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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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물론 철학자이며 종교철학자이다. 1804년 남부 독일의 작은 도시 란츠후트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이델베르크대학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신학 교수들에게 실망하고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헤겔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충실한 헤겔 학도로 학문의 장도에 올랐으나 곧 헤겔 철학과 결별하고, 자신의 철학을 인간학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남긴 것은 종교적 비판으로, 그는 신과 모든 종교적 표상이 현세에서 인간의 고뇌, 바람, 이상의 관념적 반영이며, 인간의 자기 소외의 형상일 뿐이라고 했다.
헤겔 철학에서 관념론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과 유물론 철학으로 넘어간 그는 『죽음과 불멸성의 고찰』(1830) 등의 비판적 저술로 대학 강단에 설 길이 막혀 부르크베르크라는 시골에 은거하며 철학사, 종교비판, 행복론 등의 광범위한 저술에 전념했다.
헤겔 좌파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였던 그의 사상은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비판적 극복을 거쳐 키에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마르틴 부버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으로 『기독교의 본질』,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베이컨에서 스피노자에 이르는 근세철학사』, 『라이프니츠 철학의 서술과 비판』, 『피에르 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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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엘리엇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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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로, 1819년 영국 워릭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약했던 탓에 어려서부터 여러 기숙학교를 돌며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정통 기독교인 복음주의를 포기하고 보편적 인간성에 입각한 비국교도 교리를 택했다. 1854년 급진적 자유사상가인 유부남 조지 헨리 루이스와의 동거로 런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루이스의 격려에 힘입어 서른일곱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만, 1878년 루이스의 사망과 더불어 그녀의 작품 활동은 끝났다. 엘리엇은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공감을 확대하고 개인적 운명의 경계를 넘어 경험을 증폭하고 다른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비평가 F. R. 리비스가 역설했듯, 엘리엇의 심리적 사실주의 미학은 삶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감수성의 결실이고, 이런 미학을 통해 엘리엇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도덕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엘리엇은 이십여 년의 집필 기간 동안 슈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번역했고, 《웨스트민스터 리뷰》의 부편집인으로서 많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1857년 세 편의 단편을 모은 『성직 생활의 단면들』을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한 뒤, 대표작 『미들마치』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비롯해 『애덤 비드』, 『사일러스 마너』, 『로몰라』,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 『다니엘 데론다』 등의 장편 소설과 『스페인 집시』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88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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