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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소설로 읽는 다른 세계들

영어권 소설로 읽는 다른 세계들

전남대학교 영어권문학 연구회 (엮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4-12-01
  |  
17,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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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소설로 읽는 다른 세계들

책 정보

· 제목 : 영어권 소설로 읽는 다른 세계들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영어영문학 > 영미작가론
· ISBN : 9788968491610
· 쪽수 : 396쪽

책 소개

아프리카의 아체베에서 시작하여 카리브해, 남아시아, 캐나다, 호주, 그리고 아일랜드의 엔라이트까지 그간의 영어권 소설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얼마나 다양한 주제를 재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어권 소설의 향연과 같은 연구서이다.

목차

책머리에 ㆍ 5

아프리카
에제울루의 몰락과 이보사회의 식민주의 극복 의지 _이성진 ㆍ 16
흑인들은 왜 부시맨을 차별하는가? _김현아 ㆍ 38
인종의 경계를 넘어 _왕은철 ㆍ 64
우리는 타자성과 어떻게 조우해야 하는가? _박오복 ㆍ 92

카리브해
식민지 근대 풍경에 관한 어떤 보고서 _이혜란 ㆍ 116
카리브로 향하는 식민지 여성의 혼불 _이경순 ㆍ 140
디아스포라 내부자의 시선과 포스트식민 담론 _이현주 ㆍ 162

남아시아
사라진 여성들과 인도 민족주의 _이경순 ㆍ 186
이산자의 탈식민적 교섭으로써 혼종자아 찾기 _이성진 ㆍ 206
파키스탄 작가가 해석하는 9.11 테러와 두 근본주의의 충돌 _김현아 ㆍ 228

캐나다
같은 공간, 다른 운명 _이현주 ㆍ 254
‘진짜 원주민’ 찾기 _민태운 ㆍ 278
여성의 역사 다시 쓰기 _주재하 ㆍ 300

호주, 아일랜드
‘아버지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 _이혜란 ㆍ 324
한 아일랜드 아이의 복수 _김은영 ㆍ 344
일그러진 기억속의 가족 사진첩 _김은영 ㆍ 370

찾아보기 ㆍ 392

저자소개

전남대학교 영어권문학 연구회 (엮은이)    정보 더보기
이성진 문학박사, 서남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김현아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왕은철 문학박사,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민태운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현주 문학박사, 광주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 조교수 이혜란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김은영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박오복 문학박사, 순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경순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주재하 문학박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펼치기

