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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

(양진楊震과 청렴정직 화신化身들)

김지수 (지은이)
  |  
마로니에
2020-02-12
  |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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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

책 정보

· 제목 : 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 (양진楊震과 청렴정직 화신化身들)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법학계열 > 법학일반
· ISBN : 9788968496882
· 쪽수 : 616쪽

책 소개

후한 때 4代에 걸친 유명한 청백리 양진의 명언 “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로 ‘사지’를 중심으로, 한부터 청까지 2천년간 청렴강직 화신들을 역사기록에 충실하게 생생히 조명한다. 주연30인 조연1백인 남짓 방대한 장편 역사대하드라마다.

목차

추천사 / 차웅환
머리말 / 11

한漢 신도가申屠嘉 / 16
한漢 장석지張釋之 / 21
한漢 급암汲黯 / 33
한漢 공수龔遂 / 74
한漢 황패黃霸 / 84
한漢 소광疏廣 소수疏受 / 96
후한後漢 신도강申屠剛 / 103
후한後漢 동선董宣 / 110
후한後漢 류총劉寵 / 116
사지四知 명공明公 양진楊震과 그 후손들 / 122
전진前秦 왕맹王猛 / 203
동진東晉 오은지吳隱之 / 278
당唐 서유공徐有功 / 286
당唐 적인걸狄仁傑 / 297
송宋 악비岳飛 / 338
원元 렴희헌廉希憲 / 445
명明 전당錢唐 왕박王朴 섭백거葉伯巨 / 474
명明 주침周忱과 황종況鍾 / 489
명明 우겸于謙 / 511
명明 해서海瑞 / 531
청淸 우성룡于成龍 / 556
청淸 탕빈湯斌 륙롱기陸隴其 장백행張伯行 / 576

꼬리말 / 599
찾아보기 / 608

저자소개

김지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북 부안 곰소 출생. 변산중, 전주고, 서울대법대(중국문학 부전공), 서울대학원 법학석사, 국립대만대학 법률학연구소 3년 遊學, 서울대학원 법학박사, 한국학술진흥재단 박사후 연수생. 2001년부터 전남대 법대 및 법전원에 재직 중. 전공 논문 수십 편과 공저 몇 권이 있으며, 번역서로, 「불가록(不可錄)」, 「운명을 뛰어 넘는 길(了凡四訓)」, 「화두 놓고 염불하세(印光大師嘉言錄)」, 「절옥귀감(折獄龜鑑)」, 「의심 끊고 염불하세」,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遺敎經」,「참나 찾아 불성광명 밝히는 법-고행두타 묘림승 구도기」, 「중국의 법조윤리 규범집」이 있고, 저서로,「지혜의 법과 생명법학」, 「四知-하늘이 알고 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안다」, 「법 없이도 잘사는 법」, 「제갈량 평전」, 「포청천과 청렴정직 문화」, 「공자가 들려주는 관계의 미학」, 「채식명상 20년」, 「中國의 婚姻法과 繼承法」, 「傳統 中國法의 精神」, 「傳統法과 光州反正」, 「유불선 인생관-道 닦고 德 쌓자」, 「어떻게 살 것인가?-人生指南」 등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천인대동전당(天人大同典堂)” https://blog.naver.com/lotusbud44 다음 블로그: “보적념불당(寶積念佛堂)” https://blog.daum.net/lotusbud44/ 유튜브: 明鏡止水 寶積. https://www.youtube.com/channel/UCJLLMrXSZPfcAni3oY4P4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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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漢 신도가申屠嘉
총신寵臣을 호통 쳐 황제가 대신 사과한 승상

