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 왕국 (연산군부터 윤석열까지, 권력은 왜 신을 빌리는가)
김가현 | 갈무리
15,300원 | 20250925 | 9788961953993
연산군의 분노와 광기, 광해군의 불안과 집착, 그리고 고종의 무능과 현실 도피를 거쳐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이 도발적인 책은 시대를 관통하며 반복되는 ‘권력과 주술의 결탁’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왜 유독 한국 정치사에서 ‘무속 논란’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가? 이 책은 조선의 문제적 군주들과 윤석열을 ‘역사적 평행이론’이라는 날카로운 렌즈로 나란히 세운다. 그리고 권력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비합리적 믿음에 기대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는 최초의 보고서다.
김가현 지음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분노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주술 왕국』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연산군, 광해군, 고종과 명성황후에서 윤석열, 김건희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주술과 비합리적 믿음에 의존하다 스스로 파멸에 이른 사례들을 교차 분석한다. 그는 이를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로 체계화해, 지도자의 심리적 취약성에 따른 심리적 파국, 풍수와 도참 등 공간 논리에 매달린 공간적 파국, 사적 관계망이 공적 시스템을 잠식하는 관계적 파국이라는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독자는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이 모델의 실체를 직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연산군이 언로를 틀어막던 ‘신언패’와 주술 의례에의 집착, 명성황후가 무속인 ‘진령군’에게 사실상 작호를 부여하며 관직 매매까지 비호했던 기록, 그리고 최근 손바닥 ‘왕’ 자 논란과 풍수 명당을 둘러싼 대통령실 이전 논쟁, 법사 및 역술인 관련 의혹과 관봉권 현금 파문 등은 “주술이 권력을 만드는 게 아니라, 위태로운 권력이 주술을 불러낸다”는 책의 핵심 명제를 생생히 증언한다.
이 책의 초점은 단순한 ‘사건 열거’가 아니다. 실록, 학술논문, 언론 보도를 엮어 권력이 주술을 호출하는 작동 원리를 도식화하고, 오늘날의 제도가 안고 있는 위험, 예를 들면 밀실 의사결정, 비선화, 책임 회피를 진단한다. 나아가 반복되는 파국의 회로를 끊기 위해 시민들이 공개 절차와 사실 검증을 상시적으로 요구하고, 권력의 불합리한 언어에 비판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복되는 불편한 진실 : 권력과 주술의 결탁
연산군의 분노와 광기, 광해군의 불안과 집착, 고종의 무능과 현실 도피를 거쳐 윤석열 정권에 이르기까지, 『주술 왕국』은 한국 정치사 속에 끊이지 않고 되살아난 권력과 주술의 결탁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왜 유독 한국 정치에서 무속 논란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가? 저자는 조선의 문제적 군주들과 현대의 정치권력을 나란히 세워 권력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비합리적 믿음에 기대어 스스로를 파멸시켰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무속이 민간신앙이나 문화적 풍습을 넘어 여러 시대를 거쳐 권력의 핵심부를 잠식해 왔음을 풍부한 사례로 보여준다. 가뭄과 전란 등 국가적 위기 속에서 유교적 제례만으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조정이 무속을 비공식적 해법으로 호출하던 조선 왕실의 사례에서부터,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풍수 논란과 비선 개입 의혹에 이르기까지, 주술은 불안정한 정권이 스스로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해 불러들이는 정치적 도구로 작동해 왔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현대적 장면들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주술은 위태로운 왕좌를 구원하는 힘이 아니라, 무능을 가리고 책임을 전가하며 공적 시스템을 잠식하는 껍데기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 : 심리, 공간, 관계의 세 파국
저자는 『조선왕조실록』부터 최근의 언론 보도까지 폭넓은 자료를 토대로 정통성이 취약한 권력이 고립을 자초하고 결국 자기 파괴에 이르는 과정을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이라는 독창적 분석 틀로 제시한다.
이 모델은 네 단계를 거친다 : 1) 권력 기반의 취약성과 불안의 발현 → 2) 공적 시스템의 붕괴와 고립 → 3) 비합리적 대안의 부상과 도구화 → 4) 자기 파괴적 악순환과 몰락.
그리고 저자는 이를 세 유형으로 나눈다. 심리적 파국은 연산군의 감정 정치처럼 지도자의 불안정한 내면이 국정을 집어삼킨 경우다. 공간적 파국은 광해군의 왕기처럼 풍수도참에 집착하다 재정 파탄과 민심 이반을 초래한 경우다. 관계적 파국은 명성황후와 진령군, 박근혜, 최순실 사태, 그리고 윤석열 정권의 무속 개입 논란, 12.3 비상계엄 사태처럼 사적 네트워크가 공적 시스템을 잠식해 국가 위기를 부른 사례다.
