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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170449
· 쪽수 : 243쪽
· 출판일 : 2019-03-11
책 소개
목차
제1부 지난날을 돌아보며
1. 민족의 눈물 13
2. 주먹밥을 먹으며 흘린 눈물 16
3. 부산 초량역의 빈대떡 18
4. 돈 주고 한강을 건너다 20
5. 기독교를 전파한 불량기佛?機나라 22
6. 신설동 학교 24
7. 절망을 이겨내다 26
8. 나와 안경 28
9. 삼각지 정훈학교 30
10. 중국 근세사를 통한 안보교육 32
11. 군악대 35
12. 영원한 적은 없다 37
13. 귀인을 만남 39
14. 성지순례 42
15. 휴머니즘의 발상지 46
17. 오타와 강을 따라 48
18. 톨스토이 생가를 가다 51
19. 햄버거 54
20. 중국인의 꾀 56
제2부 평생 한 번 쓴 편지
1. 나의 아버지 61
2. 어머님께 편지를 64
3. 평생 단 한 번 어머니께 올린 편지 68
4. 어머니와 대화 71
5. 새옹지마 74
6. 평창과의 인연 76
제3부 남북대화의 현장 이야기
1. 남북대화업무에 참여하며 81
2. 가족 찾기 회담을 제의하다 84
3. 남북회담의 첫 회담 첫 발언 87
4. 평양에서 열린 첫 회담 91
5.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난 사고 96
6. 붉은 머플러 99
7.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회담 102
8. 합의서 만들기 104
9. 환경조건론 107
10. 판문점 상설 회담연락사무소 110
11. 1971년도의 비밀접촉 114
12. 비밀리에 다닌 남북대표 117
13. 모란봉 경기장 행사 121
14. 북경회담 124
15. 민간 차원 남북창구 마련 128
16. 백두산 천지 131
17. 금강산 상봉행사 134
18. 금강산 촛불만찬 138
19. 금강산 면회소 건설 141
20. 화상 상봉이 실현되다 143
21. 아리랑 공연 145
22. 한반도 핵 문제 147
23. 54년 만에 가 본 흥남 150
24. 33년 남북적십자회담 현장을 떠나며 154
25. 우리는 하나다 157
25. 남북대화의 간추린 시대별 흐름 159
27. 남북 간 해결해야 할 인도적 문제 177
28. 통일 문제에 대한 소고小考 181
제4부 인도주의 일꾼으로
1. 인도주의 일꾼의 보람 187
2. 사무총장 취임 190
3. 적십자와 5.18 민주화 운동 193
4. 보트 피플 197
5. 사할린 동포의 사연 199
6. 태풍의 눈 203
제5부 학생들과 지내며
1. 한서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지내며 207
2. 외국 제자들이 보내온 글 209
저자소개
책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흥남 부두에 왔으나 이미 주변은 중공군에 포위되었고 앞은 바다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쪽배라도 구하려고 수소문했으나 이미 떠날 수 있는 배는 다 떠났다고 했다. 수많은 피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며 고향의 한 교회에서 그 곳에 함께 온 분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져 당초 계획이 없었던 미군 배편이 마련되어 승선의 기회가 주어졌다.
부두는 몇 척 안 되는 배를 타기 위해 밀치고, 넘어지고 아이들을 잃어버려 찾는 이들로 말할 수 없는 혼란의 현장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놓치지 않도록 허리띠에 끈을 묶어 연결하여 이리저리 승선할 기회를 엿보며 다녔다.
나는 11살에 어머니와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었다. 북에서 피난할 때 아버지는 왕진가방 하나만 들고 나왔으나 막일을 해보시기 않으셨던 분이라 당장 하실 일을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 내가 용기를 내서 같이 피난 나온 형들을 따라 생업의 현장에서 잠깐 일했다. 좀 힘들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미군 군화를 닦는 일로 웬 신발이 그리도 큰지 광을 내려면 온 힘을 다해야 했고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곤 했었다. 주인 아저씨가 억센 부산 사투리로 뭐라고 나에게 지시해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야단도 맞곤 했던 시절도 있었다.
2001년 내가 총재특보로 다시 이산가족 문제를 맡게 되어 금강산 상봉행사에 다니게 되었는데 2002년 9월 행사에 북의 백문길이 나에게 이번에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땅에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있어 가족의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수시로 찾아오는 분들과 나와 친분이 있어 비공식으로 북의 가족사항을 알 수 없겠는가라고 부탁해 오는 분들이 많은데 그 많은 분들이 남북 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공식으로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기관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므로 공적 일을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는 사적인 일을 앞세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어머님이 계신 장소로 가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