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힐데스하이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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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출생했다.
1926년 만하임에 있는 김나지움을 다니다가 1933년-33년 오덴발트 학교를 다녔고,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판함에 있는 프렌스함 고원학교를 다녔다.
그 후 팔레스티나로 이민을 간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서 목공일을 배웠다. 1934년부터 런던의 대학에서 목공과 무대설치를 공부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동시통역관으로 근무한 후 재판기록을 정리했다. “47 그룹”의 회원. 1957년부터 스위스 포쉬아보에 살면서 활동했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근 것은 미술작품 전시회와 희곡작품 때문이다. 특히 1960년 에어랑엔 대학에서 열린 세계연극주간에서 행한 “부조리극에 대하여” 라는 연설과 1980년 잘츠부르크 축제 개막 때 “음악은 무엇을 말하는가?”하는 제목의 연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많은 독일어 작품을 영어로, 영어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Stefan Georges “영혼의 해”
Franz Kafkas “열 한 명의 아들”
Djuna Barnes “저녁 숲”
James Joyce “핀네간의 경야”
Samuel Beckett “서사집”
George Bernard Shaw “성녀 요한나”, “영웅들”
Ronald Searles “쿼바디스”
그의 단편집 “사랑없는 전설”은 독일 전후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매김했고, 산문집 “틴셋”으로 브레멘 문학상, 게오르크 뷔히너상을 받았다. 1977년 발표한 “모차르트” 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와 그 후에 나온 미햐엘 쿤체의 뮤지컬 “모차르트!”의 준비자가 되었다.
자전적 소설 “마르봇 Marbot”은 동시대인들에 의해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정표라는 말을 들었다. 작가는 스스로 비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산문집 “막스에게 하는 말”을 비극 후에 나오는 사티로스극이라고 칭했다. 그는 자연환경이 나빠지고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1984년 이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미술작품 전시회만 하다가 1991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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