신도가申屠嘉( ???전 155)는 량(梁: 현재 하남성 상구商丘) 사람으로, ‘신도’가 복성이고 이름이 ‘가’이다. 일찍이 힘센 재관材官으로 류방을 따라 쇠뇌를 발로 밟아 항적을 공격해서 한 부대를 통솔하는 부대장이 되었고, 나중에 경포?布를 공격해 그 공훈으로 도위都尉가 되었다.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문제 원년(전 179)에 5백호 식읍을 특별 하사 받고 관내후가 되었으며, 16년(전 164)에 어사대부가 되었다.
문제 후원後元 2년(전 162) 8월, 장창이 승상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황후 아우인 두광국竇廣?이 현명하고 덕행을 갖추어 승상으로 임명하려다가, “천하 인심이 사사로운 인척관계를 의심”할까 저어해 한참 망설였다. 이에 고조 때 대신 가운데 물색하다가 마땅한 인재가 없다며, 마침내 어사대부 신도가를 승상으로 임명했다.
신도가는 청렴 정직하여 사적인 만남이나 알현을 전혀 받지 않았다.
당시 태중대부 등통鄧通이 문제의 총애를 받아 특별포상으로 수만금을 하사받았다. 문제가 곧잘 등통 집에 가서 술잔치를 벌일 정도로 총애가 지극하자, 등통은 조정에서도 황제 옆에 앉아 무례하게 태만하곤 했다. 신도가가 주청할 사안을 마친 다음 문제한테 그 자리서 아뢰었다.
“폐하께서 특정 신하를 총애하여 부귀를 하사하심은 좋으나, 조정에 예법은 정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문제는 “이 문제는 내가 잘 알아서 훈계하고 처리할 테니, 군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라고 대꾸했다. 조회가 파하고 승상부에 돌아오자, 신도가는 곧바로 격문을 써서 등통을 승상부로 오라고 불렀다. 등통이 오지 않자 목을 치려고 했다. 등통이 공포에 떨며 황제한테 간청하자, 문제는 “너는 일단 가라. 내가 바로 사람을 보내 너를 부르겠다.”고 위로했다. 등통이 승상부에 가서 관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려 사죄하자, 신도가는 태연자약하니 앉아 답례도 하지 않고 크게 꾸짖었다.
“무릇 이 조정은 고황제의 조정이다. 통은 소신으로 전상을 희롱해 대불경죄를 저질렀으니 마땅히 참해야 한다. 담당관은 지금 당장 참형을 시행하라!”
등통이 황급히 머리를 어찌나 찧어댔던지, 머리가 온통 유혈이 낭자했으나 풀려날 기미가 없었다. 황제는 승상이 이미 등통을 곤욕스럽게 책망했으리라 짐작하고, 이내 부절을 지닌 사절을 보내 등통을 부르며 승상한테 대신 사과했다.
“이는 내가 희롱하는 신하니, 군은 풀어주시오.”
등통이 돌아와 문제한테 울면서 하소연했다.
“승상이 신하를 거의 다 죽였습니다.”
신도가가 승상에 재직한 지 5년이 되어(전 157) 문제가 서거하고 경제가 즉위했다. 경제 2년(전 155), 조착晁?이 내사?史로 황제 총애를 믿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법령변경과 제후약화 등 현안 의론에 승상 의견을 무시하였다. 조착은 내사로 동문으로 출입하는데, 불편하다고 새로 남문을 하나 더 낸다며 태상황 종묘 담장을 뚫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신도가는 조착을 주륙해야 한다는 글을 써 올렸다. 누군가 이 말을 조착한테 전하자, 조착은 두려워 밤중에 궁궐에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고 하소연했다. 조회 때 신도가가 내사 주착을 주륙해야 한다고 주청하자, 경제는 이렇게 해명했다.
“주착이 뚫은 곳은 진짜 종묘 담장이 아니고 외곽 담장으로, 용관(冗官: 散官)이 거처하는 곳이오. 또 내가 시킨 일이라, 조착은 죄가 없소.”
조회가 끝난 뒤 신도가는 장사長史한테 탄식하며 말했다.
“내 먼저 주착을 참하지 않고 주청하느라 주착한테 매도(농락) 당한 게 통탄스럽다!”
그렇게 회한을 이기지 못하고 귀가해 피를 토하고 죽었다. 시호는 절후節侯다.
신도가 사후에 뒤를 이은 승상들은 그저 청렴근신으로 자리만 지키고 후세에 공명 드리울 능력을 발휘한 자가 없었다. 마치 현대 대한민국 국무총리처럼 얼굴마담으로 전락했나 보다. 한서를 기록한 사관은 신도가가 강직하고 굳세게 절개를 지켰으나, 특별한 술수나 학문이 없어서 소하、조참、진평 등과 견줄 수는 없다고 평론한다.
