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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909493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09-10-30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원래 점호라는 것이 자기의 수번과 이름만 복창하면 끝인데 배종호가 근무하는 작업장에서는 자기가 다루는 기계나 도구로 인해 다칠 수 있는 신체 부위를 끝에 붙였다. 가령 전기톱을 사용하는 재소자라면 <1234번 홍길동 손가락과 눈알>, 끌이나 조각도를 이용하는 자라면 이름 끝에 역시나 <손가락>을 붙였다. 처음 듣는 재경은 개그 같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지만 점호하는 당사자들은 진지하게 임했다.
남자가 짧은 검을 칼집에서 내었을 때 칼날의 빛이 반사되어 이성환의 눈을 찔렀다. 이성환은 자기도 모르게 <사장님> 하고 부르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 당황한 그 남자가 피한다는 것이 이성환을 차는 꼴이 되었다. 이성환은 그의 발치에 외로 쓰러졌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던 이성환은 분했다. 그 분노가 살의가 되기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남자가 탁자 위에 둔 짧고 날카로운 일본 검을 집어 들었다. 그 남자부터 찔렀다. 외제 차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난도질한 이 남자에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모님>이라는 여자의 비명이 이성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그 여자의 배를 찌르고 있는 이성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관성의 힘으로 몇 번이나 찌르고 또 찔렀다. 그때 아들로 보이는 열 살짜리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2층에서 내려왔다. 이성환의 눈에 그 아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살인을 증명할 목격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찔렀다. 관성의 힘은 참으로 무서웠다. 칼을 찌르는 이성환의 행동에 힘을 보태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붉은 피는 시내를 이루며 흘러갔다.
「쓰레기가 안 넘치게 꾹꾹 밟아야 하는 게 우리 일이야.」
「전 쓰레기 치우는 청소부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교도소가 휴지통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아, 그러셔? 그럼 뭐 할까? 아, 맞다. 더러운 새끼들 빨아 주는 세탁소 할래?」
「전 그냥…… 교도관입니다.」
「그래 교도관. 니 목에 칼 대는 쓰레기들을 매일 만나야 하는 교도관. 누가 아니래?」
「…….」
「그것들이 쓰레기란 걸 잊어버리는 순간…… 니 목에 언제 칼이 꽂힐지 몰라. 대신 쓰레기를 겁내선 안 돼. 내 말 명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