책속에서

아프리카

에제울루의 몰락과 이보사회의 식민주의 극복 의지
― 치누아 아체베의 『신의 화살』

아프리카의 역사 회복을 위하여
오늘날 아프리카 탈식민 문학 연구의 초석이 되고 있는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는 아프리카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리카 탈식민 소설 작가로는 토착민계와 유럽 백인의 후손인 아프리카너Afrikaner계 작가로 크게 양분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하는 대표적 작가들로 아체베와 응구기(Ng?g? wa Thing'o)가 있고 후자의 작가들로는 쿳시(J. M. Coetzee)와 고디머(Nadine Gordimer) 등이 있다. 케냐 출신의 응구기가 모국어인 키쿠유어를 사용하여 탈식민담론을 피력하였다면 아체베는 영어를 매개로 하여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아프리카의 탈식민 상황을 소개했다. 백인 후손인 쿳시와 고디머가 인종주의나 노예무역과 같은 가장 첨예한 아프리카의 (탈)식민 상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윤리를 빌어 서술하였다면 아체베는 아프리카의 과거 역사를 확인하고 회복함으로써 아프리카인들의 정신적 탈식민화를 이루는 것을 집필 목표로 삼았다.
아체베는 아프리카의 사회적ㆍ문화적 현실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아프리카인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같은 열등의식에서 벗어나 그들이 정신적 탈식민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랬다. 그는 아프리카 문단에 소설이라는 생소한 양식을 소개하였으며,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화적 기원을 복구하는”(이석구) 것이라는 탈식민적 논의를 불러왔다. 아체베는 자신의 에세이, 「새로운 국가에서 작가의 역할」“The Role of the Writer in a New Nation”에서 작가의 역할은 아프리카인들이 식민시대에 상실한 존엄성과 자존감을 되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상실된 존엄성과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화적 기원을 확인하고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한 아체베는 그의 삼부작을 통해 이보사회Igboland의 전통과 식민주의의 상황을 재현한다. 아체베의 삼부작, 『모든 것이 무너지다』Things Fall Apart, 1958와 『더 이상 평안은 없다』No Longer at Ease, 1960 그리고 『신의 화살』Arrow of God, 1964은 유럽인들에 의해 왜곡된 아프리카의 전통과 문화를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정정하고 그들의 전통과 문화 나아가 존엄성과 자존감이 박탈되는 과정에서 식민주의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왜곡된 아프리카의 문화적 기원을 회복시키기 위해 아체베는 아프리카의 풍광, 평화를 존중하는 축제와 재판과정, 화합을 중시하는 결혼식과 원로모임 등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식민주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과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아체베를 홍덕선은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상황, 그리고 더 나아가 탈식민주의 상황을 비판하며 반식민주의 의식과 미학을 꾸준히 탐구”하는 작가로 평가한다.
『신의 화살』에서 아체베는 에제울루Ezeulu의 몰락을 통해 이보사회의 식민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이보사회를 상징하는 우무아로Umuaro와 영국 식민정부가 자리하고 있는 옥페리Okperi 사이에 있는 농지 소유권에 대한 분쟁으로 시작된다. 이 토지분쟁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은와카Nwaka와 이를 부정하는 에제울루 사이에 분열이 생겨난다. 옥페리와 우무아로의 갈등은 전쟁으로 발전하고 영국 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윈터바텀 대위Captain T. K. Winterbottom는 이 전쟁에 개입하여 우무아로의 모든 무기를 압수하고 토지 소유권이 옥페리에 있다고 판결한다. 이렇게 토지분쟁을 일단락 시킨 식민지배자는 옥페리와 우무아로 사이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고 여기에 우무아로 젊은이들이 무보수로 참여하게 된다. 우무아로에 들어온 기독교는 이보 사람들이 숭배하는 황제 비단뱀을 죽일 것을 설교하고 에제울루의 아들 오두체Oduche가 비단뱀을 죽이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무아로의 내부 분열은 더욱 심해진다. 윈터바텀 대위는 대족장Paramount Chief을 임명하라는 영국 식민정부의 강요에 에제울루를 임명족장Warrant Chief으로 선택하지만 에제울루의 거부로 난관에 부딪힌다. 대족장 임명 문제로 옥페리에 호출되었다 두 달 동안 감금된 에제울루는 햇얌 축제New Yam feast를 연기시킴으로써 우무아로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온다. 