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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불멸의 이야기 
· 분류 : DVD/블루레이 > 드라마/코미디
· ISBN : 8809537234245
· 출판일 : 2017-09-07
· 분류 : DVD/블루레이 > 드라마/코미디
· ISBN : 8809537234245
· 출판일 : 2017-09-07
저자소개
오손 웰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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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이자 사업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웰스는 일찍부터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신동'이었던 그는 세 살쯤에 이미 스스로 인형극을 해 보였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해주고 마술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연극 활동으로 학교를 졸업한 16살의 웰스는 더블린의 게이트 극단에서 배우가 되었으며,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활발한 연극 활동을 펼쳤다.
연극감독이자 제작자인 존 하우스만이 웰즈를 뉴욕 연방 극단의 기획에 끌어들여 19살에 <로미오와 쥴리엣>으로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은 두 사람은 <맥베스>를 성공시켰으며, 그는 흑인 분장을 하고 맥베스를 연기했다. 그 후 웰즈와 하우스만은 '머큐리 극단'이라 이름 붙인 극단을 만들어 1937년에 <쥴리어스 시저>라는 연극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 작품은 무솔리니가 집권한 당대의 이탈리아 현실에 맞게 웰즈가 새롭게 고쳐 쓴 희곡을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웰즈는 곧 머큐리 극단의 배우를 이끌고 CBS 라디오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의 연출을 맡게 된다. 1938년에 그가 연출한 <화성인 습격>은 특히 화제를 모았다. 뉴스를 넣고 사람들의 반응을 끼워 맞춰서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드라마를 끌고 갔기 때문에 얼마나 실감이 났던지 라디오를 듣던 L.A 시민들이 대피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명성을 안고 헐리우드로 진출한 그는 RKO사와 두 작품을 계약했다. 22만 5천 달러의 보수에 웰즈에게 연출 전권을 보장하며 이익배당금을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그건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헐리우드가 지불한 액수로는 역대 사상 가장 후한 것이었다. 몇 개의 기획을 검토한 후에 웰즈는 비로소 영화감독 일에 뛰어 들었다. 아무도 그 작품이 영화 역사에서 가장 칭송 받는 작품이 될 줄은 몰랐다.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 만든 작품이, 그것도 처음 만든 작품이 영화역사에서 맨 앞줄에 서는 작품이 됐던 것이다. 그게 바로 <시민 케인>이었다. 원래 <미국인>이란 제목이 붙었던 <시민 케인>은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미국 언론계의 제왕 찰스 포스터 케인에 대해 증언하는 얘기를 복잡 미묘하게 구성한 영화이다. 케인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타락한 언론 재벌로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다. 비평가들의 평가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은 주인공 케인의 실제 모델이었던 당시 언론 재벌 랜돌프 허스트의 개봉 반대 캠페인 때문에 배급과 상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흥행에 실패했다. 뒤이어 <훌륭한 앰버슨가>도 흥행에 실패하자 웰즈와 머큐리 극단 출신 연기자들은 RKO사에서 해고됐다. 첫 셰익스피어 원작 <맥베스>도 흥행에 실패하자 웰즈는 10년 동안 헐리우드을 떠나있다가 <악의 손길>(1958)로 컴백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심판>(1963),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국의 자본으로 제작된 <불멸의 이야기>(1968), 그리고 마지막 작품 <사기꾼>(1973)에서는 기록 필름과 무대 공연을 담은 필름을 교대로 엮어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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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모로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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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트린느 드뇌브와 함께 너무도 유명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와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루이 뷔뉘엘 감독의 <어느 하녀의 일기> 등에서 그 영리한 미모를 과시했고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연인"에서는 허스키하면서도 색기 넘치는 나레이션 목소리로 극중 작가(마르그리뜨 뒤라스)를 연기했다. 최근 여성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예술원의 정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배우 이외에도 감독, 연극 연출가로서도 활약한 만능 재주꾼. 또한 배우, 감독 할 것 없이 수많은 젊은 영화인들을 추천하고 후원하는 프랑스 영화계의 대모로서도 유명하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바텐더였고 어머니는 전직 코러스 걸.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고 있을 때인 1939년, 잔느 모로의 부모는 11살의 잔느를 가운데 놓고 이혼한다. 문학과 연극에 심취한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여배우가 되기로 결심, 16살 때 파리예술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정식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파리예술학교에 다니던 중, 그녀는 프랑스 국립극단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스무 살이 되던 생일(1948년 1월 23일), 잔느 모로는 국립극단 역사상 최연소 정식 단원이 되었고, 4년 동안의 극단 생활 중 22편의 작품(극단에서 상연한 거의 모든 연극)에 출연했다. 하지만 국립극단의 억압적이며 권위적인 분위기는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1951년에 극단에서 나온 잔느 모로는 국립대중극단에 들어간다. 혁신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던 국립대중 극단에서 그녀는 수많은 실험적 작품에 출연한다. 1958년작 <사형대의 엘리베이터>(58)로 주목받았고, 이 영화에서 만난 루이 말 감독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루이 말 감독이 잔느 모로를 위해 만든 <연인들>(59)에 이어, 1959년 트뤼포 감독의 <쥴 앤 짐>에 출연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60)에서는 따분한 남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냉정한 아내를, 피터 브룩의 <모데라토 칸타빌레>(60)에서는 권태로운 유한마담을 연기, 칸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고다르의 <여자는 여자다>(61), 루이 브뉘엘의 <하녀의 일기>(64) 등의 유럽 걸작 작가 영화에 출연했으며, 헐리우드에서는 <카프카의 심판>(63), <한밤의 차임벨>, <불멸의 이야기>(68), <디프>(70) 등 총 네 편의 오슨 웰즈 영화에 출연하면서,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는 활약으로 그녀는 1966년에 비영어권 배우로는 최초로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된다. 1976년에는 자신의 자전적인 영화인 <뤼미에르>를 연출했고, 1979년에 만든 <사춘기>는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 그녀는 1982년에 'Capella Films'라는 영화사를 차렸지만 파트너인 클라우스 헬비그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릴리안 기쉬(Lillian Gish)>라는 TV 다큐멘터리만을 남기고 문을 닫는 씁쓸한 체험도 했다. 그녀는 두 번이나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지냈고(75년, 95년), 유럽의 젊은 영화작가들을 후원하기 위한 단체인 'Equinoxe'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는데, <에이전트 H.21>(64)에서 자신을 캐스팅했던 영화감독 장-루이 리샤르, 그리고 <엑소시스트>와 <프렌치 커넥션>으로 유명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그녀의 전남편들. 하지만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독신으로 지냈다. 빔 벤더스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같은 중견 작가들 뿐 아니라 뤽 베송의 <니키타>, 빈센트 워드의 <내 마음의 지도>, 빌리 홉킨스의 <미스 플라워>, 앤디 테넌트의 <에버 애프터> 같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2001년 깐느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탄 바 있는 브누와 마지멜과 함께 공연한 영화 <리자>가 작년에 프랑스에서 개봉되었고, 올해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호세 다양 감독의 영화 <바로 그 사랑>에서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뜨 뒤라스를 연기하며 팬들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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