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통제론
김성진 | 백산서당
35,100원 | 20240520 | 9788973278541
「군비통제론」은 교육기관, 일반대학교의 군사학과 및 부사관학과, 군장학생, 사관생도, 그리고 국방ㆍ안보 분야 연구자들을 위해 작성한 군사학 총서(叢書) 제7권이다.
국제사회엔 항시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기에 분쟁(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러-우ㆍ이-하 전쟁은 종전(終戰)될 기미나, 출구 전략은 보이지 않은 채 어제의 적이 오늘은 우방이 되는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유형의 국가일지라도 비정한 리그(league)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도여서다. 따라서 국가의 존립과 국익을 추구하려면, 과감한 결단력과 지혜로움, 올바른 전략적 판단, 내구력(耐久力)을 갖춰야 한다. 강한 용기와 진정한 힘만이 적국(잠재적국)의 도발 의지를 억제(최소화)할 수 있다고 함이 올바른 표현이다. ‘힘이 있는 척하는 국가’와 ‘진정한 힘을 가진 국가’가 경쟁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면, 스스로는 내부에서, 어미 닭은 외부에서 서로가 끝없이 쪼아대는 ‘줄탁동시(啐啄同時-동시ㆍ연속ㆍ지속성)’가 되어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중세 지배계층(통치집단)은 국가안보를 기치(旗幟)로 내걸었으나, 그들만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하였다. 프랑스 혁명(1789)이 총력전(Total War) 양상으로 변화되자 국가는 국민적 호응을 높이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절대 안보’ 개념이 형성되었고, ‘공동ㆍ협력ㆍ포괄적 안보’ 개념으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 존립과 국익 추구를 명분으로 하는 ‘군비증강’, ‘군비 감축(군비축소 또는 군축)’, ‘군비통제’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자국 우선주의 법칙(各自圖生)과 진영 논리’가 득세하는 엄혹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존립과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군비(軍備)를 증강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정된 삶(民生)을 위해 군비를 감축할 것인가?’라는 안보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힘으로 힘을 견제하는 게 ‘억지 이론(Theory of Deterrence)’이며, 싸울 수 있는 수단을 통제하는 게 ‘군비통제 이론(Theory of Arms Control)’이다. ‘군비통제(軍備統制-Arms Control)’는 군사력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보정책이자 국가전략이다. 초기엔 ‘군비(軍備-Arms 또는 military preparedness)’를 ‘군비(軍費-military spending 또는 war expenditure)’라고 해석하였지만, 점차 포괄ㆍ복합적인 의미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쌍방(다자) 간 군사적 피해를 예방 및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신뢰해야 하고, 반드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1987년 ‘미-소 중거리 핵전력 협정(INF)’을 체결할 당시 로널드 W. 레이건 대통령은 미하일 S.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믿는다. 그러나 검증한다(Trust. But Verify).”라며 군비통제의 본질을 강조하였다. 간단하게 표현한 이 문장이 적국(敵國)과 협의할 땐 상대의 선의(善意)도 필요하지만, 객관적 검증을 통한 신뢰 구축(CBM)이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2023년 11월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만리경-1호)이 발사되며, 2018년에 체결한 〈9ㆍ19 군사합의〉가 파기되었다. 문서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상대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재래식 군비통제의 취약한 허점이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득 “협상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될 때는 정작 군비통제를 추진할 필요가 없고, 군비통제가 필요할 땐 협상하는 자체가 쉽지 않다(When achievable, Arms Control is not needed. and when needed, it is not achievable).”라고 한 군사전문가의 말을 되새겨 본다. 각박한 국제 현실에서 군비통제 협상으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엔 갈 길이 멀다. 평화(Peace)라는 이상(Idea)을 추구하기보다 현실 정치의 갈등을 관리하는 게 목적이고, 국가 간 영토(권익)의 보장을 최종 상태(End-State)로 보고 있어서다. 결국, 안보위협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하되, 국익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노력하는 게 군비통제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나 싶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가공할만한 파괴력의 핵무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면서 인류 공멸(共滅)의 위기만큼은 막겠다는 절실함이 ‘억지 전략(Deterrence Strategy)’을 등장시켰으나, 실질적인 논의로 진전되진 못했다. 1960~1970년대 들어서면서 국가 존립-국가안보-군비통제의 관계가 어느 정도 설정되었고, 국가목표(국익+민생)와 안전보장을 군비통제 협상으로 해결하자는 인식이 커지면서 변화와 발전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다섯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군비통제’의 개념적 정의와 이에 관한 용어들을 이해하기 쉽게 엮었다.
둘째, ‘군비통제’ 협상을 하려면, ‘왜,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쌍방 또는 다자간 변화 및 새로운 갈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사례를 병행하여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민간ㆍ군사과학기술의 융ㆍ복합적 연계가 필요하며, ‘정책(전략)ㆍ기술적 측면이 왜! 탄력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셋째, 군비통제에 관한 논제(agenda)는 유럽 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전하였기에 이들의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용어의 생경(raw)함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앞 문단에선 소개와 배경 위주로, 해당 장(chapter)에선 내용 전반(全般)을 다뤘다.
넷째, 최대한 일반 용어를 사용하여 메라비언(55:38:7) 법칙과 story-telling 형식으로 풀어가되, 역사적 배경과 사례를 같이 제시함으로써 지적 호기심을 높였다.
다섯째, 공개된 자료를 활용하여 대표적인 군비통제 과정과 레짐(regime)을 분석하였고, 약자(略字)와 관련 사례 등은 각주를 이용하였다. 특히 한반도에 관한 내용은 최대한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이 책은 군사학도와 국방ㆍ안보 분야 연구자들에게 군비통제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제시하고, “어떻게 이해 및 실천해야 하는지?”를 안내하기 위한 개념서다. “무엇을 숙지해야 구체적인 행위와 연계할 수 있는지?”, “태도와 행위는 어떠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등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