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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34119449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19-03-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8
제1부 초대 한국교회사
제1장 민족사화(民族史話) 13
제2장 국가 호칭 19
제3장 임진왜란과 천주교 23
제4장 천주교의 전래 28
제5장 천주교의 수난 32
제6장 병인교난(丙寅敎難) 39
제7장 영국인 전교(英國人傳敎) 48
제8장 문호 개방과 선교 55
제9장 미국인 전교 60
제10장 교회 설립 준비 64
제11장 선교사와 선교 정책 71
제12장 선교사와 선교 행정 81
제13장 평양신학교 86
제14장 한국교회와 문화 선교 96
제15장 예장 총회 창립 101
제16장 남북 연합선교 106
제2부 일제 치하의 교회사
제17장 민족 수난과 항일 활동 111
제18장 교회와 구령 운동(救靈運動) 116
제19장 한국교회와 3·1독립 운동 123
제20장 백 년 전진 운동 132
제21장 자유주의 신학과 이단 소동 137
제22장 교회와 극한 시련 142
제23장 교회와 조상 숭배 148
제24장 조선신학교 153
제25장 장로교회의 분열 159
제3부 해방 후의 한국 교회사
제26장 통합과 합동의 분열 168
제27장 감리교단의 총회 분립 176
제28장 고신교단의 총회 분립 182
제29장 기장교단의 총회 분립 192
제30장 합동과 통합 측의 총회 분립 196
제31장 장로교 합동 운동 200
제32장 개혁, 합신교단의 총회 분립 214
제4부 한국교회의 특징
제33장 경제 자립 218
제34장 여전도회 활동 222
제35장 청년면려회 운동 226
제36장 학생 신앙 운동 230
제37장 문학 활동 234
제38장 자립교회 239
제39장 교육대회(敎育大會) 243
제40장 부흥 운동(復興運動) 247
제41장 교회 일치 운동 257
제42장 구제 활동 261
제43장 한국교회와 해외 선교 운동 264
제5부 한국교회의 문제와 전망
제44장 교파의 분열과 전망 274
제45장 WCC 에큐메니컬 운동 278
제46장 KNCC 운동 285
제47장 ICCC 운동 294
제48장 국기와 주일 문제 301
제49장 국내 이단 종파의 내력 306
제50장 부흥 운동의 역사적소고(歷史的小考) 311
제51장 기독교와 3·1운동 315
제52장 민족 수난과 부흥 운동 330
제53장 한국 기독교와 공산당 336
제54장 재일교포 선교 문제 350
제55장 한국교회 선언문 비판 355
제56장 엑스폴로 74와 한국교회 361
제57장 장로교 합동 문제 367
부록 1 WCC 부산 총회에 대한 평가 395
부록 2 한국 문서선교의 역사와 방향 425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덕에 헤엄쳐 올라갔던 토마스 목사는 한문 성경책을 전하다가 박춘권의 칼을 가슴에 맞고 순교하였다. 그의 시체는 토막 내서 강변에서 불태워졌다. 그러나 그의 한문 성경을 전해 받은 병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실을 후일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찾아와 고백함으로써 밝혀졌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의 피는 한국 개신교의 선교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의 방법은 선교부에서 전적으로 맡아 지급했으나 네비우스가 제시하는 방법은 본토 교인들 스스로가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이 선교 초기에 눈에 띄는 급속한 발전을 기할 수는 있으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는 완전한 자립 토착교회 설립의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네비우스의 선교 방법은 그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헨리 벤(Henry Venn)과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의 선교 이론에서 온 것으로 네비우스 목사는 벤이나 앤드슨에 의하여 정립된 원리를 아시아의 선교지의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했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발표되기 이전의 주한 선교 사역들은 교회 개척, 의료, 교육 등의 영역에 국한되었고, 초창기 선교의 선교적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했지만 이러한 약점을 주한 선교부에 적용하여 새로운 선교 지평(地平)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네비우스 박사 부처의 서울 방문은 주한 선교부의 선교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 된 것이다.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려 일제의 강요와 친일파 목사 김일선의 주동으로 신사 참배를 국가 의식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의하고 실행함으로서 한국교회는 처음으로 순결을 범하게 됨으로써 변절하였다. 신사 참배를 결의한 장로교회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을 조직하여 국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과 신사 참배, 궁성 요배, 황국신민 서사제창을 결정하였다.
물론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교역자, 교인들의 수도 많았다. 신사 참배 반대자로 순교한 이들은 주기철(朱基徹), 최봉석(崔鳳奭) 목사, 박관준(朴寬俊) 장로, 박의흠(朴義欽), 서정명(徐廷明) 전도사 등 50여 명이며, 옥고를 겪으면서도 수진자(守眞者)로 출옥한 이들은 이기선, 주남선, 한상동,채정민 목사, 방계성, 이인재, 김린희, 손병복 전도사 등 50여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