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발견 (색은 우리의 시각을 어떻게 바꾸는가)
리카르도 팔치넬리 | 해리북스
32,400원 | 20240815 | 9791191689112
“색은 소통하고 판단하고 위계화한다.
색에 관한 궁극의 인문학적 탐구.”
왜 노란색 연필이 다른 연필보다 잘 팔리는 걸까?
왜 몬드리안은 그림을 그릴 때 초록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까?
왜 장례식장에서는 검은색 옷을 입을까?
푸른색은 파란색에 가까울까, 초록색에 가까울까? 아니면 그 둘 다일까?
이탈리아의 저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리카르도 팔치넬리는 이 책에서 현대인의 시각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색의 역사를 깊이 파고든다. 회화와 문학,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취한 400개가 넘는 이미지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속에서 팔치넬리는 우리가 색과 맺어온 기나긴 진화 과정을 추적하며, 산업 혁명과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영구히 바뀌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모니터의 화려한 색상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더는 과거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어쩌면 현대인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을 보면서도 무의식중에 심슨 가족의 노란색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아름다우면서도 지혜와 통찰로 가득한 이 책은 명암과 색조, 염료와 안료 픽셀에 관한 이야기이자 색이 어떻게 세상을 사유하는 방식의 필터로 작용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색에 관한 궁극의 인문학적 탐구
색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에서부터 뇌가 색을 인식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과학, 이론과 신화, 예술과 상품을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 속에서 팔치넬리는 색이 어떻게 의도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며 판단하고 위계화하는지, 합성염료의 탄생과 인쇄술의 발달이 어떻게 색의 대중화를 가져와 패션 산업과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예술 사조의 등장과 성공에 밑거름을 제공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 눈에 언뜻 자명해 보이는 색의 본질과 특성이 실제로는 역사적, 기술적, 경제적 진화 과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색에 관한 우리의 앎 또한 여전히 매우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사실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요즘 아이들은 두 가지 노란색 화학물질이 반응해 파란색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매우 놀라워한다. 하지만 파치넬리가 보기에 정말 놀라워해야 할 것은 파란색 물감과 노란색 물감을 섞으면 언제나 초록색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물감이 항상 일관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팔치넬리는 주어진 현상을 그것이 과연 절대 불변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비판적 사고의 대상에서 색처럼 중립적으로 보이는 대상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규칙과 취향, 금기 등 모든 것은 변한다. 팔치넬리에 따르면 비판적 사고는 색처럼 사소해 보이는 사실들에서 시작할 수 있다.
색은 의도를 가지고 소통하며 판단하고 위계화한다
왜 성모 마리아의 망토는 파란색이고 유다의 망토는 노란색일까? 중세에 파란색은 라피스라줄리라는 값비싼 재료로 만든 고귀한 색이었고, 노란색은 황금이 변색한 것으로 기만과 거짓을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까지 서양에서 파란색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만한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보인〉에서 엠마가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것은 그녀의 귀족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의미하고,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파란색 재킷을 입은 것은 그가 상류사회의 일원임을, 그리고 당시 정점에 달한 낭만주의 사조에서 그가 고귀한 영혼을 가졌음을 의미했다.
색의 역사는 1856년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겨우 열여덟 살에 불과하던 젊은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이 실험실에서 최초의 합성염료를 개발한 것이다. 퍼킨은 이 새로운 물질을 ‘아날린 퍼플’이라는 이름으로 특허 등록하고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이 형광색에 가까운 색의 옷을 딸의 결혼식에 입고 등장했을 때, 색의 역사는 전환점을 돌아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회화용이 아니라 섬유용 색소가 화학적으로 만들어지면서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산업 중 하나인 패션 산업의 문이 열린 것이다.
회화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튜브 물감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색은 가격이 저렴해지고, 쓰기 편리해졌다. 경제적인 요인은 회화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네와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은 캔버스에 물감을 두텁게 발라 질감을 살렸다. 물감값이 비쌌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인상주의는 대중과 똑같은 물감을 사용한 최초의 예술 사조로, 이때부터 예술가와 대중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색은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고, 독립적인 변수도 아니다. 색은 의도를 가지고 소통하며, 판단하고, 위계화한다. 우리의 색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경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