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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비평

틈새비평

(버지니아 울프 연구의 빈 곳을 찾아서)

이주리, 김부성 (지은이)
  |  
전남대학교출판부
2019-02-25
  |  
14,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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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비평

책 정보

· 제목 : 틈새비평 (버지니아 울프 연구의 빈 곳을 찾아서)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문학일반
· ISBN : 9788968496073
· 쪽수 : 256쪽

책 소개

울프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고자하는 일반 독자와 울프를 연구하려는 예비학자를 문학비평의 세계로 초대한다. 울프 문학에 가급적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학술적인 주제를 그리 무겁지 않게 다룬다. 또한, 울프와 랑시에르, 울프와 벤야민 등 울프와 다른 철학자간의 상상적 조우를 통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울프의 텍스트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지점을 탐색한다.

목차

프롤로그: 선물 / 5

1. 개인의 취향과 『밤과 낮』 / 13
타인의 취향 / 14
『밤과 낮』 / 17
죽은 시인: 힐버리 가문의 유산 / 26
취향 모방 / 39
아버지의 서재에서 훔친 그리스어 사전 / 46
랄프의 나쁜 취향과 훔치는 상상 / 54
취향의 공유 / 66

2. 버지니아 울프와 자크 랑시에르: 두 편의 에세이 읽기 / 71
울프문학과 정치비평 / 72
랑시에르의 미학적 체제 / 77
작가, 노동자, 침입자 / 85
“당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소?” / 93
생명이 있는 말 / 107

3. 파시즘의 방에서 먼 『자기만의 방』 / 109
파시즘에 반대하며 / 110
몸의 미학화: 파시즘의 취향 / 114
경직된 몸 - ‘I’ / 122
정동적(affective)인 몸과 글 / 129
양성적인 마음 / 144
『자기만의 방』의 꿈: 움직이는 글 / 155

4. 『세월』 속 껍질의 안과 밖 / 159
껍질-은신처 / 160
껍질을 보는 사람들-몽상가 / 165
엄마의 껍질-낡은 놋쇠 주전자 / 180
터지는 껍질-폭탄 / 189
침묵을 낳는 껍질: 낯선 남자의 외투와 파지터 집안 / 194
열리는 껍질 / 202
바랜 껍질에 더하는 빛 / 209

5. 『막간』, 기술복제시대의 소설 / 215
틈새 많은 소설 / 216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읽기 / 221
제의가치에서 전시가치로: 건축물, 초상화, 야외극 / 226
전망 바라보기 / 237
관객이면서도 동시에 배우인 대중 / 242
나가며 / 246

인용문헌 / 247

저자소개

이주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텍사스 A&M 영문학 박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후연구원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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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성 (지은이)    정보 더보기
텍사스 A&M 영문학 박사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대우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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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01. 개인의 취향과 『밤과 낮』

