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원의 역사와 문화 (바다로 간 사람들)
안미정, 김강식, 김성준, 김윤미, 권경선 | 역락
25,200원 | 20230224 | 9791167424174
뱃사람을 일컫는 선원(船員), 이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역사학, 언어학, 인류학, 법학, 사회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3년간 연구를 수행하여 그 질문에 해답을 얻어보려고 하였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과 분단국가인 지금까지도 바다는 늘 우리 삶 가까이에 있었고 또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원에 대해 아는 것이란 마치 옆집 도랑을 흐르는 개울물과 같다. 가까이에 밀착된 세계임에도 이처럼 무지한 세계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인식적 괴리는 왜 생겼으며, 제국의 역사를 가진 서양이나 일본의 선원과 달리 한국 선원의 특수성은 무엇인지, 이들은 어떻게 양성되고 또 어떻게 대양(大洋)을 넘어 살았는지 등등 우리는 한국 사회의 담론 안에서 부재한 역사적 존재로서 선원의 그 구체성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국내에서 연구진은 우리 안의 선원을 찾아 통영, 여수, 목포, 군산, 구룡포 등 여러 곳을 탐방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을 말함에 있어 늘상 “삼면의 바다”라는 수식어를 달지만 실상 국가나 사회가 뱃사람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데에는 참으로 둔감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선원, 뱃사람에 대한 인식은 그저 ‘돈 벌기 위해 배를 탄 사람’ 이상의 그 무엇인지 여전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여백을 채우고자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일곱 명의 연구진 외에도 또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엮어 이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관심에서 ‘한국 선원’을 조명하였기에 어떤 독자가 이 책에서 하나의 주제에 대한 종합적 결론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나의 문(門)으로 들어가는 결론이기보다 여러 문이 열리는 서론처럼 이 책을 접하게 된다면 더 좋으리라 본다.
책의 구성은 크게 두 개로 편제하였다. 1부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흐름 위에서 한국 선원의 역사를 탐색하였다. 조선시대의 선원(1장)과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선원(2장), 그리고 해방 후 해기사를 양성한 고등교육기관의 역사에 이르기까지(3장) 오늘날의 ‘선원’은 시대적 변동 속에서 그 위상이 달랐으며, 특히 20세기 이르러 민족 구성이 다변화되고, 고등교육을 받는 전문인으로 양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뱃사람’의 일생은 개인의 삶이자 사회적 삶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넓게는 해역을 구성하는 실제의 세계이다. 이러한 측면을 선원들의 구술사를 통해 조명하고 있는 것이 4장과 5장의 내용이다. 다음으로 선원이 육상노동자와는 다른 해상노동자로서의 특수성에 기반한 법적 문제들을 고찰하며(6장) ‘수출역군’이라는 담론의 근거인 외화획득에 대한 실증적 분석(7장), 그리고 그 예우방안(8장)을 살펴보고 있다.
2부에는 공간적으로는 다르나 한국 선원에 직간접적 영향을 준 비교 사례로써 영국과 일본의 선원에 관한 글로 구성하였다. 근대 초기 유럽인들의 대항해는 선원을 역사의 무대로 등장시켰으며, 특히 잉글랜드의 선원에 대한 법적 지위에 대한 탐색(9장)과 실제 이들을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10장)은 오늘날 한국 선원의 법적, 사회적 지위를 조망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끝으로 근대 일본의 해운 확장은 국가 팽창과 궤를 같이하며 그 과정에서 선원이 양성되었고, 이원적인 선원 정책은 차별의 문제를 낳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11장).
선원 연구에 참여하였던 연구진들은 ‘근현대 한국 선원’이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된 ‘선원’의 존재를 상정하였으나, 실상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선원이 과거와 동떨어진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지금의 현실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들은 모두 ‘선원’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집중되어 있다. 지금의 일상이 가능하게 된 그 배경에는 글로벌 경제체제 안에 한국 경제가 존재하듯, 대양으로 나간 이들이 우리 삶의 한 영역을 떠받치고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각 장의 글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들은 독자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신흥 국가들의 선박이나 해운이 아니라 선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세계적 해운 강국이 된 이른바 선진국들의 관심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는 왜 선원을 연구하는가를 묻게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