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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88957983645
· 쪽수 : 128쪽
책 소개
목차
구경만 하기 수백 번
혼자일 때만 들리는 소리
그를 만나다
못이 박힌 자리
뻥튀기
엄마다 쿵, 엄마다 쿵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쪼다 같은 놈.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나는 진우 등을 흘겨보았다. 그 순간 식판을 들고 일어서던 진우가 곁눈질로 뒤를 째려봤다. 내 눈과 마주쳤다. 못 본 척 눈을 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나도 진우를 흘겨봤다. 이상했다. 진우와 나 사이에 잠시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움찔하며 눈을 돌렸다.
새로운 종목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김치 국물 쏟기 한 번.
점심을 다 먹고 노는 사이에도 태준이는 진우를 가만두지 않았다. 기록은 계속계속 고쳐졌다. 찌르기 열두 번, 뒤통수 때리기 열 번.
진우는 밟아도 꿈틀할 줄 모르는 바보 지렁이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한 번 꿈틀하던 그 못난 지렁이. 그게 바로 진우다.
해찬이는 식판이 시키는 대로 식판의 앞부분을 살짝 들어 보았다. 그러고는 그 아래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울룩불룩한 식판 밑바닥의 가운데가 움질움질하는 게 보였다. 그것이 식판이 말한 자신의 입인 모양이었다. 확인시키듯 식판이 입을 쩌억 벌렸다. 꼭 가오리 입 같았다. 그러자 식판에서 딸까닥, 쇳소리가 났다.
“딸까닥, 야, 근데 넌 뭐가 그렇게 어렵냐? 내가 너한테 몇 번이나 말을 건 줄 알아? 내가 그렇게나 딸까닥거리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너만큼 둔한 애는 처음이다. 눈치가 없는 거냐, 관심이 없는 거냐?”
해찬이는 식판이 말을 걸어오는 걸 알아챌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도리어 묻고 싶었다.
“딸까닥, 근데 넌 왜 항상 혼자야?”
해찬이는 작게 한숨을 뱉어 냈다. 왜 혼잘까? 해찬이도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아이들과 뚝 떨어진 곳에 자신이 있었다.
아빠 지갑은 아빠만큼이나 낡고 초라했다. 천 원짜리 몇 장과 아빠임을 알리는 각종 신분증 그리고 가족사진. 규리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하며 찍은 축소형 사진이었다. 어린 규진이가 아빠 무릎에 안겨 있었다. 규진이는 사진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외면해 버린 아빠의 눈길이 얼마나 오래도록, 얼마나 애달프게 사진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을까.
규진이는 아빠의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주행 거리만큼이나 깊었을 아빠의 외로움이 수건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빠의 땀 냄새는 송곳처럼 아팠다.
아빠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엄마의 통장으로 큰돈이 들어왔다. 생명 보험 회사가 보낸 아빠의 사망 보험금이었다. 꿈에 그리던 돈을 품고도 엄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엄마는 멍하니 통장에 찍힌 숫자만 뚫어져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