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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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셰완잉(謝婉瑩)으로 1900년 10월 5일 푸젠(福建) 푸저우(福州) 룽푸잉(隆普營)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9년 5·4운동이 일어나자 빙신은 애국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여학계연합회(女學界聯合會) 선전부의 청탁을 받고 <21일 법정 심판을 들은 느낌(二十一日聽審的感想)>을 써서 8월 25일에 베이징 ≪신보(晨報)≫에 발표했다. 이어서 최초의 단편소설 <두 가정(兩個家庭)>을 써서 ‘빙신’이란 필명으로 발표했다. 대학 재학 중에도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아 당시에 ‘빙신체(?心體)’, ‘춘수이체(春水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23년 여름에 우수한 성적으로 옌징대학을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전 1921년에 중국 현대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출현한 순수문학 단체 ‘문학연구회’가 생기자, 빙신도 여기에 적극 참여해 활동하면서 이들의 기관지 ≪소설월보≫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1929년 6월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우원짜오(吳文藻, 1901∼1985) 박사와 결혼하고 베이핑여자문리학원(北平女子文理學院), 칭화대학(淸華大學)에서 가르치면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다.
1936년 10월 1일에 빙신은 루쉰(魯迅, 1881∼1936) 등 21명과 함께 <문예계 동인들이 단결해 외국의 침략을 막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선언(文藝界同人爲團結御侮與言論自由宣言)>을 발표했고, 이후 1937년까지 남편을 따라 일본,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를 시찰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빙신은 중화예술계항적협회에 가입해 항전에 적극 참여했으며 중일전쟁 승리 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최초의 외국인 교수가 되기도 했다.
1951년 가을 미국 예일대학의 파격적인 초청을 받았으나 결국 거절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와 정부 고위급 인사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후 빙신은 1954년부터 1∼5회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 대표, 5∼7회 전국정치협상회의(全國政治協商會議) 상무위원, 8∼9회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1979년에는 중국문련(中國文聯) 부주석으로 선출되고, 중국민주촉진회 부주석을 맡았으며, 1988년에는 명예주석으로 선출되었다. 1985년에 중국작가협회 고문으로 추대된 데 이어 1996년 12월에는 명예주석으로 추대되었고, 1999년 2월 28일 베이징에서 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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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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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중국 길림성에서 출생하여 연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고려대 중국현대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세명대, 안양대, 한림대, 고려대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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