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란 (절대 타력, 그 믿음의 혁명)
시미즈 다이치 | 부크크(bookk)
12,000원 | 20250414 | 9791141936112
가마쿠라 시대는 흔히 눈부시면서도 휘청거리는 시대로 그려진다. 귀족 중심의 헤이안 질서가 붕괴하는 틈새로 무사(武士)들이 부상하고, 한쪽에서는 민중의 불안과 갈증을 해결하려는 신흥 불교 운동이 만개했다. 수많은 승려들이 제각각 “이것이야말로 구원”이라 외쳤지만, 정토 교리의 핵심을 기발하게 뒤집어 놓은 인물이 바로 신란(親鸞)이었다. 호넨(法然)으로부터 정토교(淨土敎)를 배워 오되, 어느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독특한 걸음으로 민중의 마음 깊숙이 파고든 그 행적은, 가마쿠라 시대라는 혼돈의 무대를 가장 극적으로 채색해 준다.
본서에서는 신란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전통적 불교관과 결별하고, 타력(他力) 중심의 신앙을 파격적 수준으로 확장해 나갔는지 생생히 묘사하려 한다. 어려서부터 출가했다든가, 호넨 문하에서 추방당하고 지방을 떠돌았다든가, 심지어 결혼하여 재가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지닌 파급력은 단순한 ‘승려 일대기’라기보다는 중세 불교에 대한 편견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위력을 지닌다. 또한 그가 남긴 문헌—가령 『교행신증(教行信證)』이나 『탄니쇼(歎異抄)』—를 들여다보면, 신란이 세속의 언어로도 얼마든지 ‘부처의 본원’을 말할 수 있음을 설득한 흔적이 선명하다.
상상해 보자. 뒤엉킨 전쟁과 기근, 무사들의 침략과 농민들의 울분이 뒤섞인 길 위에서, 신란은 주위의 시선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듯 걸었을 것이다. 그 발걸음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아미타불(阿弥陀仏)의 본원력을 믿는다”는 믿음 하나로 나아간다. “어째서 그렇게 당당한가” 묻는 이가 있다면, 신란은 애써 교리적 논증을 늘어놓지도 않고, 마치 제 전부를 한숨에 담듯 “나는 이미 자신을 구할 힘이 없으므로, 바로 그 점이야말로 아미타의 구제를 불러온다”고 답했을 것 같다. 이는 듣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행해야 구원받는다는 기존 사고를 깨뜨리고, 스스로 무력함을 인정하는 자야말로 구원의 정객(正客)이 된다는 그 발상. 종교사적으로 이보다 급진적일 수 있을까.
본서가 궁극적으로 풀고자 하는 수수께끼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어째서 신란은 ‘악인(悪人)’이 더 구제받기 쉽다고까지 말할 수 있었을까?” 겉보기엔 모순 가득한 이 주장 속에, 신란이 통찰한 ‘타력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다시 읽고, 호넨의 가르침을 자기 식대로 소화하여, 가마쿠라 시대를 뚫는 전혀 새로운 신앙관을 탄생시킨 과정은 고대의 성인(聖人)이나 전통 불교가 해내지 못한 과업이었다.
전략적으로는, 신란의 생애 전말을 헤집고 그 문헌을 샅샅이 검토해 가는 동안, 독자들은 가마쿠라 시대가 과연 어떻게 ‘불교 개혁의 황금기’가 될 수 있었는지도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호넨, 신란, 니치렌이 서로 다른 길을 내민 가운데서, 왜 신란이 “극한의 타력”이라는 극단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구제론을 펼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상이 왜 농민·무사·재가 여성 등 소외받던 계층에게 무시할 수 없는 생명줄이 되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악인이기에 오히려 구제받는다”는 외침은, 선악을 판단하는 인위적 도식을 비웃듯 넘어서서, 비참한 현실 속의 민중에게 “내가 바로 부처의 품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선언이었다.
물론 그 혁신의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교단 내부와 외부의 비판, 호넨과의 관계, 교토 귀족 불교의 시선은 신란을 한동안 ‘이단’처럼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신란이 불교를 다시 설계해 놓은 독자적 질서가 뿌리를 내려, 훗날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는 거대한 교단으로 만개한다. 저 잇키(一揆) 봉기나 혼간지(本願寺) 세력이 전국을 뒤흔들던 격동의 무대에서, 신란의 가르침이 어떻게 지방 농민들을 규합했고, 에도(江戸) 시대에는 어떻게 제도화되어 마을과 가정에 깊숙이 스며들었는지도 본서는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신란’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제시한 구원관이 중세를 뛰어넘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력(自力)을 말하지 않고, 내가 오히려 무능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아미타불에 맡겨야만 구제된다고 말하는 역설은, 사회적으로 낙오된 사람이나 스스로를 비관하는 이들에게는 강렬한 생존 선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선언이 어떻게 중세 농촌 현실과 만나 실제 변혁을 일으켰는지를 알면, 오늘의 독자들도 신란이 택했던 방법을 단순히 종교 역사로만 간주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목표다. 수많은 기록과 전설, 그리고 후대 교단이 만든 이미지 속에서 신란을 발굴하고, “가마쿠라 시대 불교사적 전환점”이란 맥락에서 그가 수행한 ‘이단적 믿음’을 조명함으로써,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대담한 사유를 펼칠 수 있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자 한다. 이름도 생소한 지방을 떠돌면서, ‘승려가 아내를 맞는다’는 충격적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신란이 어째서 “나도 부처가 아닌데, 오직 부처가 나를 건질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추적하려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장마다, 신란이 밟아 간 험로를 따라 걸으면서도, 그 길의 끝에 “악인정기(悪人正機)”와 “타력”이라는 강렬한 빛이 기다렸음을 알게 될 터. 환혹과 위선이 많았던 중세 불교계에서, 신란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열고, 그 한 걸음이 훗날 정토진종 교단을 통해 얼마나 폭넓게 이어졌는지 감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책장을 넘기며, 난세를 뚫은 신란의 결기와 그의 사람 냄새 나는 신앙이, 독자 여러분 각자의 시대에도 또 다른 문을 열어 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