굶주림으로 고통 받던 우무아로 사람들은 에제울루를 원망하고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얌을 수확하게 되고 아들 오비카Obika를 잃은 에제울루는 늙은 광인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스토리라인을 통해 아체베는 이보사회가 식민지배를 받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에제울루의 개인적인 복수극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식민주의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이보사회의 가장 중요한 규범인 공동체 의식이 붕괴되었기 때문임을 주장하고 있다.
『신의 화살』은 아체베의 특징적 글쓰기 양식이라 할 수 있는 속담과 이보어의 혼용, 그리고 이보 전통문화의 재현을 통해 식민주의와 이보 공동체의 몰락 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다』가 영국 식민주의에 저항하여 우무오피아Umuofia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오콩쿼Okonkwo의 몰락상을 재현하였다면, 『신의 화살』은 아프리카 초기 식민화 과정에서 분열되어 가는 부족의 몰락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단(John O Jordan)은 아체베의 『모든 것이 무너지다』와 『신의 화살』은 배경과 주제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보 사람들의 역사적 조망과 식민주의 출현에 대한 반응 묘사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 소설은 『모든 것이 무너지다』에서 소개 된 낯설지 않은 이보사회의 풍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국 식민지배자의 출현으로 야기된 사건들 속에서 전개되는 에제울루의 몰락은 오콩쿼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오콩쿼는 식민주의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전통만을 고수하려다 몰락하지만, 이보사회 즉 우무아로를 대표하는 에제울루의 몰락은 식민주의를 이해하고 그들과 동등해지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아체베의 『신의 화살』에 대한 해외 연구로 아우야(Chris Kwame Awuyah)는 백인 식민주의자의 출현으로 발생한 우무아로의 사회적 변화와 이에 대한 에제울루의 반응을 주요 논제로 다루고 있으며, 『신의 화살』에 소개된 신화와 의식ritual의 신성함을 통해 신성함과 권력 사이에 어떤 관계와 의미가 있는지 고찰한 매써레이(Mark Mathuray)의 연구가 있다. 그리고 조단은 아체베가 그의 첫 번째 소설 『모든 것이 무너지다』가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 변화라는 동일한 주제로 『신의 화살』을 저술한 것은 첫 번째 소설이 출판된 이후 그가 알게 된 더 많은 이보사회의 식민역사를 반영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보사회와 식민지배자 사이의 오해로 인한 문화적 충돌과, 우무아로 공동체의 내적 분열과 백인 식민주의와의 외적 긴장 속에서 에제울루의 탈식민적 선택을 고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연구는 『모든 것이 무너지다』에 대한 연구는 다수 진행되었지만 『신의 화살』만을 대상으로 한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우무아로와 옥페리 사이의 토지분쟁과, 두 마을 사이의 도로 건설 그리고 비단뱀 사건과 에제울루의 대족장 임명과정을 살펴보고 영국 식민주의가 이보사회의 몰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고찰한다. 그리고 윈터바텀 대위가 제안한 대족장에 대한 에제울루의 거부, 햇얌 축제일의 지연과 에제울루의 몰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찰한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식민주의 시대에 영국 식민주의의 침입과 지배 과정을 따져 묻고 에제울루의 몰락과 이보사회의 식민주의 극복 의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보사회, 영국 식민주의에 무너지다
『신의 화살』에서 영국 식민주의의 실체는 『모든 것이 무너지다』에서처럼 아주 분명하게 제시되지는 않지만 조지 앨런George Allen의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The Pacification of the Primitive Tribes of the Lower Niger이라는 글을 통해 짧고 효과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다』에서 결말 부분의 식민주의에 대한 짧은 언급이 독자에게 오콩쿼의 죽음 이후의 식민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로 작용했다면(이성진), 『신의 화살』에서는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속에 등장하는 영국인들의 소명의식/백인의 책무와 