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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4111764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2-01-30
책 소개
목차
추천사
감사의 글
약어표
역자 일러두기
서론
제1장 이정표: 정치적, 교회적, 영적 이정표
1. 정치, 인구, 공간
2. 교회적 지형
3. 영적 지형
4. 잉글랜드 국교회
5. 잉글랜드의 비국교도
6.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7. 미주 식민지
8. 영적 현실과 정치적 현실
제2장 과거 사례와 시작
1. 폭넓은 유럽 배경
2. 청교도와 국제 칼빈주의자
3. 대륙 경건주의
4. 고교회(高敎會) 영성
5. 합류점
6. 시작
제3장 부흥, 1734-1738년
1. 1734년 말부터 1735년 초까지
2. 1735년 중간에서 말까지
3. 1735년 말에서 1737년까지: 조지아 식민지
4. 1736-1737년: 잉글랜드, 웨일즈, 뉴잉글랜드
5. 1738년
제4장 부흥, 분화, 통합, 1738-1745년
1. 1739년
2. 조지 휫필드와 아메리카의 복음주의(1740년)
3. 스코틀랜드 복음주의와 조지 휫필드(1742년)
4. 출판의 조직화(1740년 후반부)
5. 신학 차이
6. 감리교의 조직화(1744년)
7. 세계 칼빈주의의 갱신
8. 복음주의 설교의 정교화
제5장 해설
1. 성령 운동
2. 행위자와 행동 단체
3. 역사의 흐름
4. 구조 전환
1) 사회-교회적 구조변화
2) 지적 구조변화
3) 심리적 구조변화
5. 결론
제6장 발전, 1745-1770년
1. 잉글랜드 국교회의 복음주의
2. 잉글랜드 비(非)국교회
3. 웨일즈
4. 스코틀랜드
5. 아일랜드
6. 아프리카계 미국인
7. 북미주 본토
1) 회중주의자
2) 침례교인
3) 장로교인
4) 시민 종교
5) 감리교인
제7장 분화, 1770-1795년
1. 기성교회로서
2. 기성교회 밖으로
3. 기성교회와 함께
4. 기성교회의 종언 이후
5. 기성교회에 대항하여
6. 기성교회를 완전히 넘어
제8장 세상 속으로
1. 특색 있는 접근법
2. 귀족(Patrician)
3. 평민(Plebeian)
4. 부르주아지(Bourgeois)
5. 노예 제도 반대
6. 복음주의적 노예 반대 운동의 한계
7. 세상 속으로
제9장 참된 신앙
1. 성별
2. 신학
3. 찬송가
4. 크리스천의 체험
후기
참고문헌
색인
책속에서
그러나 잉글랜드 국교회를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잉글랜드 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적 도전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전반적인 무기력에 있었다. 자기 개혁에 느렸으며, 시대의 헝클어진 정치 속에서 치유의 목소리를 찾는데 지체되었고, 새로운 도시 인구를 위해 교회를 맞추는데 빠르지 못했으며, 국내의 미전도 지역이나 인도 같은 새로운 해외 점유지의 비기독교 대중들을 복음화시키는데 둔했다. 교회 내부에 활동적으로 기독교를 수호하고자 한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윌리엄 로(William Law)는 『뱅거의 감독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Three Letters to the Bishop of Bangor, 1717년)로 기독교 전통을 훌륭하게 방어했으며, 『이성의 변호』(The Case of Reason, 1732년)로 매튜 틴달의 이신론을 반박했고, 『경건한 생활로의 초대』(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Life, 1728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그러나 이런 영향은 비교적 드물었기 때문에, 그들이 추구하던 잉글랜드 국교회의 부활은 요원해 보였다.
윌리엄 로(William Law)의 『독실하고 거룩한 삶으로의 진지한 부름』(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 1728년)에도 비슷한 평가가 보인다. 존 웨슬리와 지도적인 복음주의자들에게 이 책은 특별히 중요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설령 교회와 결부되어 있더라도 ‘부와 번영, 쾌락과 탐닉,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만족하는 삶과 ‘우리 삶의 일상적인 행위를 다스리는 종교 또는 헌신을 찾는 사람’ 사이를 줄기차게 대립시켰다.) 아이잭 와츠도 동일한 대립을 강조했다. 그의 찬송만큼 그의 글도 널리 배포되었다. 그는 글에서 서술한다. ‘가슴 속에 깃든 참된 기독교는 자기 삶의 순결을 통해 드러나며…성령의 열매는 삶과 마음에서 동시에 발견된다…그러므로 우리의 부패한 열정이 조금이나마 수그러드는 느낌이 없다면, 절대로 생동감 있는 헌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자.’42) 부흥이 일어나기 전 영국에서, 명목상 신앙에 대한 비판은 별로 압도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1730년대 초, 비판의 강도와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1735년 봄, 넓은 세계에서 별 비중이 없는 젊은이 몇 사람이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옥스퍼드에서, 조지 휫필드의 길고도 강렬한 영적 투쟁이 절정에 도달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밝히 비추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거저주시는 은혜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시고, 또한 당신의 눈앞에서 의로워지기 위해서 오직 믿음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셨다. 후에 휫필드는 이 비추심이 회심임을 깨닫는다. 사건은 부활절 7주 후에 일어난다.
휫필드가 영적 목적지에 도달한 그 날이, 웨일즈 브레콘셔(Breconshire)의 작은 마을 트레베카(Trevecca, 또는 Trevecka)에서 비슷한 여정이 마감된 바로 그날일지도 모른다. 호웰 해리스(Howell Harris)의 나이는 휫필드보다 몇 개월 많은 21살이었다. 그는 학교 교사로, 가끔 영적 문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해리스는 부활절 직후, 교구 목사의 추천으로 오래된 경건서적 『인간의 전적 의무』(The Whole Duty of Man)를 읽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청교도 내전 때 찰스 1세에 충성했던 잉글랜드 국교회 교인 리처드 올레스트리(Richard Allestree, 1619-1681년)다. 해리스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성찰과 금식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는 죄와 신앙적 절망으로 씨름했다. 5월 25일, 부활절 후 일곱째 주일의 성찬식 도중, 하나님께서 진정 당신의 은혜로 그를 돌보고 계신다는 확신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