신도가가 청렴해 승상으로서 사적인 만남이나 알현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일화가 사기 및 한서 원앙袁? 전에 전한다. 원앙도 자주 직간하여 조정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지방 관직을 두루 순회했는데, 롱서도위와 제상齊相、오상吳相을 거쳐 다시 조정으로 귀환하는 길에 승상 신도가를 만났다. 원앙이 수레에서 내려 정중히 배알하자, 승상은 그냥 마차 위에서 답례만 했다. 원앙이 귀가해 부하 관리한테 몹시 민망하고 자괴심이 들어, 이내 승상 집에 찾아가 알현을 청했다. 승상이 한참 만에 나와 만나주자, 원앙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원컨대 잠시 틈을 내주시길 청합니다.”
승상이 말했다.
“가사 군께서 말씀하실 게 공적인 일이면, 공부에 가서 담당관(長史?)과 의론해 두시면, 제가 알아서 주청하겠습니다. 허나 만약 사적인 일이라면, 저는 사적인 말은 아예 듣지 않습니다.”
이에 원앙이 무릎을 꿇은 채로 여쭈었다.
“군께서 승상이신데,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진평陳平이나 강후絳侯와 비교해 어떠하십니까?”
승상이 답했다.
“그야 제가 그분들만 못하지요.”
그러자 원앙이 말했다.
“좋습니다. 군께서 정말 스스로 그들만 못하다고 인정하십니다. 대저 진평과 강후는 고조를 보필해 천하를 평정하고, 장상이 되어 려태후 족속들을 주륙해 류씨 종실을 보존했습니다. 군께서는 힘센 재관材官으로 발로 쇠뇌를 발사해 부대장이 되고, 공적을 쌓아 회양태수에 이르렀으니, 기묘한 계책으로 성을 공격하거나 야전에 승리한 혁혁한 공훈은 아닙니다. 또 폐하(문제)께서 대왕代王에서 와서 즉위한 이래, 매번 조회 때마다 랑관?官이 상소문을 올리면, 수레를 멈추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쓸 만한 말이 아니면 방치하고, 쓸 만한 말은 채택해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천하에 현명한 사대부를 불러들이고자 하심입니다. 황제께서는 날마다 듣지 못했던 걸 새로 들으시고, 알지 못하던 걸 새로 밝히 아시어, 날로 거룩한 지혜를 더해 가시는데, 군께서는 지금 스스로 천하의 입을 재갈 물려 닫게 하고 날로 어리석음을 더해 가십니다. 무릇 거룩한 군주께서는 어리석은 승상을 책망하시리니, 군께서 머지않아 화를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승상이 얼른 일어나 두 번 절하며 말했다.
“가嘉가 비천한 야인이라 잘 몰랐는데, 다행히 장군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안으로 들게 하여 마주 앉아 최상빈객(上客)으로 모시고 대담했다.
원앙의 뜻인즉, 자신의 청렴결백만 지킨답시고, 승상으로서 본분직책을 스스로 제한해 가두는 어리석음과 폐해는, 승상 관직 설치의 본래 목적과 기능을 외면해 유명무실한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거라는 우려도 담고 있다. 속된 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이다. 사람이 만나다 보면 온갖 말이 나오고, 예의를 빙자한 선물이 오가기 마련인데, 거기에 또 갖가지 인정ㆍ사정이 얽히다 보면, 정치적 반대파의 비판공격에 틈새와 실마리ㆍ빌미를 제공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실권이나 능력이 없는 자는 자칫 직무 범위를 벗어나 사알私謁 청탁 및 수뢰의 강력한 올무??법망에 걸려들기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역사상 수많은 현인군자들이 그런 함정과 덫에 걸려 희생되었고, 현대에도 정치적 숙청과 사회적 매장에 재물과 남녀관계는 치명적 미끼가 되지 않은가?
한편, 신도가의 7대손인 신도강申屠剛도 후한 초 광무제 때 청렴강직으로 유명했는데, 참고로 뒤에 따로 소개한다.


