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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간에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정치 공간에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너는 어느 편’인지 묻는 당신에게)

고성제 (지은이)
아르카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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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간에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정치 공간에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너는 어느 편’인지 묻는 당신에게)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일반
· ISBN : 9791189393304
· 쪽수 : 294쪽
· 출판일 : 2022-01-17

책 소개

그리스도인이 제목 그대로 정치 공간에서 어떤 스탠스(입장)를 취해야 할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성경적 지침을 얻을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는 마음으로

part 1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 바라보기

1장•이념이 편만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
2장•정치 공간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준과 용기
3장•‘타락한 현실’에 대한 가장 실제적인 시선
4장•두루 따뜻한 하나님의 시각으로
5장•그분의 뜻은 이미 나타나 있다
6장•실천과 들음의 균형

part 2 그리스도인의 생각의 출발점

7장•이데올로기에 물든 청중, 무엇으로 설득할까?
8장•이런 첨단 시대에 왜 레위기인가?
9장•샬롬의 희망, 우리의 책임
10장•당신은 무엇이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11장•이데올로기라는 우상
12장•이념 전쟁과 안식일
13장•저항의 정신으로
14장•그들도 너처럼 쉬게 하라

part 3 공동체 : 하나님나라 분양 위한 모델하우스

15장•그 뼈들은 왜 군대로 살아났을까?
16장•소금의 맛
17장•다 ‘내게로’ 오라

에필로그 : 미흡하다고 아쉬워할 그 누군가를 환영하며

저자소개

고성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성숙한 시기에 교회 현장에서 목격되는 아픔 때문에 방황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목회 현장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간절히 신학하기를 소원했다. ‘현실 교회는 그러해도 주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엔 ‘정치와 교회’라는 문제로 고민했다. 늘 시원스런 답이 없었고(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목사인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했으며 답을 모르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에 방황하기도 했다. 이후 ‘삶의 현장 속에서의 기독교’라는 주제는 늘 저자를 괴롭히는 문제였다. 신학을 시작하기 전에도, 부르심을 확인함과 아울러 ‘성도들의 삶’에 대한 이해·공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0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최근 수년간 지속된 우리 사회의 갈등은 저자의 마음에 늘 부담이 되었다. 특히 극단적 정치 갈등 속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적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지 못한 채 휘둘리고, 심지어 같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도 작은 정치 얘기 한 마디에 적이 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목회자로서 그런 현실에 답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 혼란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준거 삼을 원리를 찾아 말해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기엔 자신이 턱없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교회에 ‘연구 기간’을 요청하여 4개월간 칩거한 끝에 이 책의 내용을 설교하게 되었다. 이 책의 1부는 <조국 사태>로 한국 사회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엄청나게 갈등하던 바로 그 시기에 8회에 걸쳐 행해진 설교를 요약한 것으로, 기독신문에 연재된 것이다. 2부와 3부는 그 이후 정치적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그때 참고할 기독교적 가치를 설교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 평촌새순교회 담임목사로서, 한국교회의 복음적 개척·갱신·부흥과 건강한 복음적 생태계 복원을 위해 협력하는 (사)복음과 도시(City to City Korea와 The Gospel Coalition Korea)의 이사로도 섬기고 있다(ctckorea.org / tgckorea.org). 부산대학교 상과대학과 총신신대원(M.Div.)을 졸업했다. 평촌새순교회 www.pcsaeso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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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 책은 최근 몇 년간, 온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뉘어 극도로 갈등하던 두 번의 시기에 강단에서 선포되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시기는 ‘조국 사태’로 온 나라가 갈등하던 그 갈등의 절정기,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여 극도의 분노를 뿜어대던 2019년 9월부터 10월이었다. 두 진영의 적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해서,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련된 설교를 하는 것은 너무 조심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질 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 나라가 요동치고 힘들어하고 있는 때, 교회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보통 때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주제의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답을 원하고 길을 묻는데, 그런 일 자체가 아예 없다는 듯이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그렇고, 일부 목사들이 그저 자신의 정치적 소견에 불과한 말을 강단에서 쏟아내는 것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길은 뭘까? 이런 때, 목사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심하고 또 고심하다가, 교회에 4개월간의 연구기간을 요청했다. 하지만 필자는 곧 후회했다. 신청할 때는 내가 (현실 정치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마음에 부담은 있어서 신청했지만, 이제는 4개월 후에 무언가를 설교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힘들어하는 가운데 기도하면서 마음에 든 생각은 ‘원리를 설교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생각은 각자에게 맡기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어떤 가치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지, 그 원리를 설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연구기간을 지난 후, 마침내 2019년 9월 ‘이렇게 혼란한 때에 길은 어디에’라는 주제로 설교를 ‘감행’했다. 처음엔 너무나 부담스러워 딱 한 번만 설교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한 번의 설교 준비에 더 많은 생각을 부어주셨고, 마침내 8회에 걸쳐 설교할 수 있었다.
당시 그 일은 설교자인 나에게도 말할 수 없이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우리 교회의 교역자들에게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들은 ‘오늘 우리 교회는 완전히 두 쪽 나고 큰 시험에 빠질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저들끼리 특별 기도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날의 설교 후에는 긴장의 끈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설교 중에 성도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8주간, 그리고 그 후의 오늘까지 교회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양 진영’의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도는 이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모두가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납득했고, 그것 때문에 공동체의 평화를 잃을 정도로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기독교적인 기준과 가치는 양 진영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이제 자신과 다른 생각을 어느 만큼은 존중하며, 참고 들을 만큼 된 것도 같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기사인 필자의 인터뷰 ‘이념을 절대화하지 말고 성경 따라 화평과 평화 일구라’, 기독신문 2217호를 참조하라.)

