의 끝. 수백 년간 서양 음악의 근간이었던 조성의 질서가 흩어지는 곳. 또는 덩어리가 출현하는 장소. 이 책에 악보가 실린 음악가들과 “음향 덩어리”라는 용어를 고안한 에드가르 바레즈를 비롯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피에르 불레즈,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모턴 펠드먼,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콘론 낸캐로우,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피에르 셰페르 등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음악가들은 “시작과 끝의 감각이 흐려”지는 이곳에서 음악과 음악 아닌 것들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거리, 접촉, 수, 밀도, 표면, 물질, 시간, 공간, 장르, 언어, 소음, 인체, 사물, 기계, 결정, 비결정, 복잡성, 역할, 배열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선은 “느려진다. 선이 멈춘 것처럼 들린다. 흐르지 못하는 선은 점과 점으로 멈춰 선다. 고이고, 뭉쳐진 선은 점 또는 덩어리가 된다.”
때론 불편한 청취의 경험을 요구하는 “이 음악들을 함께 살펴보자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결국 우리가 듣는 대상과 방식을 서서히 바꾸어보자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막연히 자연스럽게 느껴왔던 질서 바깥에 놓여 있던 목소리, 존재를 알지 못했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비정량 프렐류드』부터 『음향 덩어리의 전조』까지, 총 여덟 권으로 끝맺는 ‘악보들’의 질문은 여기서 그 악보 너머로도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