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시인의 나라다 개정판 (선인권근, 김종직, 김시습, 정여창, 이언적, 이황, 이이, 권필, 김응조, 정약용과의 대화)
권오문 | 퍼플
12,000원 | 20231122 | 9788924117257
서문
경북 예천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1970년대 말 상경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학교 근처 서점에서 여러 권의 책을 사서 읽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지와 사랑』, 토마스 하디의 『테스』, 톨스토이의 『부활』 그리고 에드거 엘렌 포의 『검은 고양이』와 『황금충』 등이 있는 단편집과 김동인의 『젊은 그들』과 『대수양』 등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특이하게 『唐詩』라는 시집도 사서 읽었다. 『唐詩』에서는 두보, 이백, 왕유, 백거이, 유종원, 한유, 두목 등의 시를 읽었다. 또 고등학교 미술반에 소속하여 그림을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 향수를 달랬다. 고1 때 한시를 접한 이래 그간 직장생활 등으로 한시를 접하지 못하다가 40여 년이 흐른 후 50대 중반을 넘어 다시 한시를 접하게 되었다.
필자가 한시를 좋아하는 것도 인문학을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한시를 읽으면 1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만나고 시를 통하여 선인과 소통을 할 수 있어 좋다. 예컨대 두보의 시를 읽으면 안녹산의 난으로 난을 피해 다니면서 겪는 사건과 애환과 원망과 분노 등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당나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도 한시를 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문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한문학과나 중문학과를 나온 것도 아닌 일반인이 독학으로 한시를 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짓기 시작하여 어느덧 250여 수에 이르렀다.
고향에는 ‘水落臺’라는 정자가 있고 주위 경관이 뛰어나 서애 류성룡 선생이 들렀다가 잠시 지팡이를 내려놓고 쉬었다가 간 장구지소(杖屨之所)로 학사 김응조 선생과 목재 홍여하 선생 등 옛 선비들이 머물면서 지은 시가 있고 그 시비와 해석판이 세워져 있다. 한시를 지으면서 수락대에 세워져 있는 학사 김응조 선생의 한시 수락대의 해석에 수정할 부분이 있고 오타도 수정이 필요해 보여 예천군청에 서류를 보내고 예천박물관 학예연구사와 협의하여 2022년 6월 23일 수정을 한 해석판이 설치되었고 기존의 홍여하 선생의 한시 ’수락대‘의 해석판도 함께 설치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사 김응조 선생의 시’ 편에 수정과정을 본서에 일부 소개했다.
‘수락대’ 관련 한시 수정을 하면서 우리 한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수락대’ 한시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문집을 확인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李** 학예연구사와 문집(文集)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타를 발견하여 수정하였는데 이때부터 문집의 중요성을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선현(先賢)들의 문집을 살펴보면서 주옥(珠玉)같은 많은 시를 발견하여 놀랐고 문집을 편성하는 데 있어서 맨 앞(卷一)에 시를 수록하고 있어 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당시(唐詩), 송사(宋詞)라는 얘기가 있다. 당나라는 시의 나라이자 시인의 나라라는 뜻이리라. 필자는 처음에 당나라 시를 먼저 접하고 공부했지만 우리 선인들의 시를 접하고 우리 조선시대가 그야말로 시의 나라이자 시인의 나라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조선 초에서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비들이 시를 지었고 그 후손이나 제자들이 시와 글을 모아 문집을 간행하여 지금에 전해지고 있으며 선비들 외에도 김시습이나 권필 등 과거시험을 거쳐 출사하지 않은 문인도 있고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등 여성도 한시를 지었고 사명대사 등 승려도 한시를 지었고 그 편수와 내용 면에서도 당시(唐詩)와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唐詩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수백에서 천여 首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시를 썼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본다. 또한 과거시험(科擧試驗)에서 詩를 시험하는 것도 어느 정도 시를 많이 쓰는 데 일조한 면이 있었지만, 평생에 걸쳐 시를 쓴 것을 생각하면 절대적인 영향은 아니고 차운(次韻)으로 시를 지은 것이 많고 시를 보내고(寄) 또 시를 드리기(贈)도 하여 사회 전반에 시로 소통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삶의 철학이 있고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고 있으며 시대의 여러 부분을 담고 있어서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아직 많은 시가 번역이 덜 되었고 또 알려지지 않은 시와 시인이 많고 후손인 우리들의 무관심이 중요한 문화자산을 놓치거나 모르고 지나간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전문가는 아닌 일반인이지만 우리 先祖들 10분의 한시 5편(수) 총 50수와 필자가 지은 한시 250여 수 중 15수를 가려 책을 간행하기로 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 先人들의 시가 오늘을 사는 後人인 우리가 수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시로 소통을 하여 면면히 이어져 오는 문화를 이해하고 보다 많은 선인들의 시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고 소통(疏通)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베토벤의 악보가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리듯이 우리 先賢들의 시 또한 문집에서 나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한시 번역에 있어서, 조사 등은 되도록 생략하였으며 비교적 간결하게 번역하고 각운을 넣어 한글 시의 느낌도 들게 하였다. 시를 쓴 당시로 돌아가 시인이 어느 곳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 시를 쓰고 있는지 시인의 마음으로 번역하고자 애썼다. 선인들의 시를 고르는 데 있어서 이런 시는 우리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시를 주로 선택했으며 시의 해석에도 기존 해석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글자마다 음을 달아서 한시를 접하는데 조금 수월하게 하려 했고 혹 음에 오타가 있거나 해석에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면 좋겠다.
거듭 밝히지만, 필자는 독학으로 한시를 공부한 일반인이며 일반인이 바라본 우리 한시의 세계를 알리고 싶었다. 또한 이로 인해 독자들과도 소통의 장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동안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기다려주며 내가 하는 일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랑하는 아내 양혜순 씨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전합니다.
2023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