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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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으며, 뒤에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과 영화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전위적인 연극활동을 해온 파스빈더는 1969년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로 데뷔했다. '다작'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1982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미국의 존 포드보다 많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늘 다짐했었다. 1969년과 1970년에 걸쳐 일련의 대단히 독창적이고 난해한 실험적인 영화를 만든 후, 처음으로 그에게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해준 영화 <사계절의 상인>(1972)을 만들었다.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그는 브레히트의 소외효과와 더글러스 서크의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를 결합시킨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로 작가 반열에 올랐다. <사계절의 상인>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고전적 할리우드 멜러드라마의 형식과 양식을 수정한 것이다. 대표작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는 그러한 멜로드라마 기법으로 인종차별주의 유산이 남아 있는 독일사회를 비판했다.
13년 동안 무려 4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한 그는 뉴 저먼 시네마 감독 가운데서도 가장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연극 연출,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가리지 않았으며, 자기의 영화와 연극에 주연으로 직접 출연하면서도 연출 작업을 쉬지 않았다. 나치가 사라진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독일사회의 파시즘을 통렬하게 비판한 파스빈더의 영화는 베를린영화제가 출품을 거부할 정도로 신랄했다. <폭스와 그의 친구들>(1975),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 <릴리 마를렌>(1981),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1982)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여신처럼 숭배했던 로미 슈나이더가 사망한 2주일 후 파스 빈더는 수면제와 코카인 과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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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레테 폰 트로타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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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베를린 출생. 뉴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폴커 슐렌도르프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다. 1975년 슐렌도르프와 공동으로 연출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영예〉로 장편 데뷔했고, 1978년 첫 단독 연출작인 〈크리스타 클라게스의 두 번째 각성〉으로 비평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대표작으로 〈독일 자매〉(1981), 〈완전히 미친〉(1983), 〈로자 룩셈부르크〉(1986), 〈약속〉(1994), 〈로젠슈트라세〉(200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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