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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671294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3-11-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긴 제주
[할머니 소개] 1934년생 상군 해녀
[손녀딸 소개] 1993년생 야무진 딸내미
1부 우리 살았던 것은 말해도 몰라_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긴 제주 생활사
할머니, 본인 소개해 주세요
스스로 만들어 입었어
고구마만 고구마만 먹었지
그때는 ‘세면’이 어디 있니
물 길어다가 먹고
해녀질 할 줄 모르면 시집도 못 갔지
돈 나올 곳이 없었지
돼지 잡는 날, 가문잔치
가마가 좋은 거지
연애하는 사람들 거의 없었어
나 혼자 아기 받았어
몸조리도 안 하고
4·3 때도 너희는 모른다
비행기 팡팡한 그날
딱 100살까지만 삽시다
2부 나의 역사는 지워지지가 않는다_제주 위에 그려진 할머니의 역사
60년 물질 인생
가족들 먹여 살린 효자
아이 데리고 육지 물질
고무옷도 없이 물질했지
바다는 요술
해녀 할머니의 물질 이야기
쉴 겨를이 있었겠니
할아버지 정말 곱게 돌아가셨어
기-승-전-할아버지 원망
할아버지 데리고 온 날
어머니 없이 살려고 하니
나 아래에 남동생이 여섯 명
뛰는 시누이 위에 나는 할머니
할머니 책이 세상에 나온대요
[부록] 라니쌤의 제주어 교실
[에필로그] 말해야 조금이라도 압니다
리뷰
책속에서
프롤로그
할머니가 나고 자란 법환에서 태어난 손녀, 법환의 상군 해녀였던 할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법환 해녀학교를 다니며 물질을 배웠다. 나를 키운 제주와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갔다.
해녀 할망과 해녀 지망생 손녀, 해녀와 바다라는 연결고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는 뱃속에 임신하고, 3살 첫째 아이는 뗏목 위에 태우고 물질했다는 그 시절 이야기, 선배 해녀들이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동요 ‘이어도 사나’는 정말 아름답고 끝내주었다는 이야기. 할머니가 풀어 주시는 옛이야기보따리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손녀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갔다.
제주 생활사에 관심이 커져 본격적으로 제주의 의식주, 문화, 역사에 관해 공부를 하게 됐다. 책과 강의에서 접한 내용이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어 놀랐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제주가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삶이 제주 생활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참 소중했다. 할머니도, 이야기도. 하지만 이렇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 수 있을까? 시간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정신지는 <할망은 희망>에서 ‘기록되지 못한 삶의 기억들이 찍어내는 소리 없는 마침표가 하나둘 늘어간다’며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서로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할머니를 찾아뵙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내겠다고 약속드렸다.
어린 나이부터 노동을 하느라, 당장 먹고사는 게 일이라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를 대신해 손녀딸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그 소중한 이야기를 다시 글로 옮겨내었다. 할머니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할머니와 나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담았다. 이 책은 인터뷰집이라 할 수도, 구술 채록이라 할 수도 있다. 책의 부제에 담겨 있듯이 이 책의 정체성은 ‘자서전’이다. 자서전의 뜻은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이다. 손녀가 할머니의 눈이, 귀가, 손이 되어 할머니의 역사를 오롯이 담았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이 책에는 할머니의 90년 역사가 담겨 있다. 1부 ‘우리 살아난 건 골아도 몰라’에서는 그 시절의 의식주, 문화 등이 담긴 제주 생활사를, 2부 ‘나의 역사는 닦이지가 않는다’에서는 당신의 사람들과 해녀 이야기 등 할머니의 개인사를 풀어나간다.
‘손녀가 듣고 기록한 할머니 자서전’ 프로젝트는 할머니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 시작된 일이다. 하지만 이 작업의 영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할머니를 찾아뵙고, 할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하면서 나와 할머니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겨 따뜻하게 엮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을 때 할머니는 많이 부끄러워하셨다. ‘기억이 안 난다’, ‘말할 거 없다’고 하시던 할머니께서 이제는 먼저 당신의 이야기를 내어주신다. 처음엔 쑥스러워했지만 어느새 물어보지 않아도 당신 얘기를 하시고, 질문에 답하는 걸 자연스러워하시며 신나게 말씀해주시는 할머니가 참 사랑스러웠다. ‘요망진 손녀 딸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나의 행복이었다. 할머니의 환한 미소를 본 순간, 이 작업하길 참 잘했다는 마음이 환하게 퍼져나갔다.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따뜻한 응원을 듬뿍 받았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느껴져서 좋다는 말씀. 할머니의 제주어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고, 비슷한 시절을 살아왔던 당신의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는 말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줘서 고맙다는 말씀. 이 작업에 감사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뚝심을 갖고 진행해보라는 응원들이 나를 더욱 자라게 해주었다.
친척 어른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좋은 말들 역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시간을 들여 글을 읽어주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글에 몰입하시는 모습은 나의 두 번째 행복이었다. 무뚝뚝한 어른들의 입에서 나온 ‘읽을 만하다’, ‘어머니 말을 글로 보니 새롭고 재밌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칭찬인지 나는 안다.
무엇보다도 이 작업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야기의 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이야기와 사람을 찾아가고, 귀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 속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듣는 사람과 들려주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그 공간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통해 할망은 응답했다. 할머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자 할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로 우리의 삶을 어루만져 주었다. 무전기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연결되듯, 할머니의 응답으로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고 시간과 시간이 연결되었다.
책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세대를 뛰어넘은 이 응답이 닿길 바란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들어가 그 시절의 제주를 맘껏 누린다면 이해와 공감이라는 실로 끈끈하게 엮어지게 될 것이다.
응답하라, 제주할망!
할머니 30살 땐 뭐했어요?
아이고, 그땐 다른 사람의 밭 빌려 살아서, 삶이 삶 아니었어. 그때 101살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었어. 그 시어머니가 아침에 밝아가면 아주 지친데 와서는 “얼른 밭에 가라” 하면 밭에 가서 해 저문 후까지 김매다가 오고, 그렇게 안 한 날은 물질가서 해 저문 후까지 하다가 왔지. 아기들은 갓난아기였으니까 오죽 힘들었겠어?
그땐 먹을 게 그거밖에 없었구나.
저기 동규 할머니도 이제 고구마 먹고 싶지 않다더라. 어릴 때 하도 지겹게 먹어서. 아이고, 우리도 친정어머니부터 가난해서 고구마만 고구마만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