한漢 장석지張釋之
법은 천자가 천하와 함께 지키는 공기公器
법관은 천하에 공평한 저울!

장석지張釋之는 남양南陽 자양堵陽 사람으로, 자字가 계季다. 형 중仲과 동거했는데, 돈을 납부하여 기랑??이 되어 문제를 섬겼다. 허나 십년간 특별히 선임되지 못해,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명망도 없었다. 이에 석지는 혼자 장탄식했다.
“오래 벼슬한답시고 형님 재산만 축내고 별로 성공하지도 못하네!”
당시 중랑장 원앙袁?이 석지가 현명한 줄 알아주었는데, 그가 그만두고 떠나려 하자 몹시 애석히 여겨, 문제한테 석지를 알자?者 후보로 지명해주도록 주청했다. 이에 석지는 조회가 끝난 뒤 황제 앞에서 시무대책을 개진하게 되었다. 문제가 너무 고준담론을 펼치지 말고 비근하게 지금 시행할 만한 의론을 말하라고 주문하자, 석지는 진한 교체기 일을 거론하며, 진이 망한 까닭과 한이 흥성한 원인을 아뢰었다. 담론을 경청한 문제가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석지를 알자복야?者?射에 배수했다.
한번은 문제 행차를 따라 동물원 호랑이 우리(虎圈)에 올라갔다. 문제가 상림원上林 책임자(尉)한테 금수명부에 대해 물었다. 십여 질문을 해도 책임자는 좌우를 돌아볼 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동물원(虎圈) 실무담당자(?夫)가 곁에서 책임자(尉)를 대신해 문제가 질문한 금수명부를 아주 상세히 대답했다. 마치 그 말솜씨가 얼마나 유창하고 문답응대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변재능력을 과시하려는 듯했다. 이에 문제가 감탄하며 말했다.
“관리는 이와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책임자(尉)는 얼마나 무능하고 무뢰無賴한가?”
여기서 ‘무뢰’하다는 말은 직책 감당능력이 없어 믿을 만하지 못함을 뜻한다. 하여튼 문제는 석지를 불러, 그 실무담당자(?夫)를 황제 정원에 최고관리자인 상림령上林令에 임명하라고 조서를 내렸다. 이에 석지가 앞에 나가 여쭈었다.
“폐하께서는 강후?侯 주발周勃을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훌륭한 분이지!”
“동양후東陽侯 장상張相은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훌륭한 분이지!”
이에 석지가 아뢰었다.
“무릇 강후와 동양후를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신다면, 이 두 분은 일찍이 일을 말함에 말이 입 밖에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더듬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이 실무담당자(?夫)처럼 재잘재잘 유창한 말솜씨로 민첩하게 떠벌리는 걸 본받겠습니까? 또 진나라가 칼과 붓으로 파고 새기는 옥리(刀?吏)들을 임명하다보니,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재빨리 가혹하게 감찰하는 걸 높이 숭상해서, 그 폐해로 측은지심의 내실은 전혀 없이 그저 법령과 문장만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잘못도 들을 수가 없었고, 2세에 이르러 쇠망하여 천하가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실무담당자 구술변재만 듣고 특별히 발탁해 임명하신다면, 신하는 장차 천하가 모두 이에 풍미하여 내실은 없이 구술변재만 앞 다투어 익히고 뽐낼까 저어합니다. 또 아래에서 위로 번져 변화하기는 실로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더 신속히 퍼지는 법인지라, 인재등용과 행동거지는 삼가 신중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문제는 훌륭하다고 감탄하고, 실무담당자 특별 임명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귀환 길에, 문제는 마차에 올라타면서 특별히 석지를 불러 동승하게 하고, 서서히 행차하면서 석지한테 진나라 폐해를 물었다. 이에 석지가 진솔하고 질박하게 상세히 답변했다. 환궁하자 문제는 곧 석지를 공거(차)령公車令에 배수했다.
한참 지나, 태자(나중에 경제景帝)가 량왕梁王과 함께 마차를 타고 조정에 들어오면서 사마문司馬門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이에 석지가 얼른 쫓아가, 태자와 량왕이 전문殿門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공문公門에서 내리지 않은 불경죄로 탄핵하여 황제께 주청했다. 박태후薄太后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자, 문제는 얼른 면류관을 벗고 “아들 교육에 삼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사죄했다. 이에 박태후가 사절을 보내 태자와 량왕의 죄를 사면하는 조서를 받들어 비로소 들어오게 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제는 석지를 더욱 기특히 여겨 중대부에 배수했다.
