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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04167630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2-07-1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줄라이카
모세와 그를 양자로 삼은 하셉수트 공주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의 아들 - 메넬리크 1세
페르시아 제국의 왕비가 된 포로 출신의 유대인 처녀 - 에스더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유대인들
성전에서 회당으로
구약의 신약적 성취를 위한 과도기- 신구약 중간 시대
헬레니즘 세계를 개막시킨 알렉산더 - 가우가멜라 전투
유대인의 자기 저주
유대의 멸망과 최후의 저항 - 마사다의 비극
1세기 유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른 빌라도 부인 - 클라우디아 프로쿨라
로마 실력자의 정부가 된 유대 왕가의 여인들
예수님에게도 아내가 있었다?
박해자에서 기독교의 후원자가 된 로마 제국
복음의 실크로드
이방인을 위해 준비된 일꾼, 사도 바울
서구 문명의 뿌리 -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사막에 세워진 또 하나의 유일신 종교 - 이슬람
유럽을 이슬람으로부터 수호한 칼 마르텔 - 투르 푸아티에 전투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된 추악한 전쟁 - 십자군 운동
종교와 세속과의 싸움
로마 제국 내에 또 하나의 기독교 - 정교회(동방 교회:Orthodox Church)
영국 국교회(성공회:Anglican Church)를 탄생시킨 헨리 8세의 이혼
인간성 파괴를 공의의 심판으로 착각한 종교인들 - 종교 재판
신대륙 정복에 나타난 두 가지 다른 결과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
신학의 자유화 물결 - 자유주의 신학
자본주의에 영향을 끼친 칼빈의 신학
비 신화화 운동 - 복음서는 신화인가
영적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종교적 갈등과 역사적 낙관론
구속사란 무엇인가
계시
성경에는 정말로 오류가 없을까?
기독교의 역사관 - 종말론적 역사관
종교 다원주의 -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는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기독교 초기에 많은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에티오피아인들이 예루살렘과 빈번히 왕래하였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8장 26-27절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내시(에티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았던 고위 관리)가 예루살렘에 예배드리기 위해 왔다가 빌립 집사의 복음을 듣고 그에게 세례를 받은 기록을 보아 에티오피아에는 당시 이미 상당수의 신자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들 중 가장 오래된 기독교 역사를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러브스토리가 성경에는 비록 기록이 없으나 가히 세기적 로맨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솔로몬은 말년에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은 탓에 이방신을 접촉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초기의 신앙적인 열정이 변질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한편 시바 여왕과의 사랑의 결실은 아프리카에 하나님을 소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오늘날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게 된 것은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역사의 진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성경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 3세기 초에 일어나게 된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강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조차 아람어가 편리하게 사용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가장 많이 살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에서 72명의 유대인 랍비들(12지파에서 각 6명씩 뽑힌 대표자들)이 모여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70인 역으로 이 번역본은 이후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마치 성경의 원본과도 같이 사용되었다. 참으로 성경 번역의 이정표와도 같은 놀라운 결실이었다. 오리엔트에서 시작된 인류의 문명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신구약 중간기에 그리스는 철학, 예술, 과학 등 분야에서 황금기를 이루는 시기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시대를 대표하였으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전 그리스를 통일하여 당대의 최강인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헬레니즘 세계를 화려하게 개막시켰다.
로마가 일사분란한 통치를 위해 이미 제국의 소통과 법 그리고 제도를 단일화했기 때문에 바울을 비롯한 복음 전파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제국 간 잘 정비된 도로가 있었고 문화적인 장벽이나 언어의 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헬라 문화권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헬라어에 능통했던 바울로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선교적 차원에서 정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당시에 통용되던 헬라어는 제국 어디에서도 불편 없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한 고난과 박해, 위험과 시련 역시 어쩌면 선교적 체질을 강화시키며 전투적인 복음의 진취성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로마를 위시하여 소아시아, 유럽, 메소포타미아 지역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산재되어 있었으므로 선교의 거점으로 유익한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특히 소아시아나 그리스의 마케도니아(그리스의 북부 지역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그리고 아가야(그리스 남부 지역:아덴, 고린도, 겐그리아) 지방에서는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를 통하여 그들과 쉽게 접촉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