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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집 4

함석헌선집 4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함석헌 (지은이)
  |  
한길사
1999-06-05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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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집 4

책 정보

· 제목 : 함석헌선집 4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사회과학계열 > 사회학
· ISBN : 9788935610631
· 쪽수 : 524쪽

목차

[제1권]

제 1 부
1. 인생과 역사 / 2. 사관 / 3. 종교적 사관 / 4. 세계역사의 테두리 / 5. 한국 역사의 기조 / 6. 지리적으로 결정된 한국 역사의 성질 / 7. 한국 사람

제 2 부
8. 당당한 출발 / 9. 열국시대의 모밭 / 10. 풀무 속의 삼국시대 / 11. 고려의 다하지 못한 책임 / 12. 궁예ㆍ왕건이 그린 나라 / 13. 깨어진 꿈 / 14. 고려자기 속에 숨은 빛 / 15. 팔만경판에 새긴 마음 / 16. 최영과 이성계

제 3 부
17. 수난의 5백 년 / 18. 중축이 부러진 역사 / 19. 쓸데없어진 세종의 다스림 / 20. 무너진 토대 / 21. 의인의 피 / 22. 회칠한 무덤 / 23. 살인의 역사 / 24. 고질 / 25. 율곡의 헛수고 / 26. 첫 번째 환난 / 27. 두 번째 환난 / 28. 임경업 / 29. 신생의 가는 빛 / 30. 기독교의 들어옴 / 31. 다시 거꾸러짐 / 32. 해방 / 33. 6ㆍ25

제 4 부
34. 생활에서 나타나는 고민하는 모습 / 35. 고난의 의미 / 36.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의 사명 / 37. 역사가 주는 교훈

[제2권]

제1부
인간혁명 / 비폭력혁명 / 혁명의 철학 / 레지스탕스 / 저항의 철학

제2부
들사람이여, 오라 / 서풍의 소리 / 진리에의 향수 / 사상과 실천 / 아름다움에 대하여 / 옛글 고쳐 씹기 / 노장을 말한다

제3부
새나라 꿈틀거림 / 새 삶의 길 / 새 윤리 / 새 교육 / 씨알 교육

제4부
같이살기 운동을 일으키자 /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 펜들힐의 명상 / 참 지도자의 모습 / 예수의 비폭력 투쟁

[제3권]

제1부
우리 역사와 민족의 생활신념 / 우리 민족의 이상 / 뜻으로 본 한국의 오늘 /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민족, 하나의 인격적 존재

제2부
통곡!삼일절 / 삼일정신 / 3·1운동의 현재적 전개 / 때는 다가오고 있다 / 십자가에 달리는 한국 / 민족노선의 반성과 새 진로

제3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풀어 밝힌다 / 할말이 있다 / 전쟁과 똥
국민감정과 혁명 / 썩어지는 씨알이라야 산다 / 4·19는 혁명이다

제4부
영원한 진리에 복종하라 / 5·16을 어떻게 볼까 / 5·16을 되돌아본다 / 군인정치10년을 돌아본다 / 꿈틀거리는 백성이라야 산다 / 싸움은 이제부터 / 앞을 내다보자 / 우리의 살길 / 비상사태에 대하는 우리의 각오

제5부
새해의 말씀 / 살아도 같아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 세 번재 국민에게 부르짖는 말 / 3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 / 5천만 동포 앞에 눈물로 부르짖는 말 /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편지

[제4권]

제1부
씨알은 소리를 내야 씨알입니다 / 첫가을 소식 / 역시 씨알밖에 없습니다 / 역사는 자유를 향한 행진입니다 / 얼음은 녹습니다 / 봄이 봄 같지 않습니다 / 어리석은 것이 곧습니다 / 시대의 얼굴을 보는 민중 /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삽니다 / 생명을 하나입니다

제2부
씨알은 영원의 아이들입니다 /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이 씨알입니다 / 시대의 얼굴을 읽는 눈알 / 평화는 씨알이 만드는 것입니다 / 정치와 미신 / 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 / 우리는 왜 이래야 합니까? / 안창호를 내놔라 / 역사의 뜻을 잊지 말아요 / 이 맘 하나 / 거기 사랑하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 이름도 없는 사람들 / 밤숨을 끊지 말라 / 듣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 우물 안 개구리 / 밤비 소리를 들어보아야 / 우리는 결국엔 이기고야 맙니다 / 잊을 것, 못 잊을 것