다시 얼마간 지나 중랑장이 되어, 황제 행차를 시종해 패릉?陵에 이르렀다. 황제가 언덕에 올라 바깥 강물을 끼고 멀리 관망했다. 당시 신부인?夫人이 함께 따라갔는데, 문제는 신부인한테 손으로 신풍新?으로 뻗은 길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저 길이 한단邯鄲으로 가는 길이오.”
그리고 신부인한테 거문고를 타게 한 뒤 스스로 거문고 가락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뜻이 매우 처량히 구슬프고 비애를 머금었다. 문제가 좌우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호라! 이 북산에 돌로 석곽石槨을 만들어 모시 올을 잘게 찢어 그 틈새를 메우고 옻칠까지 단단히 해 밀봉한다면, 그 누가 파헤쳐 열 수 있겠는가?!”
좌우에서 모두 “훌륭하십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석지가 앞으로 나서서 아뢰었다.
“가사 능묘 안에 탐욕을 부릴 만한 귀중한 금옥보배가 들어간다면, 비록 남산만큼 거대하고 확고히 주조해 조성할지라도 오히려 파헤쳐 열 틈은 넓을 것이요; 만약 그 안에 욕심낼 만한 금옥보배가 없다면, 비록 석곽을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 무슨 도굴을 염려해 근심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에 문제가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했는데, 그 뒤 곧 석지를 정위廷尉에 배수했다. 문제 3년(전 177, 갑자) 8월이었다.
얼마 후 문제가 밖으로 행차해 위교渭橋를 막 건너는데, 한 사람이 다리 아래서 바깥으로 걸어 나와 황제 수레(乘?)를 끄는 말이 깜짝 놀라 흠칫했다. 이에 기마 호위병을 시켜 그를 체포해 정위한테 이송했다. 석지가 그 사람을 신문하자,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장안 현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길을 가다가, 어가 앞에서 교통 정리하는 사람의 외침소리를 듣고 얼른 다리 아래로 내려가 몸을 숨겼습니다. 한참 오래 되어 이제 어가행차가 이미 지났거니 여기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 어가와 기마병사가 보이길래 얼른 달아난 것입니다.”
이에 석지가 죄형을 의론해 아뢰었다.
“이 사람은 어가 행차 교통정리 위반(犯?)으로 마땅히 벌금에 처해야 합니다.”
문제가 노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직접 내 말을 크게 놀라게 했소. 다행히 말이 온화하고 유순해서 망정이었지, 가령 다른 말 같았으면 크게 요동을 쳤을 테니, 정말 나를 크게 다치게 하지 않았겠소? 그런데 정위가 고작 벌금 처분을 판결하다니?!”
이에 석지가 차분히 의론해 아뢰었다.
“법이란 천자가 천하와 함께 약속해 지키는 공공의 그릇입니다. 지금 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거늘, 이보다 가중해 처벌한다면, 앞으로 법이 인민들한테 불신을 받게 됩니다. 또 예컨대 당시에 황제께서 사신을 시켜 현장에서 즉시 그를 주륙했더라면 그만이지만, 지금 이미 정위한테 보내셨습니다. 정위는 천하에 공평한 저울(天下之平)입니다. 한번 저울을 기울이면, 천하에 법적용이 그에 따라 죄다 경중을 달리해야 할 터인데, 인민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손발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폐하께서 깊이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문제가 한참 사유하더니, “그래, 정위는 마땅히 이래야겠소!”라고 칭찬하며, 노여움을 풀었다.
그 뒤 어떤 사람이 고조 종묘 제단에 옥환玉環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문제가 노하여 정위한테 보내 다스리도록 했다. 이 사안을 심리한 석지는 종묘에 의복이나 기물을 훔친 자는 마땅히 기시형에 처한다는 법률로 의단하여 주청했다. 문제는 크게 진노해 말했다.
“이토록 무도한 사람이 선제 종묘 기물을 훔치다니! 내가 정위한테 보낸 의도는, 바로 그를 멸족시키라는 것이오! 군이 고작 이 법으로 처단하겠다고 주청하다니, 이는 내가 종묘를 공경히 받들어 모시는 효성이 결코 아니오!”
이에 석지가 관을 벗고 머리를 땅에 조아려 사죄하며 말했다.
“법은 이와 같은 판결이면 충분합니다. 또한 같은 사형 범죄라도, 거역의 정도가 달라 얼마간 차등의 기준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종묘기물 훔친 죄를 멸족 형으로 처단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가령 어느 어리석은 백성이 고조 장릉長陵에 흙을 움켜쥐어 파헤친다면, 폐하께선 또 어떤 형벌로 가중처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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