무속의 역사적 궤적 : 민간신앙에서 권력의 도구로
책은 무속과 민간신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궤적을 거쳐 권력의 도구로 전환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농업사회에서는 마을의 동제와 병굿, 출생, 혼례, 상례 등 통과의례가 공동체의 불안을 달래는 기능을 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은 이를 ‘음사’로 규정해 탄압하면서도 가뭄, 전염병, 전란 같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기우제와 궁중 굿을 비상수단으로 반복 호출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 무속은 단속과 재편을 동시에 겪는다. 굿, 점, 부적이 ‘치안’의 이름으로 규제되는 한편, 일부는 제국의 질서에 맞게 제도화되며 식민 통치의 보완물로 변형된다. 전쟁, 도시화, 외환위기 등 근현대의 격변기를 통과하면서 무속과 점술은 불안의 파고와 함께 재등장했고, 오늘날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더욱 신속히 증폭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면,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풍수 논란, 천공과 건진법사 등 비공식 인물들의 영향력 논란, 대통령 배우자의 비선 개입 의혹 등으로, 위기 국면에서 권력이 주술을 불러들이는 고질적 구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이 드러난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현대적 장면들을 교차시켜, 무속이 민간의 심리적 위안과 치유의 역할에서 출발해 어떻게 권력의 심장부를 잠식하고 공적 시스템을 우회하는 정치적 도구로 자리 잡아 왔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역사의 경고 : 상식과 시민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
저자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상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반복된 선택의 결과물”임을 상기시킨다. 통치가 제도 밖의 믿음과 결탁하는 순간, 현실은 왜곡되고 책임은 ‘기운’과 ‘계시’라는 불가해한 언어로 떠넘겨진다.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는 언제나 비공식 권위가 스며들고, 그 결말은 예외 없이 자기파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낡고 위험한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용꿈을 꾸는 지도자가 아니라, 용의 신화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시민의 연대”라고 말한다. 불확실성을 줄여야 할 정치 언어가 오히려 혼란을 증폭시키는 시대일수록, 시민은 제도적 설명과 공개 절차를 요구하고, ‘비선’과 ‘암시’로 포장된 결정을 의심해야 한다. 무속적, 음모론적 화법이 공론장을 점유할 때 그것을 가벼운 가십으로 소비하지 않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위험 신호로 인식해 대응하는 것, 바로 그 각성의 연쇄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 걸음이다.
책의 구조 소개
프롤로그 「신을 빌린 권력자들」은 연산군에서 윤석열 정권까지 이어진 무속과 권력의 결탁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 책이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1부 ‘무속과 정치 : 신앙과 권력의 위험한 공생’은 개념과 맥락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무속이란 무엇인지, 풍수, 도참 등 한국 주술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그리고 어떤 정치적 기능과 태생적 한계를 갖는지 다룬다. 이어 무속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호출되어 왔는지, 미디어 시대에 주술이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탐구하며, 권력이 무속에 의존하다 몰락하는 과정을 일반화한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독자가 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분석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2부 ‘자멸의 평행 이론 : 주술에 잠식된 왕좌’는 조선의 문제적 군주들과 현대 한국 정치의 사례를 나란히 세워 평행 이론을 입증한다. 연산군의 분노 정치(심리적 파국), 광해군의 풍수 집착(공간적 파국), 고종과 명성황후의 비선 정치(관계적 파국)를 분석한 뒤, 이를 윤석열 정권의 무속 개입 논란과 격노정치, 용산 이전, 12.3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연결시킨다. 저자는 무속이 권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자신의 불안과 무능을 감추기 위해 주술을 불러냈음을 다양한 사례로 증명한다.
에필로그 「자기 꼬리를 삼킨 권력」은 반복되는 악순환을 경고하며, 무속적 권위에 기댄 정치가 아닌 상식과 제도의 회복, 그리고 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구조는 과거-현재-미래를 꿰뚫는 서사적 전략을 통해, 독자들이 오늘의 정치 현실을 성찰하도록 이끈다.
『주술 왕국』은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과 주술적 권위의 은밀한 결합을 역사적, 현대적 사례로 명쾌하게 분석하며, 주술이 권력을 지켜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주술 왕국』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중의 제헌활력이 다시 움직이도록 자극하는 정치적 실천의 언어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