타인의 취향

취향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왜 좋아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이것이 취향이라고 믿는다. 취향의 범주는 광범위하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형태의 집에 살고 싶은지에 관한 취향이 저마다 다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에 관련된 의식주의 문제는 물론,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졸음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취향은 내가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즐긴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 취향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나’는 취향에 대한 공동체의 규범과 가치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동체가 ‘좋다’고 무언으로 합의한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그것을 향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베토벤의 음악을 향유하는 것을 고급취향으로 보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수용하여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올 겨울에는 버건디나 네이비 색상의 코트가 유행할 것이라는 패션 업계의 전망에 영향을 받아서 2019년의 ‘나’는 버건디와 네이비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음식취향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취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원래 나는 겉이 바삭할 정도로 잘 익은 스테이크를 선호하지만, 육즙이 가득하고 핏빛이 도는 스테이크를 미식가의 메뉴로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때는 ‘미디움 레어’를 주문할 가능성도 있다.
내 취향과 공동체의 취향이 일치할 때는 마음 속 갈등이 없다.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는 내 취향과 공동체의 취향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공동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면 내 취향을 감추고 싶을 수 있다. 영어영문학과 학생이었던 대학시절 일화를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문학을 처음 접하는 학부생은 주로 노튼(Norton) 출판사에서 출간된 두꺼운 앤솔로지 책을 교재로 활용했다. 중세 영문학부터 18세기 영문학까지 아우르는 앤솔로지는 주로 <영문학 개관 1> 수업에서 활용되며, 19세기 영문학부터 그 이후 시대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앤솔로지는 <영문학 개관 2> 수업에서 사용된다. 이 중 앞선 시대의 영문학을 다루는 앤솔로지 책 표지에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Elizabeth I, 1533-1603)의 전신이 그려져 있었다. 이 책의 다른 별칭은 ‘벽돌책’이다. 지금까지도 영문과 학부생은 노튼 앤솔로지를 ‘벽돌책’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은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실용적인 학생들은 책을 분할하여 얇은 교재를 갖고 다닌다. 그러나 벽돌책 자체를 애지중지하는 학부생은 책을 무참하게 절단하는 대신 손에 들고 다니는 편을 택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벽돌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고급 취향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책도 있다. 무거운 벽돌책을 들고 다니는 한편, 가방 속에 넣어놓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읽는 책도 있었다. 필자의 경우 여성잡지 취향이 숨기고 싶은 취향의 사례였다. 여성잡지도 10대부터 50-60대 이상의 연령까지 다양한 여성독자를 겨냥한 책이 매월 출간된다. 그 중 주로 은행이나 미용실에 비치해둔 여성○○라든지 주간○○ 등의 월간지는 30-40대 이상 연령의 여성독자를 위한 잡지이다. 필자는 십대 시절부터 ‘주부’ 독자를 겨냥한 잡지를 선호했다. 학부 시절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 매장 직원이 이십대 여성 독자를 위한 잡지를 가져다주면 여성○○로 바꿔달라는 부탁을 수줍게 하곤 했다. 평소 가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여성잡지에서 연예계 가십이나 특종 사건을 읽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나는 여성○○ 취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공개된 취향은 아니었다. 이처럼 나의 취향이 공동체가 취향과 다를 때 왠지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개인의 취향을 숨기고 싶을 수 있다.
취향의 드러냄과 숨김은 개인이 공동체의 규범과 시선을 의식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1919년 작 『밤과 낮』(Night and Day)은 취향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이다. 사회가 인정한 좋은 취향이란 무엇인가? 왜 나는 부모세대가 인정하는 ‘좋은’ 취향과는 다른 취향을 갖게 되는 것일까? 소위 나쁜 취향이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나쁜 취향에 끌리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싶지만 공동체의 취향을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공동체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취향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작가에게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울프의 『밤과 낮』은 취향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밤과 낮』

