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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029366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1-12-01
책 소개
목차
멍석 위의 만찬•007
모래성•033
살아야 하는 이유•061
언니가 사라졌다•089
엄마 아닌 엄마가 됐다•117
오빠가 운다•145
누굴 믿고 살 수 있을까?•173
영원히 향기로운 꽃•201
생애 봄날•229
출간후기•258
저자소개
책속에서
살갗을 스치는 아침 바람에 온기가 스며들고 뒤뜰엔 언제부터인지 개나리가 수줍게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 예쁜 노랑이를 시샘이라도 하듯이 언덕 위에 벚꽃 나무는 봄의 여왕이라고 함박눈의 영혼이라도 입은 듯 은빛 같은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따라 흩트려 뿌려 놓는다. 한 꺼풀 벗어낸 겨울옷 덕분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춤을 추듯이 나풀거리며 인희는 언니를 따라 밭두렁, 논두렁에서 냉이를 캐고 잔풀들을 헤집으며 쑥을 뜯어 한 움 쿰씩 바구니에 담는다. 들녘 가까이에 진달래 꽃망울이 하나둘씩 터져 막내 연희의 볼처럼 빨갛게 들인 물로 들녘과 산자락에 봄의 향기를 수놓아 함박웃음을 지으며 봄맞이하고 있다. 언니는 진달래 꽃잎을 따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인희의 입에도 넣어준다. 이 맛이 봄의 맛일까? 씹어보기도 전에 사르르 녹아 목젖을 넘어갔다. 겨우내 땅속에서 몸을 감추었던 달래도 수북이 캐어 담아 바구니에 봄을 가득 실었다. 저녁에는 봄 향기의 만찬이 차려진 축제의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언니가 부르는 콧노래를 따라 흥얼대며 한참을 걸었다. 신작로 가까이에 또래의 꼬맹이들이 모여서 물이 맑아 개울 바닥이 거울처럼 들여다보이는 개울 물에 모두 엎드려 돌을 들어 올리며 가재를 잡고 다슬기를 주워서 철사 줄로 엮은 주전자에 부지런히 주워 담고 있다. 개울을 따라가며 잡아도 잡아도 한없이 많았던 청정지역 1급수의 먹거리는 늘 풍성함을 채워줬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동네 오빠, 언니들이 알알이 맺혀 익은 밀밭의 밀을 듬뿍듬뿍 꺾어서 외진 밭두렁에 불을 지펴 밀자루를 뒤집어가며 구워 익은 밀알을 두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껍질을 불어내고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어 먹었던 쫀득거리며 고소한 맛은 다른 무엇에 비할 데가 없었다. 언니가 오래 씹으면 껌이 된다고 해서 껌을 만들어 보려고 씹다가 그냥 꿀떡 삼키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까르르, 까르르.” 웃어 젖혔다. 개구쟁이 오빠들은 밀 서리도 모자랐던지 개구리를 잡아 와 불에 구워 껍질을 벗겨내고 오동통한 다리 살을 건네주곤 했다. 무서움도 징그럽다는 생각도 없이 언니와 오빠가 먹으라고 주면 담쏙담쏙 잘도 받아먹었다. 보양식이란 보양식은 황홀했던 유년 시절에 평생을 건강하게 살도록 몸속 곳곳에 저장해 놓아서 인희가 살아온 오늘까지도 건강을 잃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몸이 증거를 말해 준다.
어제는 ‘봄날이었지!’ 했는데 짧디짧은 봄바람은 다녀가신 지 한참이 지난 듯, 어느새 여름철의 대표 밥상, 가족 반상회 모임 장소인 멍석이 마당 한쪽으로 두 개나 펼쳐져 있었다. 멍석 위에 가재와 다슬기를 잔뜩 잡아 온 덕분에 엄마가 삶아낸 다슬기 알맹이를 대바늘로 찍어 올려 꺼내느라 할머니, 엄마, 언니, 오빠들이 둘러앉아 분주히 손을 움직인다. 대바늘에 길게 가득 꼬인 다슬기를 한입 가득 넣어 먹었던 오돌거리며 씁쓰레한 감동적인 맛은 그날 그때 느꼈을 뿐이었고, 그 그리운 맛을 느껴보려고 수십 년을 두리번거리며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여러 명의 손이 움직이니 다슬기는 금방 다 까 올려졌다. 가재는 삶아진 채로 두꺼운 껍질을 떼어 내고 통째로 고소함을 전해 받으며 바삭바삭 씹어 먹었고 까놓은 다슬기는 된장을 풀어 넣고 아욱을 비벼 넣어 진한 다슬기 된장 아욱 국물을 맛볼 수 있었다. 여름 한날의 멍석 위의 저녁 밥상은 자연이 선물한 천연 재료로 3대 가족의 입맛을 북돋아 주었고 대가족의 화목을 이루어주며 든든하게 배를 채워 주었다. 해가 긴 여름이어서 저녁을 먹고도 탐스러운 옥수수를 바구니에 가득히 삶아 내왔다. 멍석 위에 누워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따 먹으며 어둑어둑해 오는 하늘에서 하나둘씩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별을 세어본다. 어여쁜 여름밤이 살며시 다가오려 고갯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