드레이크Drake와 넬슨Nelson 그리고 클라이브Clive와 같은 인물에 대한 짧은 언급이 영국 식민주의의 실체를 충분히 역설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영국 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로서 아메리카와 인도India 등지의 무력 침입과 노예무역 등과 연관된 인물들이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은 『모든 것이 무너지다』의 결말 부분에서 백인 판무관이 쓰던 글의 제목이며 『신의 화살』에서 다시 언급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조지 앨런의 글 속에 나오는 판무관에 대한 클라크의 첫인상은 “토착민들의 관습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35-36) 독단적인 인물로 제시되는데, 이는 아직까지 식민주의와 깊은 공모관계에 있지 않은 신임 행정보좌관인 클라크가 보는 식민주의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신의 화살』에서 재현되는 또 다른 식민주의의 모습은 분리주의자의 모습이다. 영국 식민정부는 나이지리아에 거주하는 부족들 간에 차별을 둠으로써 부족 간에 갈등을 유발시켜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분열정책을 획책하고 있다. 백인들은 우무루Umuru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함으로써 다른 부족들의 시장보다 크게 만들었고(19), 경제력의 차이는 부족 간의 심리적 열등감을 유발시킴으로써 보다 쉽게 식민주의에 동화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백인들의 언어는 우무아로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들게 하고 나아가 영어는 이를 사용하는 중간관리자와 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을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하여 백인들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우무아로의 교회에 새로 부임한 존 굿컨트리John Goodcountry는 니제르 강의 삼각주 출신, 즉 외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의 말을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된다(46). 모세 우나추쿠Moses Unachukwu 역시 백인의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가 건설하는 도로에 징집된 우무아로 젊은이들의 통역가가 되고, 라이트와 오비카 사이에 싸움이 발생했을 때 중재하는 과정에서 영어 구사 능력이 확인됨에 따라 명성이 높아진다(77). 이렇듯 영국 식민주의는 그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정치ㆍ경제에 개입하고 기독교를 통한 백인의 가치와 언어를 이용하여 점진적으로 이보 사람들의 정신적 식민화를 꽤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토지분쟁에 개입하고 도로를 건설하고 대족장을 임명하는 식민화 사업이다.
이 소설에서 우무아로에 대한 식민지배의 최초의 실현은 우무아로와 옥페리 사이의 토지분쟁 사건이며 이 사건으로 인해 에제울루의 몰락과 이보사회의 분열이 시작된다. 옥페리는 식민 행정부가 거번먼트 힐Government Hill에 주둔지를 설치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면서 과거 우무아로 부족에게 생활터전을 제공했던 곳이다. 하지만 두 부족은 지금은 농사도 짓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땅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옥페리의 소유권 주장에 분노한 은와카를 중심으로 하는 주민들은 전쟁을 주장하고, 에제울루를 중심으로 하는 대부분의 원로들과 주민들은 옥페리와의 평화를 주장한다. 결국 우무아로 부족은 옥페리와 전투를 벌여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며, 윈터바텀 대위는 이 분쟁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토지 소유권이 옥페리에 있는 것으로 결정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윈터바텀 대위는 에제울루만이 진실을 말했으며 다른 모든 우무아로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거짓 진술을 하였다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무아로 사람들은 에제울루가 부족을 배신하고 백인의 친구가 되었다며 사제를 불신하게 된다.
