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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91199437692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6-02-27
책 소개
목차
서론
제1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I. 최악과 최선
II. 성육신
III.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평화를 이루다
IV. 태초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
V. 예수를 알아보기
VI.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게서 나를 발견하기
VII. 고통 숭배에 관하여
VIII. 그분은 서두르지 않고 우리를 추격하신다
IX. 내가 겪은 이러한 슬픔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X. 죄의 의미
XI. 시선을 더 깊게 하기
XII. 인격을 이해할 때 꼭 필요한 표현
XIII. 정욕
XIV. 참된 구원
XV. 한 가지 분명히 해둘 점
제2부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
I. 죽음에 이르기까지
II. 주님의 죽음
III. 여정의 끝이 보이다
IV. 신앙인의 마음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 되는 예수
V. 자기애에 빠진 인간
VI. 다시금 시선을 또렷하게 하기
제3부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것
I. 애통함은 종말에 닿아 있다
II. 붓다와 그리스도
III. 용서에 대한 비유
IV. 하느님과 용서 I
V. 하느님과 용서 II
VI. 나의 체험, 그리고 바울
부록과 후기
부록: 그리스도인의 자기-발견에 관하여
후기
세바스천 무어 저서 목록
책속에서
저는 수년 동안 그리스도론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고 언제나 예수와 문화 사이의 대조를 강력하게 의식해 왔습니다. 제 눈에는 신학의 영역에서든 대중의 영역에서든 그리스도교가 만들어 낸 온갖 담론들이 이 대조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였고, 두 가지를 동시에 취하려고 하는 듯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 예수를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예수를 낡은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 한복판에 잡아 두는 모순을 범하는 것 같아 보였지요. 저는 예수에게 자신을 바쳤기에 사회의 규범과 기대로부터 엇나가고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바로 그러한 충돌의 현장에서 새로운 그리스도론, 선명한 '대조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 of contrast이 탄생했기 때문이지요. 저는 대조를 통해 예수에게 여러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그중에 어떤 호칭은 분명하게 쓴 적도 있고, 어떤 호칭은 암시만 남기기도 했습니다. "도전하는 자", "질문하는 자", "외부인", "예언자", "시인", "혁명가", "저항자"... 그러다 저는 그토록 뼛속 깊이 느껴 왔던 예수와 '정상성' 사이의 거대한 대조가 그에게 더 신비로운 이름 하나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래도록 제가 거부해 왔던 호칭, 바로 "희생자"victim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오래전 친구들과 로마 근교에 있는 시골 교회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었고, 교회에는 저녁 기도의 첫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복잡한 개념과 씨름하기를 멈춘 마음 한편, 그 고요한 곳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모든 비밀이 바로 저 노래에 담겨 있었습니다. 적대하고 공격하는 행위, 곧 인간의 죄가 도리어 은총의 물줄기를 터뜨려 흐르게 했습니다. 진리를 응축하고 있는 이 상징, 이 온전한 관점을 저는 생생하게 체험하고 영혼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음을 놓쳤고 이후 15년 가까이 까맣게 잊고 살았지만 말이지요.
예수를 다른 무엇보다도 '희생자'로 보아야 함을 깨닫게 되자 둔중했던 지적 활동은 활력을 얻어 마침내 시골 교회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따라잡았고, 그 순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지성을 사용하는 작업은 무의미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한층 깊어졌지요. 세상 물정에 길든 인간이 새로운 인간의 가능성인 예수와 만났습니다. 그 만남의 한복판에는 뼈아픈 자책과 슬픔, 그리고 치유가 서로 엉겨있었습니다. 이는 제 지성이 앓던 병이 낫는 과정이기도 했지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셨다'는 오래된 고백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그 말은 그리스도 사건에 구시대의 속죄 논리를 억지로 덧씌운 낡은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와 세상의 날카로운 차이가 품은 참된 의미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제 사유에서 '구원하는 희생자로서의 예수'라는 언어가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제 그리스도교 지성도 함께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죄가 곧 자기혐오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명백해지는 진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우리의 '참된 나'를 대변하시며 우리의 죄(자기혐오)를 온몸으로 겪으십니다. 그분이 겪으시는 고난은 죄에 빠진 우리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자아'가 겪는 고통이 아니라, 그 자아의 횡포에 짓눌려 신음하던 '참된 나'가 겪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통해 완전히 드러났고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이를 상징하게 되었으며 수난passion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이 신비를 응시하며 죄인인 우리는 불화해 왔던 참된 나에게로 뛰어듭니다. 살의를 품고, 절박하게, 혹은 희망을 품고서 (그 속내야 누가 알겠습니까?) 말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받아들여지고, 잃어버렸던 정체성과 자유를 되찾습니다. 죄의 본질이 자기혐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사랑과 피의 신비는 강력하게 중심을 다시 잡습니다. 자기혐오를 더 격렬하게 드러낼수록, 그를 붙드시는 하느님의 손길은 더 강력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