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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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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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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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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동의보감 
· 분류 : 전자책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의약학간호계열 > 한의학
· ISBN : 9788957025239
· 출판일 : 2024-10-25

책 소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광해군(光海君) 2년 8월에 완성되었고, 그 공로로 성의(聖醫) 허준(許浚) 선생은 숙마(熟馬) 일필(一匹)을 하사받았다. 허준 선생은 선조(宣祖) 때의 명의(名醫) 중의 명의로 충근정량호성...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광해군(光海君) 2년 8월에 완성되었고, 그 공로로 성의(聖醫) 허준(許浚) 선생은 숙마(熟馬) 일필(一匹)을 하사받았다.

허준 선생은 선조(宣祖) 때의 명의(名醫) 중의 명의로 충근정량호성공신(三等), 선조 8년부터 23년까지 입진대약(入診待藥)의 공로로 녹피를 하사받고 공정대부(正三品) 이상의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동(同) 39년 정월에 양평군(陽平君) 정일품(正一品) 보국숭녹대부의 자(資)를 가(加), 그 후 보국의 자(資)는 중지하였다(?).

광해군(光海君) 원년(元年) 11월에는 어의(御醫)의 수(首)가 되어 수의(首醫)로서 소임을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당시 임금을 호종하여 당시의 유공자를 기록하게 하고 동(同) 29년에는 선조의 명(命)으로 유의(儒醫) 정작, 태의(太醫) 양예수, 김응택, 이명원, 정예남(통정대부) 등과 함께 동의보감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완성을 보기 전에 다시 정유(丁酉)의 란(亂)을 만나 제의(諸醫)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동의보감 제작은 중단되었다. 그 후 선조가 다시 허준(許浚)에 명하여 그 선집을 완성하게 하였는데, 당시 보유하고 있던 의약서 500여권을 기준으로 하여 고증하게 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는데 10여년 간에 걸쳐 광해군(光海君) 2년에 이르러 그 업(業)을 종료하고 총수 25권 25책의 방대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완성되었다. 요약하면, 목록 상, 하 2권으로 내경편(內景篇), 외형편(外形篇), 잡병편(雜病篇), 탕액편(湯液篇), 침구편(鍼灸篇)으로 그 내용을 망라하였다

저자소개

허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30여 년 동안 왕실병원인 내의원의 어의로 활약하는 한편,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한 8종의 의학서적을 집필. 허준은 뼈대 있는 무관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허론(許?)과 양반 가문 출신인 어머니 영광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정실(正室)이 아니었기에, 그의 신분은 중인으로 규정되었고, 이러한 신분은 문·무관보다 천하다고 여겨진 의관의 길을 택하는 데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훌륭한 가문의 배경 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다. 허준이 언제,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으며, 또 의관으로 나아갔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관직으로 볼 때, 허준의 장년 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內醫)로서 크게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1590년(선조 23) 허준은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이 품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규정한 서자 출신인 허준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정3품의 한계를 깰 정도의 큰 상이었다. 둘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승하하던 1608년(선조 41) 때까지이다. 허준이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함으로써 그는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1596년(선조 29)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친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 하나인 동반(東班)에 적을 올렸다. 1604년(선조 37)에는 임진왜란 공신 책봉이 있었는데, 허준은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정되는 한편, 그는 본관인 양천(陽川)의 읍호(邑號)를 받아 양평군(陽平君)이 되었다. 이와 함께 품계도 승진하여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1606년(선조 39) 선조의 중환을 호전시킨 공으로, 선조는 그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를 주고자 했으나, 사간원·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셋째, 1608년(선조 41)부터 그가 죽던 해인 1615년(광해 7)까지이다. 이 7년은 시련기로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고 먼 곳으로 귀향을 가는 등 불운이 있었고,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권세가 없는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고요하게 삶을 마쳤다. 1608년(선조 41) 선조가 병으로 죽자, 그것이 수의(首醫)인 그의 잘못이라는 탄핵을 받아 허준은 삭탈관직 되는 한편, 의주 유배형이 처해졌다. 그의 유배는 1년 8개월이 지난 1609년(광해 1)에 풀렸으며, 6년 후인 1615년(광해 7) 세상을 떴다. 사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했다. 의관 허준의 출세는 조선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는 그의 의술 솜씨와 우직한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다. 이와 함께 이를 질시한 양반계급의 불만도 작지 않았다.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세평(世評)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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