필자가 정치와 관련하여 두 번째로 설교를 한 것은 2021년 1월 첫 주부터 약 10주간이었다. 이 두 번째 시기는 ‘코로나 발생 기간의 광화문 집회를 둘러싼 방역당국과 교계의 갈등’, ‘소상공인과 서민생활 지지를 위한 기본소득 논쟁’, ‘검찰 개혁 방법을 둘러싼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충돌’, ‘원전폐쇄를 둘러싼 감사원 감사로 인한 갈등’, ‘검찰총장의 사퇴’ 등 복잡한 정치적 사건들이 이미 진행되었거나 한참 진행 중인 상태였다. 각종 여론 조사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둘로 갈라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교회 안에도 여론은 여전히 나뉘어 있었다. 두 번째 연속(시리즈) 설교는 이런 상황에서 역시 ‘감행’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첫 번째 시리즈 설교와 강조점이 약간 달랐다. 첫 번째는 우리 각자의 한계와 성경적 기준을 알게 함으로써 갈등이 임계점에 이르기 전에 누그러뜨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두 번째는 이렇게 갈등하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런 갈등과 대치 중에도 우리는 이 사회를 더 바람직한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며, 우리의 논의는 어디에 기초를 두고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이런 갈등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바른 입장과 가치관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나누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면 각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서 있는 현장과 상황에서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적어도 그 지점까지는 성도들을 이끌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이 시리즈 설교를 글로 옮겨 출간하는 것은 몇 가지 마음 때문이다.
첫째는 최근의 정치 상황과 같은 사회적 갈등과 관련하여 설교하는 것이 심히 부담되는 일이기는 하나, 사실은 ‘급속한 시대 변화가 일상화됨’으로 인해, 이른바 ‘갈등’은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일상화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상화된 갈등의 한 가운데에 존재하게 될 교회 안에서 이 부분과 관련하여 고민을 함께하는 마음들이 모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런 문제에 대해 이미 많은 생각을 하고 표현해왔다고 여겨지는 (진보적) 교파나 교단이 아닌, 필자가 속한 (보수적) 교단이나 교파 같은 곳에서도 자신들의 신학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품고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둘째, 이 땅의 설교자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 속에서 설교하는 일에 작은 참고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사실 필자도 극도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설교할 때는 참고할만한 다른 설교자들의 예 없이는 설교할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런 예가 있을 때, 그것을 통해 길을 찾고 힘을 얻어 설교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2019년 9월과 10월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매일 기 싸움이 벌어지던 그때에 했던 설교의 주제와 주요 내용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수없이 그런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이기에, 이런 논의가 요즘처럼 더욱 필요한 때에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셋째, 필자가 시도한 설교들이 실제 상황과 필요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표현이 불가할 정도로 미흡하다고 느끼지만, (그리고 그 미흡함을 커버할 능력이 필자에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그대로 이 작은 시도를 세상에 내놓는 것은 누군가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혹여 이 작은 시도가 거기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넷째, 목회자들 이외에도, 오늘의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해야 할 입장과 성경적 견해에 대해 알고 싶어 할 성도들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필자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사실 성도들은 각자 좌우 어느 한쪽에 속하여 매일 정치 공간에 참전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자신이 취하는 태도가 과연 성경적인지 확인할 수 있기를 갈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교회로부터, 목회자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찾으면 있을 것이지만, 그 도움이 대중에게 금방 손에 닿도록 가깝고 쉬운 곳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약간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도움이기를 기대한다.
다섯째, 간혹 교회 내에도 갈등이 고조될 위험에 처해 있지만 목회자가 그 부분에 대해 직접 설교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교우들에게 이 책을 읽도록 권함으로써 교회 안의 긴장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기대도 해본다. (사실 이 설교나 글의 도움으로 과격한 마음, 심하게 한쪽에 치우친 마음이 부드러워진 경우가 적잖게 있었다.)
-하략


정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그 한쪽에 무관심이 있다. 그냥 무관심한 사람도 있지만, 무관심해야 하는 줄로 아는 이들도 있다. 정치는 그리스도인과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정치는 우리 삶의 모든 것과 관련되기 때문에도 그렇다.
그 누구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에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무관심이라는 정치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또,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특별히 경건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안전과 복지가 사실상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런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내 삶과 이웃의 삶에 무관심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무관심의 반대쪽에 정치 과잉이 있다. 정치 과잉은 정치에 과도한 기대를 거는 데서 나온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정치적으로 더욱 과민하고 극단적이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면 우상숭배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아닌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극단적이 된다.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 중 어느 쪽을 따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 사회는 오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그들 모두가 간과하는 한 가지,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체제나 시스템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낙관적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의 메커니즘과 기업을, 사회주의자들은 대중과 노동자, 그리고 노조를 너무 신뢰한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무슨 뜻인가? 부자도 가난한 자도 다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를 채택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 때문이다. 사람이 타락하면 에덴도 더 이상 에덴이지 않듯이, 인간의 부패는 어떤 이상적인 제도도 좌절시키고 마는 것이다.
시장에 일정한 조절 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리는 것은 지나치게 시장을 이상화하는 것이다. 분배에 신경을 쓰면 다들 양심적으로 일할 것 같지만, 도리어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그건 인간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라는 말이다.
필자는 독자가 이것을 (이 책을) 양비론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쪽의 이데올로기든 상황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항상 한쪽만 맞고 다른 쪽은 항상 틀리다고 보면 안 된다. 진짜 문제는 인간의 타락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이 있어야 모든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기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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