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외국창작동화
· ISBN : 9788950926083
· 쪽수 : 240쪽
목차
어딘가 다른 곳
먼 옛날 먼 곳에서
야외
차 안에서
기차에서
뉘른베르크
이메일, 금요일 오후
나폴리
이메일, 토요일 밤
코르푸
떠남
시드니
토요일 시장
계단 위에서
바이런 베이
공중전화
메이페어 카페
금요일 조회
자고 가기
비
쉬는 시간
이메일, 월요일 밤
지난 크리스마스
소포
조그만 불빛들
이메일, 수요일 밤
리 선생님의 이야기
외동아이들
언덕 오르기
금요일 아이
이메일이 아닌, 어떤 생각
도착
열두 마디
책속에서
"거기가 어디였지?"
할아버지의 거실 바닥에 큰 지도가 소풍용 깔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마가 나에게 말했다.
"네 아빠와 내가 여행을 갔을 때는 이쪽으로 갔어."
마마는 색깔들과 글씨들 위로 선 하나를 그었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이번에 너랑 내가 갈 때는 이쪽으로 갈 거야.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곳 하토르프의 추운 비에서 그리스 섬의 따뜻한 태양으로. 아리, 너는 어떨 것 같니?"
"무엇을 보는데요?"
"상상도 못할 만큼 높은 산들. 세계에서 가장 긴 기차 터널 중 하나. 먼 옛날 화산 폭발로 묻혀 버린 고대 도시. 아름다운 바닷가와 유리창처럼 투명한 물."
나는 지도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러시아로 가는 철도를 따라가보았다.
"할아버지도 가요?"
"아니, 너하고 나만이야. 할아버지가 휴가철 기차표 두 장을 선물해 주셨어.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아."
휴가. 어른들이 부엌에서 하는 이야기가 열린 창을 통해 뒷마당에 있는 나에게까지 들렸고, 밤에는 내 침실로 통하는 계단통에 울렸다.
"일로나, 진짜 휴가다. 예전처럼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렴."
"아버지, 제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하거나 외국에 있어요. 이제 자주 만나는 친구가 없다는 것 아시잖아요."
"네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부모 노릇하는 것을 다 봤다. 너는 여기 너무 오래 숨어 있었어. 잠시 떠나 있으면 너한테 큰 도움이 될 거야. 아리는 나하고 지내면 되잖니."
"알아요. 하지만 아직은 아리와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가면 아리도 함께 가는 거예요."
거기가 어디였지?
우리는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배낭은 트렁크 안에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창문에 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여덟 살이에요.
아리예요. 아-리.
세 살 때에서, 세 살 때'부터'바이올린을 켰어요.
네, 정말이에요. 우리 오파,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익히기도 해요. 고맙습니다.
"너, 즉흥 연주를 하는구나!"
그 남자가 말했다. 지난 토요일에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며 엄마와 내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페와 음식점 들이 있는 시장 반대편 끝, 사람들로 붐비는 곳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 중 하나였다. 그 사람은 드럼과 두들기고 흔드는 악기들을 연주했다.
"즉흥 연주를 하고 있어."
남자는 또 말하고는 엄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아이 음악책에 있는 게 아니었지요?"
"마마, 바스 하트 에어 게작트?"
내가 물었다. 뭐라고 한 거예요?
"이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엄마는 낯선 사람에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네가 즉흥 연주를 한대. 연주하면서 음악을 만든다는 뜻이야. 적절한 음으로,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릎을 꿇고 내연습곡집 제3권을 뒤적였다.
토요일 시장에 나온 지도 세 번째쯤 되자, 사람들이 끊임없이 멈춰서서 엄마에게 말을 걸었고 때로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살이니?"
"이름이 뭐니?"
"바이올린은 언제부터 켰니?"
"이렇게 켜는 법을 누구한테 배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