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 네이버책
  • 알라딘
  • 교보문고
"홍수전"(으)로   3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who? 인물 중국사: 임칙서ㆍ홍수전

who? 인물 중국사: 임칙서ㆍ홍수전

이준범  | 다산어린이
11,700원  | 20201214  | 9791130632360
인물로 배우는 최고의 역사 교과서!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숨 쉬는 〈who? 인물 중국사〉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어려운 역사를 인물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기에는 인물 이야기로 역사를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접근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인물의 삶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접하면서 역사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건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인과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물론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 역사를 이끌어간 인물들의 고민과 결정 등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펼쳐 보여 줍니다. 교과서에 한 줄로 표현된 인물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중국의 역사 이야기 한국사가 수능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고 한국사 교육 정책이 강화되면서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나라 중국.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강대국 중국을 통해 세계 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2위의 경제 강대국 중국!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에 대해 교실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통해 펼쳐지는 다채로운 시대상 주로 정치 분야에 편중된 기존의 위인전을 뛰어넘어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통해 시대별 사회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 줍니다. 나라를 건국한 ‘진시황’, 지혜로 난세를 평정한 ‘제갈량’과 ‘사마의’는 물론, ‘현장 법사’를 통해 불교의 전파 과정을 알 수 있고 ‘호설암’을 통해 당시 상업의 발달 과정과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백’과 ‘두보’를 통해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중국 문학을 알 수 있고 ‘쑨원’의 신해혁명과 이후 근대화 과정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만화로 만나는 생생하고 재미있는 인물 이야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재미있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정화’를 통해 도전을, ‘진시황’을 통해 혁신을, ‘조조’를 통해 용기를, ‘제갈량’을 통해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는 위인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 인물이 저지른 과오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둔 현대인에게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길라잡이가 되어 줍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말처럼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재를 제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줍니다.
근현대 중국철학, 홍수전 손문 모택동 시진핑

근현대 중국철학, 홍수전 손문 모택동 시진핑

탁양현  | 퍼플
10,600원  | 20190807  | 9788924063615
◈ 近現代 中國哲學思想은 무엇인가 1. 中國을 알아야 韓國이 산다 近代에 이르도록, 中國哲學은 크게 3개의 기둥으로서 구성되어 있었다. 흔히 儒佛道라고 지칭되는데, 儒家, 佛家, 道家는, 중국은 물론 漢字文化圈 國家인 韓國이나 日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朝鮮王朝는 철저히 儒家哲學에 의해 主導되는 사회였다. 근대 이후 중국은 社會主義 國家가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마르크스主義와 마오쩌둥主義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에도 중국은 名實相符한 共産主義 國家이다. 淸나라 멸망 이후, 중국에는 마땅한 철학사상이 不在하다. 동아시아 漢字文化圈을 先導하던 中國哲學思想史를 思慮한다면, 다소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자연스런 역사의 흐름이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중국을 主導하는 철학사상은 말할 나위 없이 마르크스주의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사 안에서, 이미 실패한 哲學思想이다. 그러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은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실행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資本主義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마르크스주의보다는 資本主義가 人間本性에 좀 더 符合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니 인류는 社會主義나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사상을 摸索해야 한다. 현재에도 자본주의는 散在하여 解決해야 할 문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友邦에 대한 選別이 요구된다. 國際政治의 場에서 覇權國이 아니라면,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國際關係는 不可하다. 반드시 어느 한 陣營을 선택하여 편가름해야만 한다. 국제정치는 영원한 敵도 영원한 同志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자기 편은 늘 流動的이다. 국제정치에서 ‘隣接國의 悲劇’ 관점에서 볼 때, 중국과 일본은 아주 결정적인 事例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徹天之怨인 국가들이다. 근현대사를 살필 때, 일본은 壬辰倭亂이나 日帝强占의 역사로써 철천지원수다. 중국은 저 먼 古代로부터 무수한 侵略戰爭을 恣行했고, 조선왕조를 屬國으로 삼았으며, 다시 6.25전쟁으로써 침략을 해왔으므로 철천지원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두 隣接國에 대해, 이제는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의 友邦國家인가를 판가름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自由民主主義 진영에 설 것인가,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共産社會主義 진영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複合的인 情況을 思慮해야겠지만, 선택에 대해 적잖은 指針과 尺度를 제공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 떵떵거리며 勢道를 휘두르는 ‘曺國’은, 現職 서울대 敎授로서 休職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철밥통’인 교수자리가 위태해지자, 슬그머니 復職을 했다가 다시 휴직하면서, 교수자리를 保傳하고 있다. 과거에 그는, 敎授와 政治人을 병행해서는 안 된다면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런데 ‘내로남불’ 식으로, 제 밥그릇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실로 그런 것이 빨갱이 從北主義者들의 良心의 眞面目이다. 주둥이로는 革命, 解放, 民族, 平等, 平和, 人權, 分配, 正義, 正常, 理性 따위를 떠들어대며 ‘개돼지 群衆’을 선동하면서, 정작 제 욕심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것이 빨갱이들의 本性이며, 나아가 인간존재의 본성이다. 積弊淸算을 외치며 執權을 한 빨갱이 左派들은, 집권 이후 제 몫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인류의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개혁세력의 집권은 不可하다는 것이다. 막상 권력을 얻게 되면, 금세 인간존재들의 野鄙한 本性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빨갱이 左派들 首腦部 대부분이, 富者이며 資本家라는 아이러니는, 쉬이 解明된다. 북한의 이너써클 1%만이 好衣好食하는 것처럼, 남한의 빨갱이들도 나름대로 이름깨나 날리면, 죄다 자본가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런 빨갱이 族屬 대부분이, 자기 子息들은 어떻게든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지 않는가. 그러니 欲望과 慾心에 솔직한 資本主義體制가 좀 더 그럴듯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개돼지 군중’들만이, 그저 그들이 떠들어대는 虛無孟浪한 프로파간다에 놀아날 따름이다. 그렇다면 保守右派라는 者들은 또 어떠한가. 오죽 제 욕심을 채우며 不正腐敗를 일삼았으면, 현직 대통령이 彈劾당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겠는가. 그야말로 五十步百步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左右 進退兩難 속에서, 隣接强大國들의 四面楚歌에 휩싸여 바람잘 날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인접강대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면한다면 朝鮮王朝 末期처럼, 그레이트 게임의 혼돈 속에서 나라를 팔아먹고 빼앗기는 難局에 처하고 말 것이다. 政治는 인간존재의 삶의 根幹이다. 인간존재의 삶 그 자체를 運用하는 天地自然의 원리가, 현실세계에서 顯現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한 정치를 살핌에 있어, 흔히 國內政治와 國際政治를 가름한다. 그런데 대체로 국내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십상이다. 아무래도 자기의 삶의 時空間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탓이다.
중국 근대 개벽혁명 사상가들, 홍수전 손문 모택동