피상적으로 보았을 때 두 마을 사이의 토지분쟁은 소소한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보다 심도 있게 고찰해 보면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화 사업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영국 식민주의가 아프리카에 침입하는 과정은 『모든 것이 무너지다』에서 아바메Abame 학살사건에서 볼 수 있다. 아바메 사람들은 신탁에 의해 철마iron horse를 타고 온 백인 선교사를 죽이고 그의 자전거를 나무에 묶어 두었다Achebe, Things 139-40. 이를 빌미로 영국 식민주의는 장날 장터에 모여든 거의 모든 아바메 사람들을 총으로 학살함으로써 주변 부족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준 후 쉽게 이보사회에 침입해 들어갔다. 이렇듯 영국 식민주의가 작은 사건을 빌미로 영토를 탈취하려는 숨은 탐욕을 드러내는 예는 이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에제울루가 그 토지의 소유권이 옥페리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그 땅이 옥페리의 것이었다고 들었기 때문인 반면, 은와카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사실은 옥페리 사람들은 유랑 족으로 여러 마을을 유랑하는 과정에서 그 땅에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의 소유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소설에서 이보족들은 조상으로부터 역사적 사실을 습득하게 되고 이러한 사실은 모두 진실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에제울루와 은와카의 주장은 모두 옳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북쪽에 위치했던 부족이 남하하였다는 기록 역시 이를 증명해준다. 유종현의 『아프리카의 부족과 문화』에 따르면 그 대표적인 예가 기원전 일 천 년경에 있었던 반투Bantu계 종족의 남하이다. 니그로이드Negroid에 속하는 반투계 부족이 남하한 것은 사하라 사막이 건조해짐에 따라 농경과 목축이 가능한 사바나와 산림지역을 찾아 이동했다는 설과,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던 백인계 집단들이 사하라 이남까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밀려났다는 설이 있다. 여하튼 나이지리아 주변으로 이동한 니그로이드는 서기 일 세기경 급격한 인구증가 때문에 카메룬과 가봉을 거쳐 콩고로 이주하였으며 일부는 앙골라와 나미비아를 거쳐 남부 아프리카로 이주하였다. 이렇듯 이 소설에서도 에제울루와 은와카의 서로 다른 주장 때문에 토지 소유권을 판가름하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윈터바텀 대위가 에제울루의 말만이 옳다고 규정하고 그 소유권을 옥페리에 부여한 것은 영국 식민주의가 식민화 사업을 위해 토지분쟁에 의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은와카의 “백인이 우리를 뒤집어엎어 놓기 전에 그들이 우리 농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한 적이 있었소?”(16)라는 말이나, 또 다른 마을사람의 “그 땅이 정말 그들의 것이었다면 백인이 와서 그들에게 인지 시켜주기 전까지 왜 우리가 여러 세대 동안 그곳을 경작하고 풀을 베어가도록 내버려두었겠소.”(20)라는 말 역시 토지분쟁과 영국 식민주의와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윈터바텀 대위에 따르면 어느 날 옥페리를 방문한 우무아로 사람이 술에 취해 옥페리 사람의 이켄가를 두 동강이 내는 신성모독의 행위를 범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두 마을이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그 분쟁에 개입하게 되었으며 중재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위증하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윈터바텀 대위는 우무아로 사람을 어린아이나 거짓말쟁이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7-38). 윈터바텀 대위의 설명이 에제울루나 은와카의 설명과 다른 이유는 윈터바텀 대위가 이보사회의 전쟁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주장만을 인정하는 식민주의자의 전형적 태도인 유아론적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무아로 사람들을 상황과 무관하게 거짓말만 늘어놓는 어린아이로 타자화 하는 영국 식민주의의 태도는 인종주의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영국 식민주의의 인종주의의 경향은 라이트John Wright의 원주민들에 대한 생각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매우 게으르기 때문에 혹독하게 다루어야 반응을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애완견처럼 충성스럽다고 생각한다(75-76). 하지만 그는 화가 났을 때는 원주민을 “검은 원숭이들”(82)이라고 부름으로써 여전히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간주 한다. 이렇듯 토지분쟁은 영국 식민주의의 의도된 개입이었으며, 그들은 이 과정에서 독선적이고 인종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체베 연구가인 렌(Robert M. Wren)에 따르면 도로 건설은 “정형화되고 사실적인 식민주의 정책”(108)이며, “문명”을 전달하고 “거래”를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범죄”(109)와 폭력이 감춰진 식민주의의 한 수단이다. 