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기침 소리 (정려성 다섯 번째 시집)
정려성 | 그린아이
11,700원 | 20251027 | 9791191376616
“시인이 된 시, 시가 된 시인!”
시를 통해 시인의 삶을 노래하는 솔직하고 담백한 인생의 고백,
정려성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아버님의 기침 소리』
자신을 ‘시답지 않은 시를 쓰고 있다’고 소개한 시인은 시와 사람이 다 같이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이란, 자신이 쓴 시대로 사는 시인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에 밑줄 긋는다면 시는 시인이고, 시인은 자신의 시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 일부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이 시집은 시로 쓴 자서전이며 그의 시론을 구현한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1세대에서 4세대까지 가족공동체를 주 대상으로 한다. 시인에게 가족, 어머니, 아버지, 아내, 자녀(며느리, 사위), 손주 내외, 증손은 그리움의 원천이며, 삶을 구성하는 한 이유이다.
시인과 시간의 한 조각을 같이했던,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은, 부재 이후에야 알게 되는 자리의 대상은 부모와 아내이다. 아버지는 함께 보낸 공간, 생활을 책임진 가장, 기침 소리로, 어머니는 향기, 어지럼증, 목화, 목소리 등으로, 기억들을 재구성해서 정리되어 있다.
이 시집으로 시인이 요즈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태인지 세세한 근황을 파악할 수 있다. 시인은 나이 들어가는 것, 쇠약해지는 육체 그리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여유있게 반응한다.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의연함의 자세가 자리하고 있다. 의연함이란 여유를 가지고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이것이 노년이 느끼는 육체와 시간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하기 위한 위악적 무의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의연함과 더불어 슬픔과 고독의 감정 역시 솔직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연장자로서 성직자로서 강한 척하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육체의 쇠약함이라는 낯선 상황과 마주하는 당혹감과 고독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불행이다. 제약 없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먹고 여행하고 놀고 자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정려성 시인은 육체의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노년의 육체로 발견한 새로운 감각도 보여준다.
정려성 시인의 천성은 여유와 농담이다. 삶의 유한함과 죽음, 나이듦에 대한 진중한 주제를 다룰 때 솔직하지만 이러한 현상과 변화에 짓눌리지 않는다.
여유와 느긋함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의 태도에서 연유한다. 시인은 해는 해대로 뜨고 지고, 달은 달대로 뜨고 지며, 별은 별대로 뜨고 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해가 달처럼 별이 해처럼 뜨고 진다면 그건 재앙일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은 한 개인의 삶을 유년-장년-가족-노년-신앙의 흐름으로 펼쳐 보인다. 시인의 생애를 따라가는 연대기이기 때문에 한편 한편이 따로 쓰인 것 같으면서도 이어진다. 한 세대가 겪어낸 고향과 근대, 신앙, 삶의 기록, 몸으로 살아온 시간, 지나간 사람들의 숨결, 끝내 피지 못한 꽃 같은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시인은 가족을 사랑하는 아들, 남편, 아버지, 병상에 누워 신의 발자국을 기다리는 신앙인, 시대에 목소리를 내는 예언자이다. 솔직한 고백의 시는 일기 같고 편지 같으며 기도 같고, 단호한 예언서 같다.
정려성 시인의 시에서 고향과 가족과 시대와 신앙의 기저에는 슬프지만 유쾌하고, 외롭지만 향기로움이 자리한다.
-「작품 평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