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스페이스타임 머신 (소설과 에세이와 사진이 뒤엉켜 만든 신개념 혼합 우주)
김중혁 | 진풍경
18,900원 | 20250228 | 9791197915239
소설가는 2미터 길이의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의 책상은 우주선이 되어 까마득하게 먼 곳으로 날아간다. 어린 시절 동네, 가본 곳보다도 먼 곳, 가본 적이 없는 도시보다 먼 곳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돌아온다.
이 책은, 작가가 스페이스타임 머신을 타고 다녀온 시공간이다. 실린 글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소재나 주제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다. 첫 시작은 책표지 이야기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이야기가 작가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의 순간이 이 책의 사진에 아직 남아 있다. 하늘, 식물의 무늬, 나뭇가지에 앉은 새, 하늘을 날고 있는 새, 새처럼 날아가고 있는 이파리, 농담의 모양을 닮은 듯한 동글동글 바위, 작가의 타임머신이 오간 흔적이다.
독자의 안락한 여행을 위해 소설(fiction)은 까만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네모 방 안에 고딕체로, 에세이(essay)는 흰 페이지 안에 명조체로 구분하여 담았다. 독자는 ‘신개념 혼합 우주’로 통하는 검정과 흰 문을 자유롭게 여닫으며 소설가가 다녀온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설을 읽다가 어느새 에세이를 읽는 기분에 빠진다. 소설 안에 사물과의 인터뷰도 나오고, 눈이 내려야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도 나온다. 사계절 에세이를 읽으면서 골목의 풍경으로 빠진다. 신비로운 거미줄 같은 이야기들이다. 과묵하게 유머러스하다. 아름답게 모호하다. ‘모호하여 분명’ 아름답다.
작가의 이 말을 믿고 그 세계로 떠나보면 어떨까.
“몰두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어. 여러분, 책을 읽으세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요.”
독백과 상상과 능청과 거짓말과 비밀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세계에서 독자는 약 같은 소설 속 대화를 건네받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능력을 의심하는 버릇을 잊은 채, 어디로든 사라져버릴 수 있는 초능력이 점차 생겨난다. 가능한 일이다. ‘책은, 스페이스타임 머신’ 안에서는.
작가의 말 중에서
글을 쓸 때면 둘 중에 하나부터 고르게 된다. 시간, 아니면 공간. 가끔은 두 개를 한꺼번에 정할 때도 있다.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언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글을 쓰려고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잊고 환상 속으로 진입한다.
글쓰기는 내게 타임머신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동네를 떠올리고,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글은 나를 거기로 데리고 간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고, 이루고 싶은 꿈들을 상상할 때면, 글은 나를 미래로 데리고 간다. 나는 현실에서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듣고 인터넷으로 내일 먹을 밥의 재료를 주문하면서, 동시에 과거나 미래나 미지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타임머신을 발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이미 타임머신 보유자다.
책의 시작은 ‘북 커버 러버’였다. 북 커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북 커버 러버’의 어감이 좋았고, 책표지 이야기를 연재했다. 오래전부터 책표지를 좋아했다. 책표지는 늘 비밀의 문 같았고, 다른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가는 토끼굴 같았다. 책표지를 열었을 때 뜻밖의 풍경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처럼, 책표지 이야기 뒤에다 다양한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생활 에세이 같은 글도 있고, 짧은 소설도 있고, 조금 긴 소설도 있다. 읽는 순간 새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