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오래된 탐욕의 국가)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코리아
16,200원 | 20260511 | 9791124485026
한때 미국은 자신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였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이라는 세 가지 가치만으로도 스스로 정당성을 만들어냈고, 그 기준은 자연스럽게 세계 질서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그 기준을 스스로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 규범을 제시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그것을 바꾸고 무너뜨리는 존재에 가깝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국가. 이 책이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미국의 문제는 트럼프라는 한 인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의 트럼프를 가능하게 만든 ‘미국적인 조건’이 더 중요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고문 세르주 알리미가 지적하듯,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트럼프를 비판하면서도 그를 만들어낸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러시아 게이트’ 같은 사건은 사실 여부를 넘어, 정보와 신뢰 자체가 무너진 상황을 보여준다. 그 결과 미국 정치의 위기는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가 된다. 누구의 말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모두를 부정할 수도 없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는 갈등이 해결되기보다, 서로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러한 불신은 대외정책에서도 나타난다.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이란 문제에서 보듯, 미국은 선택적으로 신뢰를 주거나 거부한다. 이스라엘 같은 일부 동맹의 시각을 제외하면, 미국은 더 이상 보편적인 신뢰를 주는 국가로 보이지 않는다. 신뢰는 원칙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펴내는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셀렉션의 22호
’미국은 왜?‘는 미국의 탐욕적인 대외정책을 개별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오랜 구조로 본다. 라틴아메리카, 중동 등 세계 각국에서의 개입, 경제 제재, 군사 압박, 선거 개입은 각각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논리를 따른다. 이는 단순히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배열하려는 방식이다. 미국은 세계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재배치한다. 그 과정에서 국가들은 위계적으로 나뉘고, 동맹은 역할에 따라 다시 정리되며, 경제 흐름도 특정 방향으로 고정된다.
이런 시각은 ‘디커플링’ 전략을 보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겉으로는 중국과의 분리를 통한 안보 전략이지만, 실제로는 기술 자본과 국가 권력이 결합된 새로운 통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동맹국은 협력 대상이 아니라 체계 속의 종속적 위치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이익은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국가와 기업에 집중된다. 결국 디커플링은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재편이며, 경쟁이 아니라 통제에 가깝다.
이 책은 이런 구조를 통해 미국의 위기를 도덕적인 실패가 아니라 체제 내부의 문제로 이해하게 만든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불평등을 더 키우고, 자유를 강조하며 감시와 통제를 강화한다.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나라가 아니라 “불평등한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기능한다. 중요한 점은 이 분석이 감정적인 비판이 아니라 구조적인 설명이라는 데 있다. 이 책은 미국을 비난하기보다, 미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는 한계도 있다. 미국을 구조로만 이해하다 보면, 현실이 단순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미국은 제국, 군사주의, 독점 자본이라는 틀로 계속 설명되지만, 노동운동이나 인종 문제, 지역 정치 같은 요소들은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다. 그 결과, 미국은 복잡한 사회라기보다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의 진짜 의미는 미국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드는 데 있다. 특히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군사 동맹, 기술 의존, 공급망 속에서 한국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은 외부의 정책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질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미국을 지지할 것인가, 비판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이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그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사고방식까지 흔들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왜?』는 미국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는 책이다. 제국은 스스로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 작동 방식은 부분적으로만 드러나고, 나머지는 신화와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책은 그 빈자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의 의미는 분명하다. 미국은 더 이상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다시 질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미국의 탐욕과 폭압 앞에 지구촌 평화를 고민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발행인 성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