Taste is made of a thousand distastes.
- Paul Valery (1943)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저서 『내용없는 인간』(The Man Without Content, 1999)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의 말을 인용한다. 발레리가 남긴 말 “취향은 수 없이 다양한 혐오스러운 것들로 이루어진다”를 소개하면서 취향에 관한 논의를 풀어간다. 발레리가 그러했듯이, 아감벤은 혐오스럽거나 이상하거나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들을 ‘취향’을 형성하는 자연스러운 구성요소로 포용한다. 물론 혐오감 내지는 불쾌감과 관련된 취향은 ‘나쁜’ 취향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아감벤에 의하면 소위 나쁜 취향의 소유자는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건강한 아름다움의 표식이라고 여기는 조화, 균형, 완성미라는 정형화된 미학적 규범에서 일탈한 사람이다. 이와 같이 나쁜 취향의 소유자는 과도함으로 치닫는 유별난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Agamben 16-17). 아감벤은 다양한 종류의 불쾌감과 혐오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공존하면서 취향을 만든다고 보았던 발레리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라는 개념을 도식적으로 나누고 위계질서를 부여하는 문화적 관습과 전통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감벤은 17세기 유럽의 상류사회에서 확산되었던 취향의 위계화를 비판한다. 아감벤에 의하면 좋은 취향을 동경하고 나쁜 취향을 혐오하는 행동은 취향판단을 하는 주체의 오만한 태도를 보여줄 뿐 아니라 무지와 편협한 사고를 드러낸다. 스스로를 좋은 취향의 소유자로 인식했던 유럽(특히 프랑스)의 귀족들은 취향이 특정한 문화의 구조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좋은 취향을 향유하려는 열망과 나쁜 취향에 대한 욕망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한다. 아감벤은 이른바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동시에 나쁜 취향의 소유자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나쁜 취향에 결부된 대상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당혹감을 느끼지만, 나쁜 취향의 매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아감벤의 견해이다.
아울러 아감벤은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의 상대성에 관해 말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때 나쁜 취향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좋은 취향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나쁜 취향으로 여겨졌던 것이 훗날 좋은 취향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한다. 랭보는 1873년 출판된 시집 『지옥에서의 한 계절』(A Season in Hell)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기록한바 있다. 랭보의 목록에는 낡은 여관의 간판, 동화책, 할머니가 읽던 오래된 소설, 구식 오페라 등 잡다한 것들이 적혀있다.
랭보의 책이 처음 출판된 당시, 19세기 프랑스 독자들은 랭보의 취향을 독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평가는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랭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고급문화를 향유하던 고상한 프랑스인의 좋은 취향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19세기 프랑스 독자들은 수준 높은 예술가의 ‘표준’ 취향에서 벗어난 랭보의 취향을 나쁜 취향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 풍토가 달라지면서 랭보가 향유했던 ‘나쁜’ 취향은 ‘좋은’ 취향으로 변모되었다. 19세기의 고상한 프랑스인에게 외면당한 랭보의 ‘나쁜’ 취향은 20세기의 교양이 있는 지성인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좋은’ 취향이 된 것이다(Agamben 22). 아감벤은 랭보의 사례를 통해 취향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울프가 첫 장편 『출항』(The Voyage Out, 1915)에 이어 출간한 두 번째 장편 『밤과 낮』에는 19세기의 상류층 영국문인들이나 지식인이라면 부적절하다고 여길법한 ‘나쁜’ 취향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밤과 낮』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좋은 취향이라고 합의한 가치를 의심하는 두 명의 젊은 인물이 등장한다. 울프가 설정한 인물은 공동체가 동경하는 취향을 무조건 따르는 대신 스스로가 좋다고 느끼는 취향을 즐기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것을 행하는 즐거움의 가치를 알아간다. 두 인물이 공동체의 취향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중 인물은 기존의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다. 이들은 좋은 취향에 대한 규범을 여전히 의식하며 생활하고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존중한다. 그러면서도 두 젊은이는 자신의 ‘나쁜’ 취향을 향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밤과 낮』의 주인공이 취향과 관련하여 겪게 되는 갈등은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작가로서 발돋움하려는 울프 본인의 상태를 반영한다. 『밤과 낮』에서 나쁜 취향을 향유하는 인물들은 소설가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의 잠재력을 지닌 작가적 인물이다. 울프는 어떤 소설을 써야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단계에서 『밤과 낮』을 집필했고,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적인 인물은 글쓰기에 대한 울프의 견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밤과 낮』이 출판된 1919년, 울프는 글쓰기에 관한 대표적인 에세이 「모던 픽션」(“Modern Fiction,” 1919)을 발표한 바 있다. 「모던 픽션」에도 취향에 관한 작가의 견해가 암시되어 있다. 젊은 작가 울프는 「모던 픽션」을 통해 만일 작가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라면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써야한다고 말한다(106). 설령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공동체의 취향, 즉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글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모던 픽션」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밤과 낮』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작가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다.