제3부
씨알의 심판 / "Do and die"하고 죽습니다 / 살아나기 위해 죽는 4월 / 손에 움켜쥔 것을 버리시오 / 수선화에게 배우십시오 / 아, 장준하! / 낡고도 새로운 계명 / 네가 어디 있느냐? / 씨알 교육을 해라 / 웃음으로 새우는 설 / 나는 건너뛰었다 / 눈을 들어 산을 보십시오 / 씨알의 제소리 /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 내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 마지막, 막지 마 / 쭈그렁 밤송이의 한숨 / 크리스마스 선물

제4부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리니 / 정신 바짝 차려 / 씨알아 나오너라 / 평안은 없습니다 / 고난의 짐은 내가 질 터이니 / 병신자식을 낳은 마음 / 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 슬픈 노래를 부릅시다 / 감사와 용서 / 사랑의 빛 / 내 잔은 넘쳐 흐릅니다 / "나야 뭐" / '북괴'는 물러가라 / 가장 좋은 길 / 땅끝까지 가서 / 병 주고, 약 준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 구하면 얻을 것이다

제5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아요 / 씨알의 희망 / 부활의 4월과 씨알의 교육 / 마음을 맑고 고요히 하면 / 법 없는 사회 / 네가 개전의 정을 보여라 / 떠나는 마음 같는 마음 / 민족적 비전을 길러야 합니다 / 생명의 근본원리는 스스로 함입니다 / 씨알의 생명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 모든 것은 땅바닥에 내려오고야 맙니다

[제5권]

제1부
나라는 망하고 / 물 아래서 올라와서 / 남강, 도산, 고당 / 이단자가 되기까지 / 한 배움 / 백두산 호랑이 /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38선을 넘나들어 / 겨울이 만일 온다면 / 씨알의 설움

제2부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 내가 맞은 8·15 / 내가 겪은 신의주학생사건 /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서