중국 근대 개벽혁명 사상가들, 홍수전 손문 모택동

탁양현  | 퍼플
10,400원  | 20180926  | 9788924057270
‘빠삐용의 開闢’과 ‘체 게바라의 革命’ 開闢은 곧 革命이다. 개벽이든 혁명이든, 흔히 인위적인 激變인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런데 天地自然 안에서 어떠한 변화든, 그것은 자연스런 변화일 따름이다. 그러한 바는, 個人이든 集團이든 매한가지다. 다만, 개벽은 원만한 自然의 측면이 강하고, 혁명은 급격한 人爲의 측면이 강하다는 차이는 있다. 또한 개벽은 종교적 개념이고, 혁명은 정치적 개념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것은 다소 便宜的인 분별일 따름이다. 그러한 detail이 不要한 바는 아니지만, 그보다 먼저, 개벽적 혁명이란, 천지자연 자체의 자연스런 변화라는 인식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세계에는 온갖 다양한 형식의 ‘開闢的 革命’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 그러한 개벽적 혁명 중에서, 굳이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가장 巨大한 존재형식인 國家的 차원의 개벽적 혁명도 중요하고, 가장 微小한 존재형식인 個人 차원의 개벽적 혁명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최소한의 생존이나마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 먼 古代로부터 現代에 이르도록, 우리 민족의 ‘生存의 利得’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는 집단공동체는 중국과 일본이다. 물론 북방의 여러 민족도 있으며, 현대사회에서는 미국이 가장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여건보다도 강력한 地政學的 여건을 좇는다면, 응당 중국과 일본을 우선하여 거론치 않을 수 없다. 中國 近代 역사에서, 그러한 開闢的 革命을 실현한 인물은 홍슈취안, 쑨원, 마오쩌둥 등이다. 이 외에도 개혁적인 변화를 추구한 인물들은 많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실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러했다면 근대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 안에서 중국대륙은, 항상 혁명적 개벽의 변화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그래서 중국대륙을 지속적으로 지배한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반도는, 高麗王朝로부터 朝鮮王朝에 이르는 1,000여년 동안, 마치 ‘고인 물’처럼 별다른 변화가 없이 정체된, 王朝 獨裁의 역사였다. 그래서 오히려 21세기의 한반도는, 개벽적 혁명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만큼 개벽적 혁명의 에너지가 오랜 세월동안 응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를 지나면서, 이미 ‘6?25, 4?19, 5?16, 5?18’ 등의 개벽적 혁명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체험했다고 해서, 이제 개벽적 혁명의 動力이 정지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체험 탓에, 더욱 새로운 개벽적 혁명이 도래할 수 있다. 그러하다면 그러한 개벽적 혁명은 어떤 것일까. 21세기 大韓民國이야말로, 開闢的 革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전혀 체험할 수 없었던,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이, 철저히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人民民主主義와 共産主義’ 주변의 개벽적 혁명들이, 죄다 역사의 뒤안으로 소멸해버리는 것을, 이미 여실히 目睹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것들을 죄다 삭제해버고서 나아질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실제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면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새로움은 기대할 수 없으며, 기대해서도 안 되는 듯하다. 어쨌거나 개벽적 혁명은, 철저한 現實主義의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예컨대 낭만적 혁명가 ‘Che Guevara’와 같은 理想主義的 想像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었지만, 결국 한갓 ‘그림자 연극’에 불과했음이, 역사로써 검증되는 탓이다. 예컨대, 근대 중국에서, ‘홍수전’의 太平天國이라는 개벽적 혁명의 경우를 살피면, 지금으로부터 150~160여 년 전에, 基督敎的 신화를 통해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실로 터무니없는 열정이, 無知하고 배고픈 민중에게 먹혀 들어갔다는 사실이 참으로 怪異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략-
1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