영국 식민주의는 이보사회를 식민지로 건설하기 위해 토지분쟁 사건을 빌미로 우무아로에 첫발을 내디딘 후 우무아로와 옥페리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식민화 사업을 구체화 한다. 도로 건설은 식민주의자가 내세우는 문명전달이라는 명분을 갖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식민주의의 착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택 파괴자라 불리는 악명 높은 도로 감독관은 계획된 도로공사가 전혀 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도로가 그들의 집 한가운데로 통과할 것이라고 협박하여 돈을 갈취한다. 또한 자신의 협박에 힘을 싣기 위해 돈 내기를 꺼리는 세 사람의 집을 부셔버리기까지 한다. 라이트는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영국 식민지배자와 친연관계에 있는 옥페리의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비우호적 관계인 우무아로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노동력을 착취한다. 뿐만 아니라 지각한 오비카에게 화가 난 라이트는 지금까지의 관례에서 벗어나 채찍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과오에 상응하는 벌금형이 아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에제울루 뿐만 아니라 동년배 젊은이들로 하여금 분노와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이렇듯 공공연히 폭력과 착취를 행사하는 식민지배자는 식민화의 범위를 종교적 신념으로 점차 넓혀 감으로써 식민지의 가치와 전통을 붕괴시켜 혼란과 분열을 가중시킨다.
신성한 비단뱀 사건은 에제울루의 우무아찰라Umuachala 마을과 은와카의 우문네오라Umunneora 마을 사이의 분열을 가중시키며, 이보사회에 대한 영국 식민주의의 보다 구체적인 실현이 된다. 외견상 비단뱀 사건은 에제울루의 아들 오두체가 황제 비단뱀을 상자에 가둬 질식시켜 죽이려다 실패로 끝났지만 황제 비단뱀으로 상징되는 이데밀리Idemili 신의 사제 에지데밀리Ezidemili에게 알려지고 에지데밀리는 은와카의 멘토였기 때문에 은와카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메신저를 에제울루에게 보낸다. 마을의 전통에 따르면 실수로 황제 비단뱀을 죽인 경우 죽은 비단뱀을 사람처럼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주면 그 과오를 면하게 된다. 이 사건은 비단뱀이 죽은 것도 아니고 상자에 가둔 것이기 때문에 관습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마을의 불미스러운 것들을 정화하는 호박잎 축제Festival of the Pumpkin Leaves를 책임지고 진행하는 이는 다름 아닌 에제울루이며, 호박잎 축제가 머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지데밀리와 은와카가 책임을 따지는 것에 대해 에제울루는 크게 분노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무아찰라 마을과 우문네오라 마을은 극단적인 적대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내면에는 영국 식민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다. 오두체가 황제 비단뱀을 상자에 가둔 것은 진정한 기독교도가 되기 위해서는 “강가의 부족들이 이구아나를 죽인 것처럼 여러분은 비단뱀을 죽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47)라는 굿컨트리의 설교 때문이었다. 굿컨트리에 따르면 우무아로 사람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비단뱀은 단순한 뱀일 뿐이며 이브를 속인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비단뱀을 숭배하는 것은 잘못된 관습일 뿐이다. 하지만 굿컨트리와 대립하는 모세 우나추크에 따르면 우무아마Umuama의 여섯 형제가 비단뱀을 잡아 얌 포타주를 요리해 먹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져 마을 사람 대부분이 사망하여 마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이후 비단뱀을 죽인 자는 동족을 죽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아체베 연구가인 아우야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오두체가 교회에서 받은 상자를 이용하여 황제 비단뱀을 죽이려 한 것은 기독교 세력이 우무아로의 전통 신앙을 정복하려는 상징으로 간주한다. 종교적 의미에서 벗어나 고찰하여도 비단뱀 설화는 내부 분열을 경계하고 화합을 중요시하는 이보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굿컨트리의 설교는 이보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파괴하는 행동이며 나아가 기독교의 가치를 주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머리말]

