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는 마음 (오래된 한글간판 사진집 2011-2018)
장혜영 | Closer
25,200원 | 20180910 | 9791196462406
간판은 가게를 알리는 표지판이자,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조형물이다. 오래된 한글간판에 매력을 느껴 2011년도부터 필름 카메라로 기록했다. 가게 주인분들은 “왜 사진을 찍느냐, 뭐가 이쁘냐…” 며 자신들의 오래된 가게와 간판을 “초라하다. 볼품 없다.” 고 말씀하시곤 했다. “오래된 한글간판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글씨이자,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오랜 시간이 조각한 작품 같아요.” 가게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며, 다시 물으신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름답고 새로운 것에만 관심있지 않느냐, 사라지고 말 쓰레기가 아닌가 싶다. 쓰레기를 찍는 거면 어떡하느냐?”
그렇다. 실제로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지인들은 “한국 근현대 사진 같다. 1970년대 사진같다.” 고 말하곤 한다. 분명 2011-18년대 현재의 모습인데, 과거의 모습으로 느끼는 것은 우리가 낡고 오래된 것을 들어내고, 지워내고, 새롭게 건축하는 것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과거라는 바탕 위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져 매력있는 도시가 만들어지면 좋으련만, 현대의 개발방식은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과거를 부정해왔다. 사진을 찍은 곳들 가운데에는 이미 사라진 곳들도 많고, 계속해서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사라져가는 한글간판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가? 1984년에 한국 최초의 한글폰트 개발 업체가 설립됐다. 한글폰트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지역마다 동네 장인들이 고유한 서체로 한글간판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즉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간판들은 실제로 특별한 서체를 가진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한글간판은 디자인적 가치뿐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작게는 개인의 욕구와 바람을 담고 있고, 크게는 도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필요를 담고 있다. 간판은 상업지역, 즉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에 세워지기 마련이기에 ‘민속화’처럼 서민들의 풍경을 대표한다.
민속화처럼 '지금, 여기의 삶'을 담고 싶어, 대조적인 두가지 성질 '시간'과 '장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오래된 한글간판'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필름에 담았다. 멈춰있는 장소와 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 시대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오래된 한글간판 사진을 찍으며, 나는 그저 바라보던 것들을 주목해서 보게 되었다.
도시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어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세월이 만들어낸 보물들. 오래된 한글간판을 발견할 때면 보물을 찾은듯 감격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전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도시기획자까진 못되더라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도시기록자가 되고 싶어졌다.
오래된 한글간판들은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매력적이지 않고 새로워 보이지 않아도 버리지 않는 마음. 흔히들 간판을 새롭게 만들거나 바꿀 때에 주인의 의지와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고 굳이 바꾸지 않는 데에도 주인의 결단과 애정이 필요하다.
오래된 한글간판들을 통해, 글자가 떨어지고 칠이 벗겨져도 버리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 다시 들여다 보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조금씩 고쳐 쓰면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일상 속 ‘보물 찾기'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작은 생각일지라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