울프의 소설 중 가장 긴 『밤과 낮』은 19세기에 유행한 리얼리즘 소설의 결혼 플롯과 상당히 닮아있고 현실에 대한 세밀한 묘사방식을 보여준다. 『밤과 낮』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리얼리즘 소설의 서사방식과 상당히 닮아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밤과 낮』은 울프의 대표적인 실험소설인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1925), 『등대로』(To the Lighthouse, 1927), 『파도』(The Waves, 1931) 등에 비해 영문학자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울프와 동시대 작가들도 『밤과 낮』을 호평하지 않았다. 소설이 출판된 이후, 20세기를 대표할만한 유명한 영국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E. M.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 1879-1970)는 『밤과 낮』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한바 있다(A Writer’s Diary, 20). 뉴질랜드 출신 여성작가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1888-1923)는 『밤과 낮』이 19세기 초반의 여성작가 제인 오스틴 소설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맨스필드에 의하면 『밤과 낮』은 20세기에 사라졌다고 생각되었던 소설의 귀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Majumadar and McLaurin 80).
내러티브의 형식이 19세기 성장소설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밤과 낮』에는 오스틴 소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남녀 주인공의 톡톡 튀는 로맨스가 없다. 긴장감이 도는 연애소설 플롯이 느슨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점 때문에 『밤과 낮』은 19세기 영국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 목사의 딸인 19세기 영국작가 브론테(Bronte) 자매의 소설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 1847)나 『제인 에어』(Jane Eyre, 1847) 등이 보여주는 열정적인 사랑의 장면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주인공 에드워드 로체스터(Edward Rochester)는 여러모로 유혹적이다. 돈이 많고 잘 생겼으며 여성과 ‘밀당’(연애에서 밀고 당기는 행동)을 즐기면서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밤과 낮』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상대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이 없어 보인다. 『밤과 낮』은 형식적으로 19세기 소설을 닮아있지만 내용상으로는 19세기 유행했던 로맨스의 장점을 결여하고 있는 셈이다.
『밤과 낮』은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벗기 어렵다. 19세기 영국소설의 맥을 잇는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고,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소설로 보기도 힘들다. 울프의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볼 때 『밤과 낮』에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특징짓는 의식의 흐름이나 자유간접화법 등의 미학기법이 표현되지 않는다. 사실 이 소설이 출간되기 전부터 울프는 영국 모더니즘 문학의 물꼬를 여는 단편을 선보인 적이 있다. 예컨대 1917년 작 「벽 위에 난 자국」(“The Mark on the Wall”)은 의식의 흐름기법의 절정을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벽 위에 난 자국」은 특정한 플롯이 없이 일인칭 화자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면서 벽 위에 난 자국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적하는 단편으로 모더니즘 문학의 훌륭한 사례로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밤과 낮』이 출판된 해 1919년이 울프가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시도한 이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독자는 울프가 왜 전통적인 소설을 썼는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울프는 「벽 위에 난 자국」을 통해 시도했던 실험적인 형식의 글쓰기를 멈춘 것일까?
만일 울프가 새로운 글쓰기를 위한 실험을 멈춘 것이라면 오늘날의 독자는 울프를 영국 모더니즘 작가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요약한다면, 『밤과 낮』은 실험적인 형식의 문학에 대한 꿈과 이상을 전통적인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밤과 낮』은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의 형식과 서술기법에 빚지고 있는바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 작품의 내용은 18-19세기 영국 기존문학의 전통을 벗어나고자하는 열망이 주를 이룬다. 『밤과 낮』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20세기 초반 문학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젊은’ 예술가를 닮아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넘어 20세기로 접어든 역사적 배경에서 울프를 비롯한 20세기 초반 영국 모더니즘 작가들은 젊은 예술가 유형의 인물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는 젊은 예술가를 창조한 울프와 동시대 작가이다. 조이스의 1916년 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과 1922년 작 『율리시스』(Ulysses)에 모두 등장하는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는 작가인 조이스 본인을 반영하는 예술가적 인물이다.
울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대표적인 젊은 예술가는 단연코 여성화가인 릴리 브리스코우(Lily Briscoe)이다. 1927년 출판된 『등대로』에 등장하는 예술가 릴리는 울프가 지녔던 예술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울프는 릴리의 시선을 빌려서 취향과 예술에 관한 관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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