이 책은 영어권 소설에 관한 여러 글들을 모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연구결과가 아니라 <전남대학교 영어권문학 연구회>의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한 내용을 수정ㆍ보완하고 일부는 새롭게 저술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간 국내에서 영어권 소설에 대한 연구서들이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여 영문학 독자들 뿐만 아니라 인문학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영어권 소설을 제대로 음미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영국이나 미국과는 다른 세계들을 보여주는 영어권 서사들은 지구화 시대의 다른 세계를 알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영어권 문학의 숲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통합적이고 균형있는 시각을 갖춘 길잡이가 되어 일반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10명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 책의 구성을 보면, 광범위한 영어권 문학을 공간적으로 다섯 지역, 즉 아프리카, 카리브해, 남아시아, 캐나다, 호주/아일랜드로 나누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방법론적 틀은 포스트식민주의, 후기구조주의, 유색/페미니즘, 문화연구와 관련되는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패러다임이다. 이 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영어권’ 소설과 ‘다름’이라는 개념 역시 오늘의 인문학적 풍토를 반영하는 주요 개념이다. 시기별로는 1947년부터 2007년에 이르는 현대 영어권 소설들로 총 16편의 소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목차 순서는 각 지역/국가로 구별하여 시대순으로 배열하였고 작가 소개는 대략적인 설명에 사진을 곁들여 영어권의 다양한 작가들을 독자에게 친숙하게 제시하고자 했다. <생각해보기>는 각 작품을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질문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영어권의 다양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영미중심에서 영어권으로, 주체에서 타자로,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라는 개념들로 독자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어권 서사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무렵이다. 1992년 필자가 발표했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내용으로, 포스트식민주의 논의의 한 시발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등장했던 글로벌 영어권 소설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개별 작가나 몇몇 국가 중심으로 단편적, 지엽적으로만 소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주기적인 세미나를 통해 각 지역이 지닌 특수성과 독자성을 함께 비교, 분석하고 토론하는 작업에서 영어권 소설들의 공통점과 차이를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세미나에 참여했던 본 연구자들은 각 지역/국가의 영어권 문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온 다양한 학자들로 이미 학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상태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이후 우리 주변에서는 ‘세계화’ 혹은 ‘지구화’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회자되어 왔다. 그만큼 지구촌의 세상도 엄청나게 변했고 이제는 세계 자체가 우리가 해석해야 할 커다란 텍스트가 되었다. 게다가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의 대학교육에서 ‘주변부’ 연구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 우리는 과연 타자인 ‘남,’ 혹은 ‘주변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와 ‘다른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이 세계에 관해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이 모종의 재현들로부터 유래되어 익숙해진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한 번이라도 인식해 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이같은 질문에 바탕을 두고 궁극적으로는 탈식민 지식에 도전하도록 독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역사적 결과로서 영어는 오늘날 앵글로 색슨의 민족 언어라기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인종적 배경들을 지닌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되었다. 또한 표준화 된 하나의 영어가 아닌 다양한 영어‘들’을 포괄하는 ‘영어권’이라는 말은 식민시대 이후 현재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적용되어왔다. 그리고 ‘영어권’이라는 개념으로 포괄되는 공간은 매우 광범위하여 이 공간에서 생산되는 문학들은 거의 세계문학의 범주를 아우르고 있다. 영어권 문학은 국가나 인종 등 단일한 틀로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공통적인 관심사인 포스트식민주의, 제3세계, 유색, 하위계급, 이산, 소수인종, 젠더와 성 등, 문화연구의 주제들을 풍부하게 포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어권 소설로 읽는 다른 세계들』은 독자로 하여금 ‘제1세계’의 타자로 왜곡되게 개념화되어 온 포스트식민의 모습을 인종적, 계급적, 문화적 담론의 권력관계라든지 이러한 권력담론을 변화시키려는 전략적 차원에 주목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자들은 영어권 서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영미 중심부와의 관계를 결코 잊어 본적이 없다. 그것은 영어권 문학이 전통 영문학에 개입하여 앵글로 색슨 위주의 단일문학 담론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마련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영어권 작가들은 문학을 통해 인간의 권리와 가치를 이야기해 왔고 그것들을 부정하려는 모든 권력들과 용기있게 맞서 온 작가들이다. 이들은 서구 중심부의 언어인 영어로 글쓰기를 하면서 서구 문화와 정치권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제국주의의 유산을 과감히 들춰내고 서양의 지적 획일주의를 비판하는 데 주력하였다. 나아가 이들이 보여준 ‘다른 세계들’의 ‘다른 시선들’은 지구촌 독자들의 인식의 변화를 도모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세계문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가 가한 식민 폭력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과거와 오늘의 아픔을 딛고 서구중심주의 문학에 대한 통념을 전복시키며 포스트 식민 시대의 새로운 비전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가군으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인구의 85%를 차지할 정도의 압도적인 다수가 짧게는 몇 십년에서 길게는 수세기에 걸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배를 경험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식민주의는 인류 보편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유럽 식민주의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인간존재를 창조하였는데, 그것은 ‘원주민’, ‘야만인’이라는 이름이었다. 