제3부
나의 어머니 / 간디의 참모습 / 남강 선생님 영 앞에 / 육당·춘원의 밤은 지나가다

제4부
압록강 / 조국암행기 / 남한산성 / 행주산성 / 한 동발목의 이야기 / 늙은이의 옛날얘기

제5부
우리의 살길 / 해방의 날에 새 세대에게 주는 말 / 젊은 여성에게 주고 싶은 말 / 살림살이

저자소개

함석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하의 민족 운동가, 그리고 이후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이자 종교·평화 사상가로서 끝없는 실천의 인생을 산 함석헌(咸錫憲)은 아버지 함형택(咸亨澤)과 어머니 김형도(金亨道) 사이에서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6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로서의 진로를 결정,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갈 생각으로 평양의 관립인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2학년이던 1917년 8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웃 마을에 살던 황득순(黃得順)과 결혼을 한다(슬하에 2남 5녀). 3학년이 되던 1919년에 당시 숭실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친척 형 함석은이 찾아와 평안남북도 학생 운동의 책임을 그에게 맡기고 역사적인 3·1 운동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의사를 꿈꾸던 함석헌의 생애는 크게 바뀌게 된다. 3·1 운동 참여 이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 함석헌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수리조합에서 조합원 일을 하며 2년 간 방황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일단 학업을 이어 나가기 위해 경성으로 가게 된다. 신학기 시작을 놓쳐 입학할 학교를 찾지 못했던 그는 함석규 목사의 추천을 받아 1921년 정주의 오산중학교 3학년으로 입학한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유학길에 오른 함석헌은 고심 끝에 교육자로서의 진로를 정하고 이듬해 도쿄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甲組)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당시 일본식 국가주의로 무장된 직업 교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의 수업 과정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평생 친구가 되는 김교신(金敎臣)과 친분을 가지게 되고 이어 그가 나가고 있던 우치무라 간조의 성경 연구 모임에 같이 참여하게 되면서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김교신을 포함해 여기서 만난 조선인 친구들(유석동,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6명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성서 연구를 지속하면서 1927년 7월 동인지 성격의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도쿄에서 창간한다. 창간호(국판 44쪽)에 발표된 <먼저 그 의를 구하라>는 활자화된 함석헌의 첫 번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928년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함석헌은 귀국 후 오산학교에 부임해 역사와 수신(修身)을 가르친다. 한편으로는 ≪성서조선≫을 발행하면서 ‘성서조선 독자회’를 열고 다수의 글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지만 그의 무교회주의 방식의 신앙 운동은 기존 기독교인들에게 배척을 받기도 한다.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종교 사상을 개척해 나가던 함석헌은 1933년 12월 30일부터 이듬해 1월 5일까지 송두용의 집(서울 오류동)에서 가진 성서 모임에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 초고를 발표하고 토론을 거친 뒤 2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성서조선≫에 연재한다. 일제에 의한 조선의 역사 왜곡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이 글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이 글은 일제 당시 검열로 삭제되었던 부분을 포함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1950. 3. 28), 이후에는 ‘성서적 입장’을 빼고 대폭 수정해 ≪뜻으로 본 한국 역사≫(1962)로 제목을 변경·출간했는데 민중의 고난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씨? 사관’을 보여 주는 그의 중요한 저술이다. 일제 말기 점점 노골화되던 식민지 교육 정책 속에서 창씨개명과 일본어 교육이 강조되자 더 이상 선생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함석헌은 1938년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과수원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이해에 자식 둘을 홍역으로 잃는다. 1940년 평양 송산리의 송산(松山)농사학원을 인수해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전 주인이었던 김두혁(金斗赫)이 도쿄로 유학 가서 도쿄농과대학 조선인 졸업생들과 만든 소위 ‘계우회(鷄友會)’ 모임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함석헌도 연루자로 검거되어 1년 여 동안 평양의 대동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결국 농사학원은 폐원되었고, 아버지는 옥살이 중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1942년 3월 ≪성서조선≫에 김교신이 쓴 권두언을 문제 삼은 일제의 폐간 조치와 더불어 함석헌 역시 연루자로 지목되면서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다. 출소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중 오랜 벗이자 스승의 관계였던 김교신의 사망으로 인한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해방 공간에서 여러 자리에 불려 다니며 평안북도 임시 자치 위원회 문교부장을 맡기도 하였으나,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인 ‘신의주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소련군 사령부에 의해 체포되어 평안북도 경찰부 유치장에 또다시 50여 일을 감금당하고 만다.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산학교에 뿌려진 반정부 전단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또다시 투옥된다. 별다른 용의점이 없어 한 달 만에 석방되었으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때문에 당시 내려진 ‘지주 숙청령’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결국 1947년 월남을 감행한다. 1년여 후 아내와 자식 일부도 월남했으나, 어머니는 내려오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된다. 월남 직후 오류동 노연태의 집에서 지내면서 YMCA 강당에서 일요 종교 집회를 시작하고, 유영모 선생 등과 함께 모임을 가지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 김해 등지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때 가진 한 성서집회에서 그간의 무교회주의와 결별하는 신앙적 변화를 겪게 된다. 퀘이커(Quaker)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으로 여긴다. 휴전 이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강연 활동과 양계장을 하며 어렵게 삶에 정착해 나가는 가운데 ≪말씀≫, ≪편지≫ 등의 신앙 잡지에 여러 글을 발표한다. 그중 1956년 ≪사상계≫ 1월호에 발표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기독교의 타락상과 계급화를 비판했는데, 이 글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에도 함석헌은 ≪사상계≫에 영향력이 큰 글들을 발표하면서 장준하와 함께 군사 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는 길을 걷게 된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꿈꾸어 왔던 ‘이상촌’을 위해 기증(정만수 장로)받은 천안(봉명동)의 땅에서 교육과 농사를 함께하는 공동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의 이름을 ‘씨?농장’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직접 번역해 책으로 출간한 간디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58년 8월호 ≪사상계≫에 발표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20여 일간 구금되는, 이승만 정권 시기 대표적인 필화 사건을 겪는다. 함석헌의 첫 번째 정치 평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로 인한 필화 사건 이후 함석헌은 오히려 왕성하게 글들을 발표하면서, ‘씨?농장’에서 시국을 참회하는 단식 투쟁을 전개하는 등 사회적인 목소리를 높여 간다. 1961년 ≪사상계≫ 7월호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게 된 당시 군부 정권을 비판하는 글 <5·16을 어떻게 볼까>로 인해 사장이었던 장준하와 취재부장이 중앙정보부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당시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때문이었는지 정작 함석헌을 체포하지는 못했다. 1962년 2월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3개월 예정 방미 길에 오른다. 귀국한 직후 7월에 오산학교 강당에서 귀국 강연회(오산학교 동창 주최)를, 이어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상계≫주최의 시국 강연회를 연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기마 경관대까지 출동한 이 강연회를 함석헌은 스스로 ‘사회 참여의 시작’으로 보았는데, 이후 장준하와 더불어 활발한 강연을 통해 군사 정권의 잘못을 꾸짖는 한편 굴욕적인 한일 협정의 비준을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 1965년에는 이를 위해 각 분야 인사 30여 명이 결성한 조국 수호 국민 협의회의 상임 대표로 선출되기도 한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을 위한 개헌을 앞두고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한편, 1970년에는 4·19혁명 10주년에 맞추어 개인 잡지 성격의 월간지 ≪씨의 소리≫를 창간하지만 두 달 만에 폐간 조치를 당하게 된다. 이후 법정 투쟁 끝에 승소해 이듬해 8월에야 복간호로 3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71년에는 이후 1988년까지 지속된 ≪노자≫와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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