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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만화 > 그래픽노블
· ISBN : 9788954693530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3-06-14
책 소개
목차
VR _11
독서 _21
복수 _29
냄새 _33
아침 _43
반복 _45
발작 _55
매치 _75
무게 _85
방문 _93
지각 _97
구조 _113
리턴 _123
검사 _127
추적 _141
산책 _157
고백 _167
구토 _177
기회 _211
반복 _227
마실 _237
모임 _24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루에게 세상은 마음에 안 드는 것들투성이다. 시내 한복판을 걸으며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난 이 동네가 싫어! 좆같은 간판들에 양아치에…”) 예사롭게 지나치면 될 길목에서도 굳이 행인과 시비가 붙는다(“뭐라고 이 씹쌔끼야?”). 그러다 곧잘 우울로 빠져들어 자기연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아무도 나를…”) 시작도 마무리도 못 할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관둔다(“요즘 독립출판 구리잖아. 우리가 하면 더 잘할걸?”).
루의 친구들은 어떠한가. 천방지축에다 몹시 무례한 슬기. 어째서인지 말을 하는 개 블래키. 왠지 모르게 말을 하지 않는 유학생 솜차이. 어이없게도 얼굴이 사각형인 네모.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시를 쓰는 최정원. 이들이 모여 있으면 뭐랄까…… 어중이떠중이들처럼 보인다. 언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오합지졸의 무리다.
나는 오합지졸이 모여 영광을 거머쥐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누구나 익히 알 법한 만화에선 언제나 그랬으니까. 유명한 만화 속 주인공들은 시간이 갈수록 틀림없이 성장했다. 인물들의 치명적인 약점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중한 강점으로 작용하곤 했다.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루의 실패』에는 그럴싸한 모험도, 고난도, 성공도 없다. 심지어 그럴싸한 실패조차 없다! 딱히 뭔가를 거창하게 시도하지 않으니 실패 역시 시시하게 그칠 따름이다. 어쩌면 진짜 실패는 이 만화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났을지 모른다. 이 책이 이미 실패해본 자의 후일담처럼 읽히기도 하니 말이다. 그 실패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잘은 몰라도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그러나 루가 자빠지기엔 충분한 고난이었을 것 같다.
하루는 네모가 말한다. “루, 나는 기다리고 있어. 네가 다시 우리의 선장으로 돌아오기를……” 나 역시 내심 기대했다. 루에게서《원피스》의 루피 같은 기질이 발휘되었으면, 지금보다 미더운 캐릭터로 거듭났으면 하고. 그러나 루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만화는 그런 장르가 아니다. 호기로운 성장 만화나 눈부신 청춘 만화랑은 거리가 멀다.
나는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른다고 믿듯이, 문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듯이,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나아질 것을 굳게 믿으며 이야기를 써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 강해지거나 더 현명해지거나 더 행복해지는 인물들. 그 믿음엔 자석 같은 관성이 있었다. 끝없는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이 개념은 늘 어떤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방향성은 너무도 강력하여 숱한 이야기가 자기도 모르게 성장 서사에 빨려들어가고 만다. 이런 세계에서는 실패담 또한 장사가 될 수 있다. 실패담은 누구보다도 성공을 의식하는 자의 이야기니까. 이미 성공해버린, 혹은 언젠가 성공할 게 분명한 자가 말하는 과도기적 실패 이야기는 때때로 성공담보다 달콤하고 도취적이다.
허나 이 만화는 성장이라는 거대한 스토리를 위한 도구로 실패를 이용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저 실패일 뿐이다. 의미화되지 않는 삶이 있고, 회복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오직 후회스럽기만 한 헤어짐도 있다. 실패의 축제에서조차 쫓겨날 실패 또한 있을 것이다. 강산은 말한다. 변화는 그런 삶에도 찾아온다고. 또한 『루의 실패』는 변화와 성장을 나란히 놓는 서사를 경계한다고. 아마 인생이 그런 식으로 흐르지 않음을 작가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부진한, 도태된, 아무것도 돌파하지 않는 이 작품이 그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느냐고 묻는다면, 루의 대사를 그대로 돌려주겠다.
“하~ 새끼 유머를 모르네.”
『루의 실패』가 웃기지 않고 걱정스럽기만 하다면,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아마 당신은 루보다 더 심각하게 고장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웃겨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마주앉고 싶다. 그런 사람과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_이슬아 추천글, 「너는 왜 맨날 이 지랄이지 진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