대영제국의 경우,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 식민 통치를 확대해 왔다. 영국은 경제적 통치와 더불어 법률, 종교, 교육, 군사, 정치와 미학적 관념을 식민지로 수출하였다. 또 영국의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식민지 아동과 성인 모두를 영국 시민보다 더 영국적인 시민으로 양성하였다. 이와 더불어 영국의 ‘문학’, 특히 초서, 셰익스피어, 밀튼 등은 ‘위대한’ 작가들로 전파되었다. 그 과정에서 영문학과는 처음부터 영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전 세계에 확립하는 국가적 사명의 일부를 맡게 되었다. 영문학자 혹은 영문학과 교수 등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식민적 맥락에서 영국의 문학과 문화의 우월성을 쉽게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로 영문학 지형은 영어권 작가들의 출현으로 대변화를 겪게 된다. 더 이상 전통적인 읽기 방식으로는 다른 세계의 다른 텍스트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영어권 작가의 서사들이 인간과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깊이 있게 해명하는 대안서사로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영어로 쓰인 탁월한 소설들은 영국이나 미국에서가 아니라 과거 영국 식민지 출신의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에 이후 현대 문학비평에서 중요한 비평방법으로 자리잡은 포스트식민주의는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영어권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식민/제국주의와 인종억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활발하게 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탈식민화 과정이란 이와 같이 ‘야만인’을 인간으로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자 제국주의 학문의 자기중심성을 폭로하고 전복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이제 ‘다른’ 텍스트들을 가르치는 영문학 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이슈는 “이 텍스트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신에 “이 텍스트는 어떤 문학적 작업을 수행하고 어떤 맥락에서 해석해야 하는가?” 혹은, “이 텍스트는 이 지구촌의 어느 공간의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방향으로 질문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문학연구에서 특정 이론들을 특권화 하는데 있어 차이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이것이 역사적으로 무엇을 대변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정치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작가들은 식민지 경험을 한 국민들의 의식, 즉 지금은 해방되었으나 여전히 과거의 희생물로 남아있다는 의식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간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과정이 이들에게 부과한 흔적, 다시 말해 제국주의를 다시 쓰는 일에 관계하는데, 그것은 역사로 되돌아가 글쓰기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식민/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역사에 가한 왜곡과 손상을 정정하는 것이다. 나아가 ‘포스트식민적’ 비판을 통해 현대 사회에 작용하는 억압과 강압적 지배력에 초점을 맞춰, 침묵당하고 억압당해온 하위주체들을 탐색하는 영어권 작가들은 궁극적으로 현대사회가 직면한 ‘인간다움’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그럼으로써 그러한 글쓰기는 지금까지의 영문학을 보는 입장을 재수정할 뿐만 아니라 소통과 대화의 공간개념을 새롭게 구축해 간다.
연구자들이 이 책에서 제기하는 유럽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 타자성과 다른 세계들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은 오늘날 제국주의의 정치적, 행정적 구조가 폐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신식민주의의 형태의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식민경험을 겪은 대부분의 민족에게 제국주의는 가난과 미개발, 불안정한 문화 등 이른바 ‘제3세계’적 현실이라는 유산을 남긴 점이다. 따라서 서구가 창출해낸 비서구에 대한 오랜 편견, 그 지배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영어권 서사는 지역과 세계의 관계들이 재배치되고 있는 오늘의 세계화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다각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필자들이 서구중심 문학에 대응하는 서사에 이토록 관심을 갖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 서사들이 중심부의 글쓰기에 대한 대응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서사들이 재현하는 것은 권력과 지식에서 주변화된 과거 대영제국 식민주의를 겪은 나라들의 정치, 경제적 욕망, 문화, 역사, 심리상태이다. 이 책에서 독자는 식민주의의 대응 기억에서 가족관계, 땅, 언어, 역사억압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 채는 글읽기 전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을 표현하는 ‘주변’, ‘유색’, ‘소수’에서 침입과 폭력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담론 등의 모든 분야에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독자들이 영어권 소설이 재현하고 있는, 중심에서 배제된 주체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세계들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켰으면 하는 바램은 인문학적 능력인 역지사지의 상상력으로 타자를 공감하고 환대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책의 결실은 <전남대학교 영어권문학 연구회>의 여러 연구자들의 많은 수고 덕분이다.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통해 진지하게 토론했던 연구자들의 결과물에 힘입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이 책을 기획할 때 흔쾌히 참여해주신 왕은철, 박오복, 민태운 교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특히 왕은철 교수의 글은 올해 타계한 남아공 작가 고디머에게 애도를 표하는 글이어서 가슴 뭉클하다. 고디머가 몇 년 전 에이즈를 앓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해 세계적으로 저명한 각국의 작가들을 선정해 그들에게 자신이 뽑은 최고의 단편 하나씩을 부탁해 Telling Tales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는데, 필자도 여기에 실린 영어권 작가들의 단편들을 학부에서 다룬 적이 있어 왕은철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학생들과 교감했던 감동이 배가되는 느낌이었다. 끝으로, 4년 전 <현대 영어권 문화의 이해>를 발간할 때도 그렇듯, 이 책의 편집과 출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내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김현아 선생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2014년 11월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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