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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송재찬 (지은이)
서연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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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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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인물
· ISBN : 9791189171742
· 쪽수 : 166쪽
· 출판일 : 2024-04-25

책 소개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 자로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한다. 그가 출판과 함께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교육이었다. 손병희는 나라를 지킬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창설하여 운영하던 이용익이 190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목차

머리말

1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
2 돈보다 귀한 생명
3 끈질긴 서자의 설움
4 가시나무에 피는 꽃
5 차별 없는 평등 세상
6 조여 오는 숨통
7 동학농민혁명
8 충청도 출신 갑부 이상헌
9 동학에서 천도교로
10 나라를 살리는 교육의 힘
11 기미년 3월 1일

소설 손병희 해설
손병희 연보
소설 손병희를 전후한 한국사 연표
참고문헌

저자소개

송재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0년 제주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 아동문학상, 소천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박홍근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대표작으로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 《돌아온 진돗개 백구》, 《주인 없는 구두 가게》, 《노래하며 우는 새》, 《이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 《하얀 야생마》, 《아버지가 숨어 사는 푸른 기와집》, 《나는 독수리 솔롱고스》, 《비밀 족보》, 《우리 다시 만날 때》, 《네 잎 클로버》, 《제비야, 날아라》, 《홍다미는 싸움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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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가 울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의 아버지가 공금을 써 버려서 곧 관가에 잡혀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꽤 큰 돈이어서 친구네로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이 잡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응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응구야, 우리 아버지 관가에 끌려가 죽을지도 몰라.”
흐느끼며 말하던 친구의 음성이 밤새 응구의 잠을 방해했다. 이튿날 응구는 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 너희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 거야. 돈 백 량 때문에 죽기까지 해서야 되겠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어.”
응구는 아버지가 관가에 바칠 세금을 거두어 문갑 안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응구는 친구에게 식구들이 다 잠들면 들어와 돈을 훔쳐 가라고 일러주었다. 문갑이 어느 방에 있는 것까지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래도 되겠니?”
친구가 걱정되어 물었다.
“아버지를 죽게 할 거야?”
“알았어. 고마워.”
친구는 식구들이 다 잠든 다음 응구네 집 문갑에서 돈 백 량을 훔쳐내어 관가에 갖다주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옥에서 풀려나왔다.
며칠 후에 응구네 집은 발칵 뒤집혔다. 세금으로 거둔 돈 백 량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도둑은 분명 집 안에 있다.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내가 도둑을 키웠구나.’
아버지는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떠 올리며 의심하였다. 아무도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응구도 시침을 뚝 떼었다.
아버지가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며 누워있던 어느 날 응구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가 그 돈 백 량,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는, 응구가 돈을 훔쳤다가 아비가 식음을 전폐하니 이제 내놓는가 보다 했다. 응구는 그 돈이 사라진 사정을 정직하게 고백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것이냐?”
“돈을 훔쳐 간 다음 날 바로 말했다면 당장 달려가 돈을 찾아왔겠지요. 그러면 그 친구 아버지는 영영 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제 옥에서 나왔으나 말씀드리는 겁니다.”
“세상에! 세상에! 네가 훔쳐 가라 했단 말이지? 댓기놈! 그 친구가 도둑이 아니고 네가 도둑이구나.”
아버지는 야단을 쳤지만 속으로는 감탄했다.


1882년 여름 어느 날, 22살의 손병희에게 조카 손천민(孫天民)이 찾아왔다. 그는 이복형의 아들로 7살 연상이었다.
“당숙,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어서 오시게. 조카님도 잘 지냈는지요? 여기 앉으시게”
“네.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손천민은 쾌활한 성품이어서 우스개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여간 점잖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래 무슨 일로?”
“당숙께서도 동학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동학. 뜻밖의 말이 조카의 입에서 나왔다.
“동학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듣기야 많이 했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당숙님, 제가 동학에 입도했습니다.”
손병희 얼굴에 놀라움과 호기심이 떠올랐다. 나라에서 금하는 동학이라는 걸, 손병희도 모르지 않았다.
“조카님이 동학이라….”
손병희가 관심을 보이자 손천민은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당숙님, 동학을 믿으면 삼재팔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스스로 물러가요. 흉년이 들어도 굶주리지 않게 되고 난리가 나도 미리 알게 되어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숙님도 동학에 들어오십시다. 또 무슨 일이나 소원을 이루게 되어 잘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더욱 거칠게 동학을 탄압하였다. 나라의 명에 따라 포졸들이 집으로 가려는 동학교도를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왕의 전교는 속임수였다.
최시형의 뜻을 따라 온건파에 속했던 손병희는 나라의 이런 처사에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최시형도 크게 분노하였다.
나라의 속임수로 광화문 교조 신원이 실패로 끝나고 서울로 올라갔던 교도들까지 체포당한 데다 관헌들의 약탈은 더욱 심해졌다.
광화문 복합상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93년 3월 중순, 최시형의 명을 받은 동학교도 3만여 명은 다시 보은 장내로 모여들었다. <척왜양창의> 5자를 새긴 깃발을 휘날리며 보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척왜양창의. 이 깃발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세력이 나라 깊숙이 침투하여 왕은 이미 허수아비 같은 신세로 전략했고 서양 세력들도 호시탐탐 우리 땅을 노리고 있었다. 나라의 권세가들이 일본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할 때 동학도들은 평화적인 시위를 하며 나라를 지킬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보은집회의 시위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시위로 손병희는 이 집회에서 충의대접주로써 확실한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3만여 명을 흐트러짐 없이 질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하여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동학교도들에게는 ‘손병희는 뭔가 다른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야.’하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이 보은집회의 규모에 놀란 조정은 급히 보은 군수를 현지에 급파하여 동학교도들을 해산시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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