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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가
· ISBN : 9788925408910
· 쪽수 : 360쪽
책 소개
목차
1장 : 프롤로그 _젊은 예술가의 초상
2장 : 1983년 _ 세상 속으로
3장 : 1984년 _ 작가의 길
4장 : 1985년 _ 사회적 · 역사적 상상
5장 : 1986년 _ 강원도의 힘
부록 : 도판 색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아온 것은 자신과 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것은 한국성에 대한 문제의식, 즉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과 이어진 것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의 수묵화와 산수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 첫 결과물들이 소나무 연작들이었다. 그것은 서양화의 매체인 종이와 연필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동양적 서사, 한국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창작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시도의 하나였다.
자기 절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은 작가에게 늘 잠복해있다. 보고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의식은 늘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석고를 비롯해 장기간의 학교 교육이 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물화,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보고 그리는 그림은 르네상스 때부터 서구미술의 기초였다. 그것은 자기 억제에서 출발한다. 숨을 고르게 쉬고 곱게 붓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화가에게 육체적인 절제이자 정신적인 통제이기도 하다. 오로지 한 시점에서 가만히 보는 것이 화가에게 요청되는 미덕인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즉각적인 감정을 풀어놓는 것, 보아도 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직관적 터치. 우리를 오래 붙들어온 그리스와 르네상스의 이성적 미술관은 그것을 힘들게 해왔다. 그 순간의 호흡이 중요하고, 오히려 그것이 보편성에로 다가서는 길이기도 한데 거기서 쉽게 못 벗어나게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19세기 말 이후 70여년을 지배해온 모더니즘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1960년대에 성립하였다.
이중섭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이유에는 그런 점도 있다 하겠다.
그리스 미술에 바탕한 서양미술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지금도 이집트 미술이 갖는 조형적 요소와 이미지 특성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특유의 굳은 표정과 단순한 선에서 보듯 이집트미술은 직접적이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풍부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 미술은 생동감이 있고 실물감이 있고 그에 따른 육체미가 있다. 그런데 어딘지 허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리스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이집트미술은 원시적이고 미숙한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그처럼 형식면에서 떨어진다고 하여도 거기서 미술의 근원과 창의의 원천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집트미술이다. 나에게는 그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리스미술을 토대로 미술대학 과정을 이수하면서 관심은 자연스레 이집트 미술들로 옮겨갔다. 그 벽화의 그림들을 하나씩 모사해 보면서 새로운 평면적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것은 압축된 입체였으며, 사실적 이상적으로 표현된 그리스 조각보다 더욱 압축된 사실적인 선으로 다가 왔다. 그리스조형이 수학적으로 측량된 비례에 의거한 이성적 아름다움이라면 이집트조형은 원형의 것이 주는 사실적 아름다움으로 보이기도 했다.