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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위대한 생애 (2disc) 
· 분류 : DVD/블루레이 > 드라마/코미디
· ISBN : 8809306509017
· 출판일 : 2002-03-01
· 분류 : DVD/블루레이 > 드라마/코미디
· ISBN : 8809306509017
· 출판일 : 200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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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폰 시도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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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폰 시도우는 스웨덴에서 잉마르 베리만 감독과 함께한 작업들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제7의 봉인(1957)」에서 죽음의 신과 체스를 두는 기사, 「산딸기(1957)」에서 작가 베리만의 세계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환한 미소를 띤 자동차 수리공, 「마술사(1958)」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 마술사 그리고 「처녀의 샘(1960)」의 복수하는 아버지 역할 등을 통해서였다. 폰 시도우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동원된 당황스러운 영화 「위대한 생애(1965)」에서 예수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그 후에도 그는 스웨덴에서 점점 더 금욕적이고 불모적으로 변해가는 베리만의 영화(「겨울 빛(1962)」과 「늑대의 시간(1968)」 등)에서 감독의 음울한 제2의 자아로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메이저 영화의 성격 배우로서 두 가지 평행적인 경력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메이저 영화의 성격 배우로서 그는 냉소적이고 위협적인 나치(「퀼러 비망록(1966)」)나 공산주의자(「크렘린 편지(1970)」) 역할들을 맡다가 「엑소시스트(1973)」의 메린 신부라는 또 하나의 비약적인 역할을 연기하게 되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엑소시스트 2(1977)」에서 젊은 시절의 메린 역으로 다시 출연한 폰 시도우는 희한하게도(늙은 케인으로 분장했던 오손 웰즈와 실제로 늙은 오손의 경우를 비교할 수 있겠다) 「엑소시스트」에서 딕 스미스가 분장해주었던 모습과 똑같이 늙어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세계적인 음모를 꾸미는 사악한 인물들을 연기하고(「콘돌(1975)」과 「고귀한 희생(1976)」), 덥수룩한 미래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또 하나의 전문 분야를 개척했다(「최후의 용사(1975)」와 「죽음의 중계(1980)」, 「이 세상 끝까지(1991)」). 지독하게 고생하는 스웨덴 농부 역할(「새로운 땅(1972)」, 「정복자 펠레(1987)」, 「옥스(1991)」)을 너무 많이 연기한 바람에 영화계에서 흥을 깨는 배우라는 인상을 굳히고 말았다.
베리만조차 그를 잘 기용하지 않았던 때에, 우디 앨런은 비참한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폰 시도우를 「한나와 그 자매들(1986)」에 캐스팅했다. 그러나 폰 시도우는 「제국의 종말(1980)」의 밍 더 머시리스 역으로 재미를 즐길 줄 아는 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 덕분에 「승리의 탈출(1981)」과 「코난 더 바바리안(1982)」,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블로펠드 역) 등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모험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막스 폰 시도우는 세계적인 배우로서 50년 넘게 활동해오는 동안 감독 일에도 도전해보았다. 그는 1988년에 「카틴카」로 감독 데뷔를 하여 스웨덴의 굴드바예상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폰 시도우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배우보다는 감독의 표현 수단이라고 여긴다. 연극 무대에서 연기가 배우에게 달린 문제인 반면, 스크린에 한 역할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은 감독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연극에 비해 영화가 갖는 한 가지 커다란 이점으로 관객과의 근접성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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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턴 헤스턴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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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교외 에반스톤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찰스 카터였는데, 부모의 이혼 뒤 새아버지 체스터 헤스톤의 이름과 어머니의 성 찰톤을 따서 이름을 찰톤 헤스톤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941년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뒤 43년 미육군에 입대해 복무했다. 1944년에 대학 동창인 리디아 클라크와 결혼, 슬하에 프레이저와 홀리 앤은 두고 있다.
1941년 영화에 데뷔. 2차 대전 참전 후 모델 활동을 하다 1947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해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1950년 <줄리어스 시저>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세실 B. 드밀'감독의 52년도 작품 <지상 최대의 쇼>로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배우로 급성장했고, 1956년 영화 <십계>에서 모세역으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1959년 <벤허>로 3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십계>와 <벤허> 등 성서를 기초로 제작된 스펙터클한 작품과 SF의 고전 <혹성탈출> 등에 출연하면서 5,6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1973년에는 영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자신이 직접 연출해내며, 연극 데뷔 작품을 영화화하기도 했던 그는 120편이 넘는 할리우드 영화에 꾸준히 출연해 왔다. 또 90년대에도 <트루 라이즈>와 <아마겟돈> 등의 영화에 조연급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미배우조합(SAG) 회장과 미국영화연구소(AFI) 이사장 역을 역임하였으며, 1998부터 미국총기협회(NRA) 회장을 3차례 연임하는 등 정치적인 활동도 펼쳤다. 2002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왔던 그는 2008년 4월 5일 미국 베버리힐스 자택에서 부인 리디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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