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
이호선 | 리원
20,700원 | 20180210 | 9791196299705
법학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마이클 샌델의 에서 찾는다. 정의가 호사가의 담론으로, 책장에 근사하게 꽂아 놓기 위한 책의 주제로 한 때의 유행처럼 우리 사회를 휘젓고 지나갈 때 저자에게 생긴 불만은 이것이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추상적이고 공허한 정의론에 식상한 저자가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사회에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작업의 소산이 이 책이고, 그 핵심이자 결론은 저자가 6년 전에 발표한 논문 한편이었다.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쓴 그 논문의 골자는 대한민국에서 출생하는 모든 신생아에게 일정한 생애기반자산을 확보해 줌으로써 출발의 균등함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느 유력한 진보 정치인이 주장하는 소비형 복지인 기본소득의 개념과 대척점에 있는 이 접근 방식은 사회적 지분이라는 용어로도 알려져 있는데, 기회의 균등, 자율, 책임, 생산형 복지로 요약된다. 저자는 이런 바탕 위에 청년기의 균등한 출발, 중 장년기의 치열한 경쟁, 노후의 안락이라는 그랜드 분배, 복지 디자인이 초저출산과 기록적 자살률로 대변되는 집단 퇴행으로 빠지는 우리 사회가 활력을 되찾을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난 6년간 이 대안이 갖는 타당성을 법, 정치, 윤리, 경제, 복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검증하고 체계화하려 하였다. 덕분에 이 책은 단순히 분배적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서 떠나 법학자답게 천부인권에 대응하는 천부물권, 개인적 상속에 대비되는 사회적 상속이라는 개념을 끌어내면서 여기에 자유, 평등, 공동체, 시장, 공화정, 자본주의, 시민, 미덕 등과 같이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실은 정작 제대로 모를 수 있는 담론들을 종횡으로 엮어 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사회적 정의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입체적으로 제공하여 일반 시민을 위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의를 주제로 한 내용이 갖기 쉬운 딱딱함, 난해한 추상성을 배제하고, 독자들을 위해 매 장 앞부분에 요약문을 따로 두어 쉽게 개괄적으로 핵심을 파악하도록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도 특징이자 장점이다. 에 대하여 미진함을 느꼈던 독자들, 그리고 언 발에 오줌 누듯 하는 기본소득 복지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시민이나 정책입안자들이라면 한번쯤 들춰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가죽 구두를 신을 여유를 갖지 못해 공중 앞에 기가 죽어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는 대목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유산의 전부로 받아 소년가장으로 출발했던 흙수저 출신의 저자의 경험이 우러나고, 사후적 평등이 인간의 자율과 책임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에 대한 강조에서 저자의 매우 깊이있는 균형 감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 페인과 맹자의 항산 사상이라는 도토리로부터 이끌어낸 천부물권과 생애기반자산이라는 큰 참나무 한그루가 추상적 정의 담론에서 결핍되었던 현실적 대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